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아우름회'..콩고 난민 욤비씨에 온정

2010. 10. 1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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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정보요원서 반정부인사로 변신..2002년 입국

(인천=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작은 도움이지만 욤비씨 가족이 힘을 내고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면 좋겠어요"

인천지역의 40∼50대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봉사모임 '아우름회' 대표인 장현근(50.GM대우차 대외협력부장)씨는 19일 도나 욤비(44.인천시 남구 숭의동)씨 가족을 만나 오는 22일 부평구 산곡동의 한 카페에서 가질 '욤비 가족을 위한 1일찻집' 운영 계획을 설명했다.

회원들은 장 대표를 비롯해 박덕영 한길안과 병원 본부장, 조용균 변호사, 유동수 회계사, 이진경(여) 정이식품 부회장, 임미영(주부)씨 등 남녀 15명이다.

이 모임은 지난 7월 결성된 이후 9월 추석때 욤비씨 가족에게 쌀과 학용품, 옷, 게임기 등을 추석 선물로 전달한 데 이어 이번에는 자선 행사를 갖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욤비씨를 돕게 된 것은 욤비씨가 부인 도나 렐리(36), 아들 토나 라비(초교 4년), 토나 조나단(초교 3년), 딸 토나 파트리시아(초교 2년)와 이국에서 매우 어렵게 살고 있기 때문.

욤비씨는 조국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국가정보기관 핵심요원으로 국가 1급 정보를 다루거나 반체제인사를 탄압하는 일을 하다가 회의를 느껴 결국 반체제 인사를 돕는 반정부 인사로 변신, 활동하다 잡혀 2차례 투옥됐다.

그는 간신히 중국으로 탈출했고 지난 2002년 한국으로부터 방문 비자를 받아 입국했다.

이어 사료나 제지, 섬유공장 등에서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오다 2008년 2월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뒤 우여곡절 끝에 같은 해 6월 고국에서 가족을 모두 한국으로 데려와 함께 살게 됐다.

그러나 그는 언어와 문화, 생활환경이 매우 달라 막상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데다 아내는 허리 디스크까지 앓고 있어 생계가 막막한 실정이다.

지난해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인천의 삼성교회에서 59㎡의 다가구주택을 구해주고 GM대우자동차 복지재단이 주거 보조비로 600만원을 지원했다.

최근엔 부평의 UIC시카고 치과병원에서 사회 환원 차원에서 월 급여 150만원에 욤비씨를 특별 채용했다. 고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영어.프랑스어가 능통한 욤비씨는 외국인 환자 통역과 병원 직원 영어회화 교육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이 월급만으론 5명인 욤비씨의 가족이 생활하기가 어려워 아우름회 회원들이 발벗고 나선 것이다.

장현근 대표는 "다문화가구나 새터민은 정부에서 도와주고 있으나 난민은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다"면서 "단순 난민이 아닌 욤비씨와 가족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봉사활동을 계획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욤비씨는 "힘들지만 한국 분들이 많이 도와줘 용기를 내고 있다"면서 "이젠 한국말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어 더 많은 일을 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chang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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