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티베트 '적과의 동침'..라브랑스 가는 길

신동립 2010. 11. 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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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윤소희의 음악과 여행 < 22 >

예정대로라면 삼예사원에서 '참'의례를 촬영했어야 했다. 그런데 불과 사흘 앞두고 당국으로부터 의례금지 조치가 떨어졌다. 숙소 예약까지 해놓은 일정을 부랴부랴 바꾸어서 간쑤성 티베트 자치주 샤허에 있는 라브랑스로 향했다. 이럴 거면 미리 말해 줄 것이지 잔뜩 기대하도록 해놓고 웬 날벼락이람.

알고 보니 정월 의례를 하면 많은 티베트인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되어 폭동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의례를 금지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미리부터 못하게 하면 민중의 요동이 있을 수 있으니 날짜가 임박하여 지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기를 근 6년.

쌓이고 쌓인 불만이 그해(2008년) 2월에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라사의 야크호텔 앞에서 시작된 시위가 칭하이와 샤허까지 거세게 몰아치더니 결국은 수많은 티베트사람들이 희생되는 사태로 번졌다. 필자가 귀국한 며칠 뒤에 일어난 그 항거가 의례를 금지하는 데서 불만의 화약이 되었다는 기사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여정이 그해 샤허의 라브랑스 참의례 촬영이었다.

샤허로 가기 위해서 먼저 라사에서 칭장열차를 타고 칭하이로 향했다. 열두시간,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이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던 그 여정. 간간히 만나는 양떼와 야크떼들이 길고 긴 여행에 아롱다롱 무늬를 새기고, 오체투지를 하며 라사로 가고 있는 순례객은 그 가운데 화룡점점이었다.

라사에 머무는 동안 철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오체투지로 조캉사원을 도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다소 걱정스럽기도 했다. 밝고 티 없이 뛰놀아야 할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걸하는 거지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연신 돈을 받아 챙기는 모습에는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노을이 물든 초원을 뒤로 한 채 험준한 자갈 길 위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라사로 가고 있는 순례자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간의 오체투지에 대한 미심쩍은 생각들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밀레의 '만종'에 비교할 수 있을까? 석양에 물든 오체투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라사를 출발한 칭장열차에서 뒤돌아보는 티베트! 고산증으로 매사에 천천히 긴 호흡을 가다듬듯이 가는 곳곳마다 나를 돌아보게 했던 곳, 너무 착하고 순해서 나라를 뺏긴 이 나라 사람들, 독특하고도 장엄한 문화유적들에 어마어마한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입장료를 거두느라 정신없던 승려였지만 알고 보니 재주는 곰이 넘고 주머니는 딴 놈이 챙기는 상황들에 화가 치밀기도 했던 그 슬픈 땅이 짠하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캄캄한 차창을 뒤로하고 잠을 청한 뒤 새날이 밝자 '칭하이'란다. 해가 지기 전에 샤허에 도착하려면 시간의 여유가 없기에 칭하이 역 주변에서 점심을 먹자마자 곧바로 지프차로 갈아탔다. 한겨울 쌓인 눈에 차 바퀴가 빠지기도 하지만 차창 밖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 두어 시간은 이슬람사원과 흰 모자를 쓴 무슬림들이 차창 밖을 스치더니 두 시간은 중국 사람들의 모습이 지나간다.

그렇게 오후 내내 달려서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부터 조금씩 숨쉬기가 팍팍해졌다. 서서히 티베트식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서도 두 세 시간을 더 달려서야 샤허란다. 이미 늦은 밤이라 호텔에 짐을 풀었다. 티베트와 중국풍이 섞인 이국적인 분위기의 호텔은 밖에서 보면 제법 그럴싸하지만 실상은 물이 새기도 하고 따뜻한 물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코가 얼듯이 추운 날씨에 난방마저 온전치 않으니 침대 위에서도 침낭을 꺼내 둘러야 할 형편이다.

이틀을 열차와 지프에 흔들린 뒤라 파김치가 되었어도 눅눅하고 싸늘한 침대가 도무지 잠을 못 이루게 한다. 하는 수 없이 비상용 미니 전기담요를 꺼내어 깔았더니 그제야 얼었던 몸에 온기가 돈다. 티베트사람들에게는 이마저도 최고급 호텔이라는데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네 나약한 체질들이 새삼 뜨끔해지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일어나 거리를 나서보니 시절이 정월인지라 거리의 사람들은 설빔을 차려 입고 분주히 오간다. 티베트남자들이 돈을 버는 두 가지 목적이 있으니 하나는 사원에 보시하여 사회적 명망을 얻는 일이요, 나머지 하나는 아내의 보석 치장으로 부를 과시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그럴까? 여자들의 어마어마한 장신구들이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보석 걸이'다. 남자들은 다들 허리에 칼을 찼는데 가지각색 보석으로 장식하거나 화려한 조각의 칼집이 그야말로 짐승남의 완성이다.

라브랑스는 사원 둘레를 빙 둘러있는 길고 긴 마니차 회랑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성장을 한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줄을 서서 마니차를 돌리며 순례를 하는 장면이 장관이고, 복색이며 사원의 풍속들이 티베트의 전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그런데 산 꼭대기에 사원을 짓는 티베트 본토와 달리 이곳의 사원은 평지에 지었고 지붕은 중국식 기와가 올려져 있다. 이런 것을 두고 '적과의 동침'이라고 해야 하나? 뜻 모를 웃음이 슬금슬금 스며났다.

중국 속의 티베트라 불리는 샤허. 티베트사람들에 의한 티베트 사람들을 위한 티베트지역이지만 이들 속에 섞여있는 중국스러운 파편들이 인상적이다. 풍토와 문화는 그 속을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스며드는 안개와 같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건축양식에 미루어 볼 때 분명 이들의 음악에도 그 영향이 있으리라. 내일이면 듣고 보게 될 의례와 음악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지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길고도 긴 샤허의 첫날밤이 깊어만 갔다.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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