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화제의 인물-국내 2(끝)

2010. 12. 20.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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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학술.예술

▲법정스님 = 평생 무소유를 실천한 올곧은 불교 수행자이자 탁월한 수필가로 국민적 사랑을 받다가 3월11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법랍 55세, 세수 78세로 입적했다.

전남 해남 출신인 법정스님은 전남대 상대 3학년 때 당대 선승인 효봉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1960년대 말 불교 경전 번역작업에 참여하는 동시에 불교교리와 진보적 사회의식이 접목된 글들을 잡지 기고문과 수필로 발표하면서 필명을 날리기 시작했다.

법정스님이 1975년부터 17년간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서 홀로 살면서 1976년 4월 내놓은 수필집 '무소유'를 비롯한 수십권의 수필집과 번역서들은 무한경쟁과 탐욕의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가르침을 담은 장기 베스트셀러다.

법정스님은 1992년부터 강원도 오대산의 오두막에서 지내면서 유명 요정이던 성북동 대원각을 시주받아 1997년 길상사를 창건했고 종교간 대화에도 앞장섰다.

법정스님이 입적하자 각계각층의 추모가 이어졌고 법정스님이 유언으로 저서 절판을 당부하자 서점가에서는 법정스님의 저서를 확보하려는 독자들이 몰려 저서들이 장기간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옥한흠 목사 = 서초동의 대형교회인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한국 개신교계의 큰 어른 옥한흠 목사가 9월2일 향년 72세로 소천했다.

1938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옥목사는 1978년 사랑의교회를 개척해 재적교인 8만명, 출석교인 4만5천명에 달하는 대형교회로 키워냈고 평신도의 영성을 일깨우는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정착시켜 다른 교회 목회자들에게도 널리 전파했다.

옥목사는 한국교회에서 팽배한 담임목사 세습 관행을 깨고 정년을 5년이나 앞둔 2003년 오정현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긴 후 조기 은퇴해 교회 안팎의 존경을 받았다.

▲명진스님 = 삼성동 봉은사 주지였던 3월11일 조계종이 봉은사를 총무원 직영 사찰로 전환하기로 결정한 이후 8개월간 총무원과 정치권을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계속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명진스님은 특히 안상수 한나라당 당시 원내대표가 총무원장 자승스님에게 압력을 넣어 봉은사 주지를 교체하려했다는 '외압설'을 제기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날선 어조로 비판했다.

또 10월에는 개신교 일부 단체가 이른바 '봉은사 땅밟기'를 하는 영상을 일요법회에서 공개해 한동안 잠잠하던 개신교-불교 간 종교갈등에 기름을 끼얹었다.

조계종 화쟁위원회의 중재로 봉은사는 결국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것으로 결정됐고, 명진스님이 11월9일 봉은사를 떠나 경북 봉암사에서 안거에 들어가면서 봉은사 사태는 일단락됐다.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 진보세력의 정신적 스승 역할을 한 사회비평가이자 사회운동가, 언론학자로 12월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1929년 평북 삭주에서 태어난 리 교수는 경성공립공업고(현 서울공고)와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뒤 국군 통역장교를 거쳐 합동통신(연합뉴스의 전신)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1961년 5ㆍ16 군사 쿠데타에 반대하는 글을 외국 언론에 기고하고 1964년에는 유엔의 남북한 동시 초청을 기사화했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1972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부임했지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 각각 4년간 해직되는 등 평생 4번의 해직과 5번의 구속을 겪었다.

'전환시대의 논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우상과 이성' '베트남 전쟁' '자유인ㆍ자유인' '스핑크스의 코' '동굴속의 독백' '21세기 아침의 사색', 회고록 '대화'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길창덕 = 만화 '꺼벙이'와 '순악질 여사'로 유명한 '명랑만화의 대부'로, 1월 3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1930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나 1955년 잡지 '야담과 실화'에 '허서방'을 발표하면서 만화계에 데뷔했으며 어린이 만화 잡지의 전성기였던 1960-1970년대 '명랑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꺼벙이' '순악질 여사' '꺼벙이와 꺼실이' '재동이' 등의 작품을 통해 국민에게 웃음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만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2002), 보관문화훈장(2003) 등을 받았다.

