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품'이 아닌 '나눔'..중증장애인교육시설 '해야학교'

2010. 11. 17.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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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시반 등 4개 교육과정 운영.. 통학버스 없어 1주일에 이틀밖에 수업 못해

미국 역사상 최초의 4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 뉴딜정책 등으로 윈스턴 처칠과 더불어 2차 세계대전을 대표하는 인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소아장애를 앓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2008년 12월 말 현재 국내 등록 장애인은 220만여 명. 우리나라 인구의 4.5%다. 장애등급 1~2급에 해당하는 중증장애인은 약 80만 명으로 전체 장애인 중 35%를 차지한다. 중증장애인 인구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위한 시설이나 지원 등은 미비한 실정이다.

장애인과 관련한 중요한 화두는 '자립생활'이다. 논의의 중심이 최근 경증 장애인에서 중증 장애인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전까지 중증 장애인은 대체적으로 보호시설에 맡겨지거나, 집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제 중증장애인도 누군가에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감정, 존재감 등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도 자기 의지대로 주체적인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의미다.

경기도의 '해야학교'는 중증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장애인 평생교육 시설이다. 2007년 7월 문을 연 '舊새날 장애인 야학'에서 시작해 2009년 10월 현재의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의 장애인 교육시설과 마찬가지로 사무실, 교회 예배당 등을 전전하며 수업을 열어야 했다.

교실 풍경.

해야학교는 현재 장애인 교사 8명과 장애 학생 23명으로 구성돼 있다. 검정고시반을 비롯한 4개의 반을 운영 중이다. 검정고시 반은 학력신장 및 일상생활 불편 해소를 위한 과정이다. 국내법상 검정고시반이 있어야 장애인교육시설로 등록할 수 있다. 주로 고령자들이 수강하는 한글문해반은 장애 때문에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못했던 사람과 지적 장애인을 위한 반이다. 지적장애인의 경우 20살에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한글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정보화교육반은 일상 및 사회생활 적응을 좀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장애인들도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비장애인들과 유기적으로 이용하는 데에는 여전히 부족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자립생활반은 장애인 사회활동가 육성을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이 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장애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관련 법, 자립생활 이념, 장애인운동에 관한 전반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1~2명 정도의 학생밖에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아직까지는 장애인들 스스로가 각자의 삶을 좀 더 주체적으로 영위하려는 노력이나 주변 여건 등이 뒷받침이 안되기 때문이다.

해야학교의 설립자이자 교장을 맡고 있는 이주상 씨는 민주노총에서 노조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본인도 지체장애 3급의 장애인이었으나, 비장애인들과 같은 일을 수행했었다. 그러던 중 비장애인들만을 위한 활동이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고,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이주상 씨는 장애인 150여명을 가르치면서 장애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관련 교육 설립을 위한 노력을 거듭한 결과, 지금의 해야 학교가 탄생할 수 있었다.

해야학교장 이주상 씨

해야학교는 1주일 중 화요일, 목요일에만 문을 연다. 통학버스 운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들은 거동이 불편하므로 수원시에서 지원하는 차량으로 등교를 하는데, 차량 수가 적어 학교에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날이 많다. 차량 수에 비해 수요가 많다보니 통학하고 싶어 하는 학생을 모두 받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곳에서 약 1년을 간사 및 교사로 활동 중인 차민형씨(30)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됐다. 사무실 한 편에서 휠체어에 앉아있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푸근한 미소를 보여주던 차씨는 "1년에 단 2번(4월, 8월)있는 검정고시 준비를 할 때에는 교장선생님과 같이 주5일 동안 직접 자가용으로 통학하기를 반복한다"고 말했다.

수업을 가르치는 교사 중에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도 있다. 김민수씨(22, 성균관대 법학부)는 이제 갓 들어온 신참교사였다.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해야학교에 오게 됐다는 그는 교육봉사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씨가 가르치는 과목은 영어. 수업을 위해 평택에서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김씨는 "아직 군 미필인 형편이라, 군 입대 전 최대한 자신의 능력을 살려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나승헌씨(26, 남서울대 영어과)는 올해 9월부터 해야학교에서 자원봉사하는 대학생이다. 나씨는 천안 장애청소년자립지원센터에서 1년가량 봉사활동을 한 경력이 있었다. 이 때 보았던 정신 지체 장애인들의 자립 노력을 보면서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에 관심이 생겼고, 대학 생활을 하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해 본적이 없다는 회의감에 해야학교를 찾아왔다. 그녀는 해야학교에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통 사람들은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나보다 못한 사람들한테 베푼다는 생각으로 하잖아요? 가끔 자신도 모르게 우위의식 같은 걸 갖게 되는데, 실제로 만나서 장애인들과 같이 지내다보니 상황이나 환경의 차이 일뿐, 이들이 절대 비장애인보다 못한 사람들이 아니란 걸 알게 됐어요. 저는 봉사를 하면서 무조건적인 '베품' 보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나눔'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김민수씨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검정고시반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나승현 씨.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운영난이 있다. 교장 이주상 씨는 장애인 교육에 대해 사회제도적 측면에서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비장애인 위주의 교육에 장애인을 편입시키고, 그나마 있는 장애인 평생교육과정을 들여다보더라도 경증장애인 중심이며 중증장애인은 논의의 중심에 없다. 이씨가 중증장애인 전용 평생교육시설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유다. 또한 국내 특수교육법에는 장애인 평생교육시설에 대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제도적 기반도 취약한 상황이다.

제도적으로 부족한 뒷받침은 사회활동가들이 세운 민간 장애인 야학이 하고 있지만 국가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뜻있는 활동가들에 의해 설립 운영되고 있는 중증장애인 위주의 장애인 야학은 서울과 대구에 1곳씩, 인천에 3곳 있지만 운영사정이 쉽지 않다. 이씨는 "시설 임대비용 등도 처음엔 지원을 받지 못하다가 투쟁 끝에 얻어낸 산물이다. 서울 지역의 경우 임대보증금 정도만 지원을 해준다고 하는 데 경기도는 이마저도 없다"고 말했다.

해야학교도 이 어려움에서 예외는 아니다. 철저히 사비에 의해서 운영이 되고 있다. 이씨가 사회 활동할 때 알게 되었던 몇몇 지인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임대료 등을 해결하고 있다. 각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지원금이 민간재단 및 경기도 교육청에서 나오고 있지만 액수 자체가 부족해 실질적으로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해야학교의 상황은 쉽지 않아 보였다.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들은 경기도 로고가 새겨진 '사랑의 PC'라는 중고 물품이다. 대학교 컴퓨터 강의실에서 볼 수 있는 최신의 시설설비와 거리가 멀었다.

해야학교 사무실 전경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해야학교 학생들은 수업에 열심이다. 몇몇 학생들은 선생님들과 같이 먹으려고 가져온 고로케나 빵 등을 필자에게 거리낌없이 나눠주며 웃고 떠들고 즐거워했다. 바깥 날씨는 어느덧 겨울을 향해 가고 있지만, 장애(張愛)한 사람들로 가득한 이 조그마한 보금자리만큼은 봄 날씨의 따뜻함이 가득하길 기대해 본다.

김현호/인터넷 경향신문 대학생 기자 (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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