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1) 순천 중앙시장 구두수선공 황충식씨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느 의사가 낡은 구두 한 켤레를 들고 네거리 모퉁이의 수선공을 찾아갔다. 구두수선공은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다. 뒤축을 갈거나 꿰맨다고 될 일이 아니었으니 결국 구두를 돌려주며 "2천원만 주시오" 했다. 의사가 버럭 화를 내며 "거 참, 고치지도 못하면서 뭔 돈을 받는 거야?" 소리쳤다. 그러자 의사의 두 눈을 빤히 쳐다보던 그가 말했다. "바로 당신에게 배운 거요. 병을 고치지도 못하면서 꼬박꼬박 진찰비는 받지 않소?"
한자리에서 38년째 구두수선을 하고 있는 황충식씨. 그는 노거수처럼 붙박여 먼 길을 걸어온 이들의 닳은 구두 뒷굽을 갈아주고, 터진 곳을 꿰매준다.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그는 '구두의 달인'이자 삶의 스승이다. | 이원규 시인 촬영말이야 바른 말이지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얼마 전에 영화배우 수애씨가 구두수선공의 딸이라고 해서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아무래도 화려한 배우와 구두수선공 사이에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깊은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턱없이 허세를 부리거나 아무 죄도 없이 비굴해야 하는 단 두 가지 모드가 존재한다. 진정으로 천박한 것은 바로 이런 봉건주의적 사고방식이 아닐까.
날개가 없는 직립보행의 인간에게는 신발이 곧 날개일 수밖에 없다. 맨발에서 벗어난 인류는 신발의 궤적을 따라 길을 만들며 진화해왔다. 신발 뒤축을 보면 그 사람의 걸음걸이를 알 수 있고, 그 신발은 지난 밤에 누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다 알고 있다. 신발은 깨진 유리조각과 똥을 대신 밟아주는 동시에 밑바닥이 닳은 만큼 길 위에 발자국을 새긴다. 그리하여 인생을 단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발자취가 아닌가.
이 세상 어디를 가든 네거리나 장터 한 모퉁이에서 먼길을 걸어온 이들의 닳은 구두 뒷굽을 갈아주고 실밥 터진 곳을 꿰매어주는 이들이 있다. 노상이나 작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하루 종일 '날개를 수선하는 천사 같은' 구두수선공들. 전남 순천시 중앙시장의 '구두의 달인' 황충식씨(63)도 바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시장 입구 김수영 미용실 앞에서 38년째 노거수처럼 붙박여 일해 온 그는 영하의 날씨마저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추울 때는 추와야제. 춥다고 장갑을 많이 끼어불먼 둔해서 당최 일을 못 한당게. 여기 길거리가 내 집이여. 집보다 여그에서 더 많이 살았응께." 한 번 힐끗 쳐다보며 씨익 웃고는 도저히 재봉틀로는 박을 수 없는 가죽부츠의 떡 벌어진 밑바닥을 일일이 송곳바늘로 꿰맨다. 극장 앞의 후배가 포기하고 황씨에게 보내온 모터사이클용 부츠를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마무리했다.
그 순간 나도 "아저씨, 내 것도 좀 해주세요. 발 끝부분에 실밥이 터져서 비가 자꾸 새네요. 몇 군데 갔다가 퇴짜를 맞아서 새것으로 바꿀까 고민했는데요" 하며 잽싸게 부츠를 벗었다. 슬리퍼를 내주고 살펴보던 황씨는 "아따, 좋은 방수 부츠구먼. 이건 내 미싱으로도 되겄는디. 다른 디서는 안되지만 내 미싱은 아주 오래된 구닥다리여. 신식은 절대 안되지라. 허허, 구관이 명관이라고 나는 된당께" 하며 드르륵 속깊이 박는 것이었다. "삼천원만 줘. 원래 사천원은 받아야 되는디 그거 마구 찍어대는 사진 값으로다 천원 제하고이"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연륜을 말해주듯 굵고 거친 손마디의 황씨. 검은색 여자 앵글 부츠를 발 모양의 쇠작업대에 쑥 끼워 넣고는 접착제 칠한 밑창을 정성껏 열처리한 뒤 덧대어 망치로 두드린다. 작은 쇠못을 꼼꼼하게 박고는 끌칼로 삐죽이 나온 고무판을 일필휘지로 잘라낸다. 신발 밑창을 오려내고, 본드를 바르고, 망치로 두드리고, 밑창을 깎아내는 그의 손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겨울에 딱딱한 구두 밑창은 큰일 나부러. 미끄러져 허리를 다치든지 뇌진탕 아니면 다행이여. 결이 가로로 잘 나고 몰캉몰캉한 고무 밑창을 덧붙여야제. 구두 밑창에도 계절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몰러."