▲이윤기 = 소설가 겸 번역가로, 8월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3세.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난 그는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찾기'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2000년대 들어서도 소설집 '두물머리' '나비 넥타이' 등을 내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등 신화 연구에 매진했던 그는 베스트셀러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여러 번역서로 잘 알려졌다. '그리스인 조르바' '장미의 이름' '변신 이야기' '푸코의 진자' '양들의 침묵' 등을 소개하며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불렸다.

특히 독자들의 지적을 반영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의 새 번역판을 내는 등 번역가로서의 양심과 열린 마음도 귀감이 됐다.

▲손창섭 = '잉여인간'의 작가로, 지난 6월23일 일본 도쿄 인근의 한 병원에서 향년 88세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그는 1950년대 전후(戰後) 한국의 황폐한 현실을 그린 작품을 연이어 발표해 대표적인 전후 1세대 작가로 꼽힌다. 1973년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부인 우에노 지즈코 여사와 단둘이 은둔생활을 해왔으며 국내에는 별세 사실도 2개월여 후에야 알려졌다.

그는 1952년 '문예'지에 단편 '공휴일'을 발표하며 등단한 후 1950-1960년대 '비오는 날' '혈서' '미해결의 장' '잉여인간' '신의 희작' '인간교실' '부부'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1970년 여성잡지 '주간여성'에 연재된 장편소설 '삼부녀'가 최근 출간됐다.

▲손보기 = 고고학 분야에서 한반도에 구석기문화가 존재했음을 입증하고 인쇄술 분야에서 한국 금속활자가 서양의 구텐베르크보다 200년이나 앞섰음을 입증한 고고학자로, 10월31일 향년 88세로 타계했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 및 동 대학 박물관장 재직시절이던 1964년부터 1974년까지 공주 석장리 유적을 발굴함으로써 한반도에서 구석기문화가 존재했음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한 것은 물론, 1974~80년에는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구석기 동굴 유적인 충북 제천의 점말동굴을 발굴하기도 했다.

한국인쇄술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겨 1972년에는 한국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그것보다 200년 이상 앞섰음을 증명함으로써 독일 마인츠시 시장에게서 공로패를 받는가 하면 이에 관한 연구를 계속해 1982년에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국어로 '한국의 금속활자' 증보개정판을 내기도 했다.

▲진홍섭 = 한국미술사학계 거목으로, 11월5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같은 개성이 고향이면서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자로 평가되는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1944)을 사사했으며 황수영 박사ㆍ고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더불어 한국미술사학계의 '개성 3인방'으로 해방 이후 한국미술사의 초석을 다졌다.

해방 직후인 1946년 김재원 박사가 이끌던 국립박물관에 투신해 1962년까지 재직하며 개성분관장과 경주분관장을 역임했으며 1963년 이화여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이곳 박물관장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고고학 발굴에도 관여했다.

1세대 미술사학자답게 토기, 금속공예, 석등, 비문, 석상, 조각, 고분, 건축, 사지, 서예, 불상, 석탑, 사리구, 청자, 와전, 불적, 문양 등 손대지 않은 미술사 분야가 없다시피 하다.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 = 원로 디자이너로, 75세를 일기로 지난 8월12일 세상을 떠났다.

1962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첫 패션쇼를 열고 한국 최초의 남성패션디자이너로 데뷔한 앙드레 김은 이후 서울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라는 의상실을 개업하며 본격적인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다.

1962년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패션쇼를 연 것을 비롯해 이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와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이집트 피라미드 앞 등 국내외 수많은 곳에서 수백여차례 크고 작은 패션쇼를 열어 자신의 독창적인 패션을 선보였다.

1999년 이른바 '옷로비 사건' 청문회에서 본명이 알려지며 곤욕을 치르기도 했으나 이후 흰 옷만 입는 패션과 외국어를 섞은 어눌한 말투 등 독특한 말과 행동 등으로 TV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가 되는 등 연예인 못지않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방송.연예

▲박용하 =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한류스타로 등극해 영화, 드라마, 공연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다 6월 30일 33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음반제작자였던 아버지를 둬 일찍이 연예계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1994년 MBC '테마극장'으로 데뷔한 후 1998년 드라마 '보고 또 보고'를 통해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얼굴을 알렸다.

