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권의 부동산 나침반] 청약 절차 '복잡'..간소화로 문턱 낮춰야
11월 18일 시작된 3차 보금자리주택지구 사전 예약이 11월 26일 특별 공급 신청을 끝으로 마감됐다. 이번 보금자리주택은 하남 감일, 서울 항동, 인천 구월 등 3개 지구에서 총 1만6359채가 공급됐다. 3.3㎡당 추정 분양가는 지역·주택 크기에 따라 주변 시세의 75∼90% 수준인 850만∼1050만 원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1, 2차지구 사전 예약 때처럼 신청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신청 절차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신청자들은 마치 얼마 전 치러진 수능시험 문제를 푸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신문에 게재된 입주자 모집 공고문을 보니 그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일단 신문 3~4개면 이상에 걸쳐 게재된 공고문을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이걸 읽고 청약해야 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신청 자격 유무만을 알아보려고 해도 과외라도 해야 할 판이다.
암호문 수준의 입주자 모집 공고
글씨 크기도 커닝 페이퍼처럼 깨알 같다. 정상적인 시력의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돋보기가 없으면 제대로 읽기 힘들었다. 보금자리주택 청약자 가운데 고령자가 많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했다.
물론 글자 크기를 키우면 신문에 게재하는 면이 늘어나 광고비가 더 들겠지만 현 상태로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원하는 내용이 다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입주자 모집 공고는 법적인 의무 사항이다.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 제8조(입주자 모집 절차)에 자세히 나와 있다. 더욱이 청약예금 또는 청약부금 제도가 실시되는 지역 중 수도권 및 광역시에서 100가구 이상 주택을 공급하거나 투기 및 과열 경쟁의 우려가 있을 때 신문에 공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아파트를 분양할 때 거의 100%가 입주자 모집 공고를 신문에 내야 한다. 청약자의 편의를 위해 광고를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입주자 모집 공고문이 암호문을 푸는 것처럼 복잡해졌을까.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청약 절차와 자격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주택 공급 규칙은 지난 1978년 5월 10일 제정된 후 올 10월 8일까지 무려 76번이나 개정됐다.
32년 동안 1년에 두 차례 이상 규칙이 바뀐 셈이다. 국토해양부의 담당자조차 문의를 받으면 법령을 보지 않고서는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한다. 소득과 재산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규칙이어서 공정하다고 할 수도 없다.
더구나 아파트 청약을 정치·사회적으로 접근하는 바람에 '누더기'가 됐다. 주택 공급 규칙 19조의 '특별 공급' 규정을 살펴보자. 이 조항은 공급량의 5~10% 이내에서 아파트를 특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여기에 적힌 자격을 아는 이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예를 들면 '중소기업인력지원특별법에 의한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올림픽 또는 아시아 경기에서 3위 이상의 성적으로 입상한 우수 선수' 등이다. 조문을 샅샅이 훑어보지 않고서야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다.
3명 이상의 자녀를 둔 무주택자에게 특별 공급하는 조항도 있다. 2006년에 도입된 제도로 저출산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1985년에는 한 명만 낳고 불임 시술한 가구에 특별 분양권이 주어졌다.
당시 세계 3위 수준인 인구밀도를 낮추기 위한 정책이었다. 정부가 아파트를 '미끼'로 국민들에게 단산(斷産)을 강요한 것과 다름없다. 아파트가 당첨만 되면 앉아서 돈을 벌던 시대의 씁쓸한 풍경으로, 가슴 아픈 장면이다.
그해 4월 서울 목동 신시가지를 분양할 때 처음 이 조항이 적용됐다. 간단한 청약 절차로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주택 공급 규칙을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욕심일까.
김문권 편집위원 m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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