야자수 아래서 한줌한줌 '가족애'를 담는다

2010. 12. 2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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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데일리노컷뉴스 장영환 기자]

#프롤로그

당연지사(當然之事).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싶은 게 당연지사, 졸리면 눈꺼풀 내려앉는 게 당연지사, 사랑하는 사람은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게 당연지사, 고된 일 끝나고 나면 소주 한 잔 당기는 게 당연지사, 추운 날에는 여름의 해수욕장 생각나는 게 당연지사…. 그래서 질렀다.

"우리, 애들 데리고 동남아 해외여행 갈까?"

#에피소드 1

덜컥 겁도 났다. 34개월 된 '남매둥이'를 데리고 말도 안 통하는 곳으로 훌쩍 떠난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22개월째 됐을 때 일본 큐슈 온천여행을 갔다가 입에 달고 다닌 말이 "이제, 너희들 데리고 해외여행 가나보자"였는데, 아빠라는 '망각의 동물'은 제 멋대로 기억을 재단해 버렸다.

그리고 이 시점에 꼭 해야 할 일처럼 정당성을 만들어 갔다.

"올해 아이들 수영장 한 번 못 데리고 갔잖아, 우리 모래놀이 실컷 하게 해주자." "그래 좋아~." 아이들과 함께 가는 해외여행. 어디서부터 준비할까? 우선 여행상품 검색에 들어간다.

항공스케줄과 호텔 예약현황에 맞춰서 가야하기 때문에 선택한 날짜에 상품이 '펑크'날 수도 있다.

지정된 날짜에 꼭 가고 싶다면 여행사에서는 항공좌석 등급 업그레이드를 권하지만 1인당 30여만 원의 웃돈을 비행기에 쏟기에는 돈이 아깝다.

또한, 호텔 예약현황에 따라서 묵고 싶은 곳을 포기해야할 경우도 있으니 여행상품은 가급적 빨리 예약하는 게 중요하고, 상품에 대해서도 꼼꼼히 체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족도 원하는 날짜에 항공좌석이 매진된 상태라 휴가를 하루 미뤄서 떠나야 했다.

#에피소드 2

'마부하이(Mabuhay)~' 4시간 30분간 하늘을 날아 '피한(避寒)'온 여행객을 경쾌한 인사말로 반긴 이곳은 필리핀의 세부. 후텁지근한 기운이 온몸을 '프리허그'해댄다.

현지시간 오전 1시30분 픽업 나온 차를 타고 15분을 달려 숙소인 '마리바고 블루워터 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설치다 맞은 아침. 비는 그쳤고 야자수가 군데군데 자리를 튼 수영장이 눈에 들어온다. 때마침 금발의 비키니여성이 유유히 물살을 가르고 있다.

오 해피데이, 여기가 바로 '따뜻한 남쪽나라'. 마리바고 블루워터 리조트는 세부의 막탄섬에 위치한 휴양시설. 중급 정도의 리조트지만 3개의 수영장과 해변이 깔끔하다.

세부의 전통양식으로 지여진 코티지 형태의 객실은 지붕이 '립바'라고 하는 마른 풀로 덮여져 있으며, 출입문 옆에 조그만 테라스가 있어 꼭 전원주택에 온 기분이 든다.

또, 모래 묻은 발을 씻을 수 있도록 물항아리도 놓여였다.

아이들 손을 잡고 리조트 전체를 산책해도 좋을 만큼 아담한 크기에다 잘 가꿔진 정원, 열대어와 어린 상어가 노니는 연못, 해변 건너편에 인공섬까지 구성도 아기자기하다.

세부의 바닷가는 호핑투어나 스노쿨링, 스쿠버다이빙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여건상 '언감생심'. 바닷가에서 어린 쌍둥이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한 눈 팔 새도 없이 보디가드처럼 아이들에게 시선고정. 그러나 실망하지 말자. 수영장에서 아이들 튜브를 끌어주고 워터슬라이드를 함께 타고, 해변 백사장에서 모래놀이를 같이 하며 스킨십을 만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가족여행이 될 수 있으니. 그 뿐이랴 아이들 낮잠시간에 홀로 빠져나와 수영장 비치의자에 누워 산미구엘 맥주를 마시며 일광욕을 하거나 아침 일찍 카메라 메고 해변을 산책하는 것 또한 보너스처럼 주어진 행복이다.

#에피소드 3

세부로 떠나기 전 걱정됐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식. 자유여행은 조식만 제공되기 때문에 중식과 석식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저렴하게 끝내려면 '아점'같은 조식, 간식 같은 중식, 든든한 석식이 딱 이지만, 외지에 나왔으니 현지 음식을 맛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찾아간 곳은 '마리바고 그릴'. 리조트 정문 경비직원에게 물어보니 걸어서 2분정도라며 길을 알려준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서 길을 찾기란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 그런데 길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마리바고 그릴'하며 손짓을 해왔다.

음식점 직원인가 싶어서 따라 갔는데, 길을 걸으며 '환전 필요하냐?' '현지 가이드는 있느냐?' '호핑투어 안 할거냐?' 이것저것 물어온다.

내 대답은 한결같이 'NO~' 'NO' 'NO!'. 정말 2분여만에 음식점 정문 앞에 도착. 고맙다는 인사를 했는데 아뿔싸, 이 아저씨는 한국말로 "봉사료 1달러"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쓴웃음을 지으며 1달러를 줬지만 그 허탈함이란….

마리바고 그릴에서 주문한 음식은 볶음밥과 크리스피 파타(crispy pata), 망고주스, 산미구엘 맥주. 크리스피 파타는 일종의 프라이드 돼지족발. 비주얼은 비호감이었지만 바삭바삭한 껍질과 쫀득쫀득 연한 육질이 안주로 일품이다.

볶음밥은 엄청난 양에 놀랐고, 끈기 없이 흩어지는 밥알에 웃음이 났다.

이번엔 세부 시내 복합쇼핑몰 가기에 도전. 찾아간 곳은 '아얄라 센터(Ayala Center)'. 리조트 직원에게 물어보니 호텔카로 편도 660페소를 내야 한단다.

택시요금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대답, 택시드라이버가 '굿맨'이면 200~300페소를 부를 거라고…. 리조트 정문경비가 직접 택시를 잡아줬고 가격까지 흥정해주니 고마울 따름. 300페소에 OK! 아얄라 센터에서는 걷지 않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안고, 업고 다니느라 고생 꽤나 했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로 먹은 피자는 싸면서도 맛있었다. 또 대형 슈퍼마켓에 들러서 컵라면, 맥주, 망고도 잔뜩 샀다.

한국에서나 필리핀에서나 곳간이 쌓이면 흐뭇하다. 세부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이렇게 장본 것으로 해결했다.

# 에필로그

세살배기 쌍둥이를 데리고 떠나는 해외여행은 쉽지 않다. 비행기에서건 식당에서건 시간차로 울어대는 녀석들 때문에 부모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된다.

어른 손을 잡지 않고 무작정 혼자 가겠다고 떼쓰니 언성을 높이기도 여러 번. 부부간에 '네 탓' 씨름도 덩달아 일어난다.

그러길래 왜 갔냐고?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잠자리에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술술 풀어낸다.

어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일까지도 신나서 얘기할 땐 '애들이 뭘 알아' 하는 고정관념이 일순간에 무너진다.

"그래, 이 맛에 산다" 부모가 또다시 팔불출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녀석들에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너희들도 너희들하고 똑같은 쌍둥이 데리고 해외여행 한 번 가봐라."yhjang@nocu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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