'겨울연가'로 인기를 모은 그는 2003년 1집 '기별'을 내고 가수로 데뷔했고, 2004년부터 일본 활동에 집중하다가 2008년 드라마 '온에어'로 국내 안방극장에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올해 6월 드라마 '러브송(가제)'의 남자 주인공으로 촬영을 앞두고 있던 중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다. 그는 가족 문제와 사업 부담감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해 수면제를 복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진영 = 2008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故 최진실의 동생으로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다 3월 29일 39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0년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조연으로 데뷔해 '있잖아요 비밀이예요2'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깡패 수업' 등 영화와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도시남녀' 등에 주조연으로 출연했다.

1999년에는 '스카이'라는 예명으로 1집을 내고 가수로 데뷔, 2000년 골든디스크상 신인상을 받았다. 2004년 3집까지 발표하며 '영원' 등의 히트곡을 냈다.

가수 활동 이후 공백기를 가진 그는 2007년 KBS 드라마 '사랑해도 괜찮아'로 복귀한 후 본격적인 방송활동을 준비하던 중 누나 최진실의 죽음을 맞았고 재기 의지를 보였으나 우울증을 이기지 못했다.

▲소녀시대ㆍ카라 = 한국의 대표적 걸그룹으로 올해 일본 내 K-POP 열풍을 주도했다. 이들은 10~20대 젊은 여성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원조 한류스타와 차별화한다.

소녀시대는 10월 26일 일본에서 선보인 싱글 '지(Gee)'가 한국 여성 그룹 최초로 오리콘차트 싱글부문 일간차트 1위에 올랐고 발매 첫주 주간차트 2위에 오르며 일본 내 해외 여성 그룹 사상 30년 만에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일본의 대표적인 음악시상식인 '일본 레코드대상'에서 우수신인상을 받았고 지난 4일 한국가수로는 유일하게 후지TV의 연말 가요제인 'FNS 가요제'에 참여했다.

카라는 지난 8월 데뷔 싱글 '미스터'가 오리콘 주간차트 5위에 올라 아시아 여성그룹 최초로 톱 10 진입 기록을 세웠고 10월 5일 베스트 앨범으로 오리콘 주간차트 2위의 성적을 거뒀다.

11월말 일본에서 발표한 1집 '걸스 토크'는 오리콘차트 앨범 부문 일간 2위까지 올랐다.

▲박춘석 = 이미자, 패티김, 남진, 손인호, 안다성 등 수많은 가수의 곡을 쓰며 1950-1980년대 가요계를 이끈 대 작곡가로 3월14일 별세했다. 향년 80세.

'아리랑 목동(박단마)' '비 나리는 호남선(손인호)' '삼팔선의 봄(최갑석)' '사랑의 맹세(패티김)' '바닷가에서(안다성)' '밀짚모자 목장아가씨(박재란)' '호반에서 만난 사람(최양숙)' 등을 발표하며 인기작곡가로 올라섰다.

특히 이미자와는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흑산도 아가씨' '황혼의 블루스' '그리움은 가슴마다' '삼백리 한려수도' 등 무려 500여 곡을 함께 하면서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국내 대중가요 개인 최다인 2천700여 곡을 작곡했고,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개인 최다인 1천152곡이 등록되어 있다. 2001년에는 영국 그로브음악대사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백설희 = 가수 전영록의 어머니이자 1950-1960년을 풍미한 원로가수로 5월5일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한국전쟁 직전 새별악극단에서 만난 배우 고(故)황해 씨와 결혼한 부부연예인이기도 했다.

악극단원에서 출발, 1953년 작곡가 고(故) 박시춘 씨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레코드가수로 활동을 시작해 스타덤에 오른 그는 '봄날은 간다' '카르멘 야곡' '물새 우는 강언덕' '청포도 피는 밤' '코리아 룸바' 등 주로 박씨와 콤비를 이뤄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시켰다.

▲배삼룡 = 1960-1970년대 '비실이'라는 캐릭터로 국민에게 큰 웃음을 줬던 원로 희극인으로, 2월23일 84년간의 생을 마감했다.

강원도 양구 출신인 그는 1946년 유랑 악극단 '민협'의 단원으로 코미디언 생활을 시작했으며 많은 악극단을 거쳐 방송계에 진출, 장수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와 '부부 만세' 등으로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았으며 동갑내기 단짝 구봉서와 콤비를 이뤄 큰 인기를 모았다.

