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문학 리포트] 존 퀸시 애덤스

2010. 12. 1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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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퀸시 애덤스는 제6대 미국 대통령이다. 워싱턴ㆍ애덤스ㆍ제퍼슨ㆍ매디슨ㆍ먼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쟁쟁한 선임 대통령들에 비해 존 퀸시 애덤스는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고 미국 초기 역사에서 '잊힌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후대 사람들은 그를 끊임없이 기억하고 기린다. 케네디 대통령은 그를 미국 역사에서 가장 용기 있는 첫 번째 상원의원으로 꼽았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를 가장 위대한 공직자로 추앙했다. 당대 평가와는 달리 해가 묵을수록 리더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깊은 공명을 울리기도 한다. 존 퀸시 애덤스가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 "공직에 차등이란 있을 수 없다" = 존 퀸시 애덤스는 제2대 미국 대통령 존 애덤스 아들로서 미국 안팎에서 당대 최고 교육과 경험을 체득한 건국 2세대 중 대표적 엘리트였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주재공사를 지냈고,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국무장관으로 명성을 떨쳤다. 미국 역사상 최고 국무장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그는 유명한 '먼로 독트린'을 구상하고 실현시킨 주인공이었다.

1824년에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파와 지역분쟁으로 점철된 정치적 현실로 인해 대통령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돼 생을 마감할 때까지 무려 18년이나 하원에서 공복(公僕)으로서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전직 대통령이 하원의원에 출마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파격적인 사례다. 당대 미국인들은 의아해했지만, 존 퀸시 애덤스는 그의 선택에 담담했다. 대통령이든 하원의원이든 공직자 지위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 본질에는 차등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유럽 전제정 틀을 깨고 공화정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권위와 위계질서에 바탕을 둔 관료제 그늘을 쉽게 벗어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직자(public servicemen)라는 개념은 아직 정립되지도 않았던 시대였다. 진정한 평등사회와 민주주의는 공직의 평등개념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존 퀸시 애덤스는 공직 개념을 새로 정립한 리더였다.

◆ 노예문제등 '불편한 진실' 꾸준히 지적 = 존 퀸시 애덤스의 가장 두드러진 성품은 정직이다. 정직의 배양분이 원칙과 소신이라면, 그 열매는 때론 소외와 따돌림이다. 그는 오랜 공직생활 내내 그러한 정직의 떫은 열매를 맛보았다. 상원의원 재임 시 그는 제퍼슨 대통령의 루이지애나 영토 매입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매사추세츠주를 포함한 북부 정치인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다. 결국 그는 아버지 혼이 담긴 연방파에서 탈퇴하고 상원의원 직에서 사퇴했다.

하원의원 시절 애덤스는 대다수 의원들에게 '저승사자'와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그가 노예해방을 주창했기 때문이다. 당시 의회에서는 골치 아픈 노예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함구령(gag rule)' 을 제정해서 의사당 내에서 노예에 관한 언급을 일절 금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덤스 의원은 자유, 평등, 그리고 언론의 자유와 같은 건국이념을 내세우며 지속적으로 노예문제를 거론했다. 이런 애덤스는 다른 의원들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하지만 애덤스에게는 동료 의원들과 친분이나 정치력보다 건국이념을 지키는 원칙과 소신이 더 중요했다.

◆ 미국 공직자 롤모델로 자리매김 = 존 퀸시 애덤스는 미국 초기 역사에서 '잊힌 인물'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세운 공직자상의 그루터기 위에 건국의 이상은 새롭게 돋아나게 되었다. 1846년 하원의원 초년생으로 의사당에 입성한 링컨은 외로이 노예해방을 외치는 애덤스 모습에서 공직자의 롤모델을 찾았다. 링컨이 있기 전에 퀸시 애덤스가 있었고, 링컨이 노예해방 선언을 하기 전에 애덤스의 노예해방 투쟁이 있었다.

개인 체통보다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실한 공직자로서 사명을 더 귀중하게 여겼던 존 퀸시 애덤스의 유산은 미국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재현된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대법원 판사로 봉직하거나, 자신이 소속된 정당과는 다른 후임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공무를 수행하거나, 평화와 인권의 사도로서 후임 대통령 특사 노릇을 기꺼이 수행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공직의 평등개념을 세웠던 존 퀸시 애덤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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