황충식씨는 순천시 서면 출신이다. 옥천동 맨 꼭대기에 산다는 그는 여전히 가난하지만 "이 두 손과 오래된 미싱 하나로 1녀2남 자식새끼들 다 키웠응게 여한이 없지라. 그래도 아직은 단돈 십원이라도 벌어야 혀. 인자 걷지도 못하는 아흔 살 아버님 어머님도 살아기시고. 세상은 그저 순리대로 사는 법이제. 내가 고친 구두는 단박에 알아도 난 그 사람을 잘 몰라. 그런데 그 사람은 나를 알아봐. 참, 신기하제? 여그가 바로 순천이여. 자네도 아등바등 허지 말고 순리대로 살어. 옛말에 하늘을 거스르는 자, 역천자는 망하는 벱이라 했응게. 안 그려?" 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순천에는 아랫장과 웃장이 있으며 한때 '순천의 명동'이었던 중앙시장이 있다. 황씨는 이 중앙시장에서 일하지만 2·7장인 아랫장날에는 그곳으로 간다. 젊은 시절에는 건설 현장서 일하기도 하고 쌀가게를 열기도 했다. "젊어서는 이것저것 다 해봤제. 그래도 쌀장사할 때가 좋았지만 배운 거 없이 살다봉게 결국 이짓을 하게 됐제. 후회는 없어. 오행을 보믄 부자 될 사람은 따로 있어. 대복은 재천이요 소복은 재근이라고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살고, 그렁께 나는 행복한 소복이여. 시방 눈 한 짝이 안 보이지만 여직 안 죽고 살았응께."
그의 말을 듣고 두 눈을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오른쪽 눈이 유난히 작은데다 주변에 흉터자국이 선명했다. "나가 외눈박이여. 한 짝이 하나도 안 보여부러. 일할 때도 사실은 애로사항이 많제. 9년 전에 순천 가스폭발 사고로 죽었다가 살아났제. 바로 이 자리에서 청천벽력맨키로 무담시 일하다 말이여. 그래도 난 여길 안 떠날겨."
2001년 9월15일 오후 1시20분, 전남 순천시 동외동의 한 건물 지하 단란주점에서 가스(LPG)가 폭발해 54세 정모씨가 숨지고 46명이 다치는 대형사고가 났다. 정씨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으며 지하실에 있던 입주자 3명과 1층 옷가게 손님 등 10명은 매몰됐다가 구조됐다. 또 인근에 주차돼 있던 차량 9대가 부서지고 반경 10여m 이내 건물의 유리창 100여장이 깨지면서 길을 지나던 18세 이모양 등 30여명이 유리 파편에 맞아 크게 다쳤다. 바로 그날 건너편에서 일을 하던 황씨도 큰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깨어보니 광주의 병원이었다.
"나가 죽었다고 방송에도 나와부렀제. 콧등 위에서 눈까지 찢어지고 오른쪽 눈알이 다 쏟아져부렀어. 광주까지 가서도 못 고쳤는디, 토요일이라 의사도 나가고 없제. 어찌어찌 의사가 돌아오는 바람에 살아났지만 그때 눈을 잃어부렀어. 탑차 하나가 막고 서 있었는디 나자빠진 그 차가 나 말고도 여럿이 살렸제. 그래도 의술이 좋아진 거여, 살아났응게. 그때 아가씨 하나도 온몸 화상을 입고 눈 하나가 못쓰게 됐어. 그런데 다행히도 그 처녀는 눈을 새로 해 넣었어. …보통 문제가 아니랑께. 퇴원한 뒤에 처음엔 조준이 안�게 엄한데를 꿰매기도 했제. 시방도 지장이 많아. 그래도 세상은 다 보인당께. 한 눈으로도 볼 것은 다보여. 비뚤어진 세상의 구두 뒷굽은 내가 다 고쳐부러."
하지만 그는 단 한 푼의 보상비도 받지 못했다. 병원 치료비마저 순천시민들의 모금으로 겨우 해결했다. "보상? 누가 보상해줘. 그 건물 아줌마도 죽었어. 모금으로 겨우 병원비만 되줬제. 참, 근께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멀었어. 인자, 뭐 해준다고 변호사를 썼는디 우리 피해자들의 돈만 날아갔어. 힘없는 자는 내 죽어라 글제. 그리 알고 살아야제. 국가는 워디 가고 없고, 그나마 한쪽 눈이 남았응게 이짓도 하는 거여. 그래도 나가 그리 큰 죽을 죄는 안졌는가벼."
때마침 50대 초반의 중년 여인이 구두 세 켤레를 꺼내며 "아까는 안 계시데요?" 인사를 했다. "아이고, 겁나게 반갑구마잉. 아버님 병원에 갔다 다시 집에 모셔다 드리고 오느라고 마이 늦었제라." 그녀는 32년 단골이라고 했다. "그땐 여기가 제일 번화가였죠. 아따, 한참 멋 부리던 스무 살 처녀 때부터 찾았지요. 학생 때 와이엠시에이 문학모임인 대나무클럽에 다닐 때부터였으니. 벌써 내 딸이 스물아홉 살이거든요."
'구두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지만 망가진 구두를 고치는 것은 예술'이오,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시대의 예술가이자 철학자인 황충식씨. 그의 거리 구둣방은 언제나 시장통의 물레방앗간이다. 뻥튀기 아줌마도 들리고, 환경미화원도 오고, 종이박스를 줍는 할아버지도 오래된 '환갑 자전거'를 끌고 장기를 두러 온다. 그는 내게 튀김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묵어봐. 콩 한 조각을 열이서 갈라 묵고도 물에 던지니 풍덩 하더란 말이여. 그게 전라도 순천 인심이여!"
< 이원규 |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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