'사람팔자 시간문제' '9대 독자 사랑법' '약장사' 등 400여 편의 드라마와 '요절복통 007'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운수대통' '아리송해' 등의 영화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았고, 사업에도 실패하면서 생활이 어려워졌다. 그러다 1997년 '눈물의 여왕'의 성공으로 다시 악극 스타로 재기, '그때 그 쑈를 아십니까'로 3년여 인기를 끌었지만 2007년 6월 한 행사장에서 쓰러져 투병생활을 해왔다.

▲백남봉 = 성대모사와 원맨쇼의 달인으로 서민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던 원로 희극인으로 7월 29일 7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39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부친을 따라 평안도로 갔으나 6.25 피난길에 아버지를 잃고 이후 남쪽의 고아원에서 자랐고 이후 구두닦이, 장돌뱅이 등의 밑바닥 삶의 애환을 체험하면서 팔도 사투리와 장타령같이 자신의 코미디 인생에서 소중한 자산이 된 장기를 익혔다.

28세가 된 1967년 물랑루즈쇼단에서 활동하며 예능계에 본격 입문한 뒤 2년 뒤인 1969년 TBC '라디오 장기자랑'을 통해 방송에 데뷔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김장 재료들을 이용한 '김장 마라톤'을 중계방송 식으로 선보이며 화제가 된 뒤에는 영화 '팔도사나이'에 출연하고 각종 방송ㆍ공연 무대를 휩쓸며 활약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KBS의 '전국일주'를 진행했으며 2000년 코미디 발전에 공헌한 업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트위스트 김 = 1960-1970년대 조연 배우로 영화계를 풍미했지만 11월30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62년 영화 '동경서 온 사나이'로 스크린에 데뷔한 그는 1964년 신성일 등과 출연한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청바지를 입은 채 빼어난 트위스트 실력을 보여주면서 시선을 끌었다.

'오늘은 왕'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 '성난 영웅들' '사랑의 종합병원' '남부군' 등 16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 개성파 조연 배우로 뒷골목 세계의 재기 발랄하고 코믹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고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0년 개봉된 영화 '그림일기'와 2001년 악극 '아빠의 청춘'에 출연한 뒤 활동이 뜸하다가 2005년에는 TV 드라마 '맨발의 청춘'에 특별출연했다. 2006년 공연 도중 쓰러진 후 투병해왔다.

◇스포츠

▲피겨스케이터 김연아 = 2월26일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2006년 시니어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시리즈와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적인 스케이터로 입지를 다진 후 매년 최고 기록을 작성하며 세계 피겨계의 독보적인 스타로 우뚝 섰다.

2009년 3월에는 여자 선수에게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지던 200점을 돌파하며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제패하는 등 김연아가 출전하는 대회마다 피겨스케이팅계에 새 역사가 쓰였다.

국내외의 기대를 잔뜩 짊어지고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합계 228.56점의 세계 신기록을 작성하며 마침내 마지막 남은 고지까지 정복했다.

그가 내년 세계선수권대회 전까지 휴식을 선언하자 '무주공산'이 된 올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역대 최저 점수 우승자가 나오는 등 공백기에도 세계 피겨계에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연아는 발레 곡인 '지젤'과 한국 전통음악을 편곡한 '오마주 투 코리아'를 새 프로그램으로 정하고 내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왕의 귀환'을 준비하고 있다.

▲여자 축구 국가대표 지소연 = 7~8월 열린 2010 국제축구연맹(FIFA) U-20 여자월드컵에 주전 공격수로 출전해 득점 2위에 오르며 한국 대표팀의 종합 3위 쾌거를 이끌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15세부터 17세, 19세, 20세 이하 대표팀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한 엘리트 선수인 지소연은 월드컵에서 잠재력을 마음껏 드러냈다.

161㎝의 작은 키에도 뛰어난 볼 컨트롤과 패싱 능력은 물론 날카로운 결정력까지 갖춰 경기마다 환상적인 골을 터뜨리며 대표팀의 연승을 이끌었다.

남자 선수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움직임에 팬들은 '지메시'라는 별명을 지어 붙였다.

비록 개최국 독일과 준결승에서 1-5로 져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지소연은 콜롬비아와 3~4위전에서도 결승골을 터뜨려 3위 입상을 이끌었고, 도합 8골로 득점 2위에 올랐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해 한국의 동메달 획득에 힘을 보탠 지소연은 12월 일본프로축구 고베에 입단,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 = 11월 열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회 연속 3관왕에 오르며 '마린 보이'의 부활을 알렸다.

