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리프킨이 외치는 '공감의 시대'

김진석 2010. 11. 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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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리프킨의 책들에는 특징이 있다.

사람들이 근대적 개인의 틀을 벗어나 타인과 공감하는 시대가 열리고 확장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시대가 온다고 굳이 말하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근대의 주요 이론들이 '공감'과 다른 길을 냈다고 여긴다.

세계화 시대에 사람들이 서로 가깝게 느끼는 감정도 공감의 특징이라고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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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제러미 리프킨 지음/이경남 옮김/민음사 펴냄

제러미 리프킨의 책들에는 특징이 있다. 나쁜 시대가 끝나고 좋은 시대가 도래한다는 ‘착한’ 전망. 〈육식의 종말〉 〈소유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 등이 대표적이다. 육식을 주로 하던 시대는 끝나고, 소유에 몰두하던 근대도 끝나며, 미국식 삶과 다른 유럽식 공존이 중요해진다는 이야기들. 〈공감의 시대〉(원제는 ‘공감적 문명(The Empathic Civilization)’이다)도 비슷하다. 사람들이 근대적 개인의 틀을 벗어나 타인과 공감하는 시대가 열리고 확장된다는 것이다.

‘공감(empathy)’,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시대가 온다고 굳이 말하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근대의 주요 이론들이 ‘공감’과 다른 길을 냈다고 여긴다. 성적 욕구에 근거한 리비도의 목표를 충족시키는 것이 핵심이라고 파악한 프로이트, 또 생존과 경쟁이 생명체의 기본 목표라고 설정한 다위니즘 등이 그것이다.

ⓒReuter=Newsis 제러미 리프킨(위)은 생존 걱정이 사라진 시대에는 공감이 확장된다고 주장한다.

공감에 대한 단편적인 예만 나열

그는 또 근대적 의미의 자유와 평등과 구별되는 공감적 자유와 평등이 온다고 말한다. 근대의 자유가 자율성에 근거하며 냉정하고 자족적인 상태를 추구한다면, 공감적 자유는 우정과 애정과 소속감에 무게가 실린다. 그래서 독립적이고 자율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취약한 점이 많을수록 사람들과 의미 있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세계화 시대에 사람들이 서로 가깝게 느끼는 감정도 공감의 특징이라고 해석된다. 또 생존의 걱정이 사라지고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대에는 공감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렇게 공감이 확대되는 순간, 신분의 차이와 구별이 싹 없어진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저자는 어쨌든 그것들이 뒤로 물러나는 순간이 늘어난다고 믿는다. 경쟁 대신 공감이 퍼진다는 것이다. 좋은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리프킨은 경쟁과 공감의 관계를 너무 단순한 대립 속에서 본다. 초반에는 주로 거대 담론과 이론의 차원에서 공감을 말한다. 공격성이 아니라, 공감 능력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 그러나 문명의 갈등을 인간 본성에 관한 양자택일 문제로 몰고 가는 것은 위험하다. 책의 중반과 후반에서 그는 ‘공감’과 연결되는 수많은 단편적인 예를 나열하고 인용한다. 그렇지만 공감의 예들을 나열하는 서술은 평평하고 얕으며 낙관적이고 순진하다.

공감과 부드러움이 인간 본성이라거나 도래할 문명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들이 가로막히는 사회적 상황,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러 병리적 증세가 나타나는 사회적 상황을 차분하게 분석해야 한다. 리프킨은 그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공감의 문명이 엔트로피(무질서의 정도)가 증대되는 상황의 결과라고 말한다는 것. 문명의 발전은 에너지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낭비하느냐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는데, 그런 경향을 가진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와중에서 공감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감과 더불어 고립과 단절의 징후들도 봐야 하지 않을까. 공감을 유도하는 사회적 연결망도 많고, 연설 잘하는 오바마도 ‘공감’ 전도사였다. 그러나 말과 구호로만 떠도는 ‘공감’ ‘소통과 상생’은 또 얼마나 많은가. 소유와 경쟁의 문명이 끝나면 좋으련만, 방식은 매끄럽고 관계는 복잡하며 속도는 빨라질 뿐이다. 공감과 소통이 멋있게 경영되는 세상! 그 세상에서 개인들은 한 톨 자아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이, 더 오래 ‘나 홀로 가구’로 머문다. ‘소통의 시대’에 개인의 고통은 사실 더 깊어지며, 세대 사이를 나누는 골도 더 깊어진다.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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