박태환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수영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주인공이지만, 1년 만에 출전한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줄줄이 예선 탈락해 실망을 안겼다.

절치부심하며 훈련에 집중한 박태환은 다시 1년 만에 나선 아시안게임에서 화려한 복귀에 성공했다.

박태환은 자유형 400m를 시작으로 100m와 200m에서 우승해 4년 전 도하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3관왕을 차지하는 등 7개 출전 종목(금3, 은2, 동2) 모두 메달을 땄다.

도하 때와 달리 자유형 단거리 종목을 모두 석권해 '아시아 최고 수영 스프린터'로서 4년 전보다 훨씬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다.

특히 박태환은 국제수영연맹(FINA)이 첨단 수영복을 금지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선수들의 성적이 저조해진 가운데 연달아 최고 기록을 작성해 2년 뒤 로마 올림픽 전망도 한껏 밝혔다.

▲메이저리거 추신수 = 메이저리그에서 클리블랜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하고 3할 타율을 넘기며 리그 최고의 '팔방미인 외야수'로 인정받았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프로야구에 진출한 추신수는 2008시즌 94경기에서 타율 3할을 때리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이듬해에는 156경기에 나서 아시아 출신 선수 사상 처음으로 20-20클럽에 가입해 스타로 떠올랐다.

타격의 정확성과 장타력, 빠른 주루능력은 물론이고 폭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까지 갖춘 만능선수 추신수는 올해는 예기치 못한 손가락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정확히 타율 0.300을 때리고 홈런과 도루를 각각 22개씩 수확했다.

2시즌 연속으로 20-20클럽과 3할 타율을 달성한 것은 110년 클리블랜드 구단 역사상 처음이다.

추신수는 이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국가대표로 출전, 홈런 3개를 포함해 14타수 8안타를 때려 10타점을 올리면서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병역 특례 혜택까지 받아내 메이저리그에서 의심할 여지 없는 블루칩으로 떠오른 추신수는 소속팀과도 '대박 계약'을 이끌어낼 수 있을 전망이다.

▲산악인 오은선 = 여성 산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8천m급 14좌 완등을 선언하며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이후 거듭되는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오은선은 4월27일 무산소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천91m) 정상에 서면서 1997년 가셔브롬Ⅱ(8천35m)를 시작으로 14년 동안 14개 고봉을 모두 정복했다.

14좌에 모두 발자국을 남긴 것은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며 남녀를 통틀어도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 이후 20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은선은 지난해 5월 10번째로 등정했던 칸첸중가에 '사실은 오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등정 직후부터 조금씩 새어 나왔던 의혹은 지난 8월 특별 취재팀을 동원한 SBS의 방송 보도가 이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최근까지도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대한산악연맹도 고봉 등정 여부를 판정할 엄격한 기준을 마련키로 하는 등 이번 논란은 앞으로 산악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김정은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로 9월 28일 당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며 후계자로 공식 등장했다.

김 위원장의 성격과 외모를 그대로 닮아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으며 정치적 야심과 승부욕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 위원장의 세번째 부인인 고영희(2004년 사망)에게서 차남 정철(29)에 이어 태어났으며 1983년 1월 8일생으로 전해진다.

1990년대에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를 졸업한 뒤 평양으로 돌아와 2002년부터 5년제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다녔으며 2009년 1월 김 위원장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하는 교시를 당 조직지도부에 하달하면서 후계자로 내정됐다.

당대표자회 직후 기념촬영한 사진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대외에 알린 이후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에 동행하면서 차기 지도자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지만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권력을 이양받아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리영호 =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으로 9월 28일 열린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과 나란히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올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을 제치고 사실상 군 서열 1위로 뛰어올랐다.

김정은의 후계자 공식화가 어느 정도 예견돼 있던 터라 44년만에 열린 당대표자회의 `최고 스타'가 리영호라는 데 이견이 없으며,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당 경공업부장) 및 남편 장성택(당 행정부장)과 함께 김정은 후계구도의 핵심축으로 위상을 굳혔다.

군단 작전부장과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 부총참모장을 거쳐 총참모장에 오른 전형적인 `작전통'으로 북한군에서 손꼽히는 포병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혁명유자녀 교육기관인 만경대혁명학원과 장교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나온 것으로 전해지며, 포사격술을 공통의 관심사로 김정은의 신임을 얻었다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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