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CEO] 세계 최초 TV 알루미늄 소재 개발해 도약한 동양강철 박도봉 회장


2002년 봄. 동양강철은 상장폐지됐다. '동양 알루샷시'란 브랜드로 한때 시장을 휩쓸었던 유망 기업이 경영 악화로 비틀거리다 급기야 주식시장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그로부터 5년 후 동양강철은 주식시장에 재상장됐다. 부실로 상장폐지된 기업이 재상장된 첫 사례다. 금융위기로 잠시 주춤했지만 이전처럼 쉽게 비틀거리진 않았다. 이내 전열을 가다듬고 도약을 시작했다. 세계 최초 개발해 삼성전자에 납품한 LCDㆍLED TV용 알루미늄 소재는 위기를 버티고 도약을 이끈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여기에 자동차 철도 선박에 들어가는 고부가 산업재가 뒤를 받쳤다. 저부가가치 건축재 새시에 의존하던 과거의 허약한 동양강철이 아니었다.
불과 8년여 사이 동양강철에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 인수 후 통합(PMI) 전략 핵심은 '신뢰'
= 열처리 금형업체인 케이피티 박도봉 회장이 2002년 덩치가 10배나 큰 동양강철을 인수했을 때 주변에서는 우려 반 기대 반이었다. 덩치 큰 부실기업을 인수한 후 토해내거나 함께 부실화된 사례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인수 당시 동양강철은 만신창이였다. 박 회장은 공장에서 숙식하며 변화를 독려했다. 변화는 기대처럼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첫 번째 난관은 50년 새시 전통에 갇혀 있는 근로자들이었다. 박 회장이 "새시만 해봐야 소용없다. 산업용을 개발해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노조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날 박 회장은 노조원들에게 중국 알루미늄 압축공장 견학을 제안했다. 노조원들은 의아해했다. "선진 문물을 배우려면 일본 유럽에 가야지 웬 중국 업체?" 박 회장은 빠듯한 살림에도 광저우 공장에 노조원 60명을 보냈다. 하루에 몇 t이 생산되는지, 그들의 임금이 얼마인지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견학을 마친 후 사내에서는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박 회장은 "중국 수준이 바닥인 줄 알았던 근로자들이 우리와 똑같은 품질의 제품을 10분의 1도 안 되는 인건비로 만들어내는 걸 보고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게 전환점이 됐다"고 회상했다. 박 회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소재를 만들어야 우리가 산다"고 설득했다. 위기의식을 체험한 근로자들이 달라졌다. 박 회장은 "한방에 사고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두 번째 난제는 직원 간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박 회장이 인수했을 때 동양강철은 부서 간, 직원 간 신뢰에 완전히 금이 간 상태였다. 경영이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으면서 조직 내 불신이 팽배했다. "나는 잘하는데 남들이 엉뚱한 짓을 한다"는 식의 분위기가 극에 달했다. 박 회장은 전 직원을 모아놓고 "오늘부터 모든 것을 공개한다"고 선언했다. 박 회장은 구매 단가는 물론 장갑 하나를 얼마에 구입하는지까지 모두 공개했다. 처음에는 "쇼한다"며 수군거리던 직원들이 하나둘씩 변했다. 신뢰가 복원되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인수 후 통합의 성패는 "결국 사람에 달렸다"고 정의했다. 인수ㆍ합병이 실패하는 이유는 인수한 측이 점령군 노릇을 하며 직원들에게 신뢰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박 회장은 "신의와 성실이 먼저고 그다음이 기술개발"이라고 단언했다. 2007년 재상장을 앞두고 박 회장은 직원들에게 주식을 배분했다. 박 회장은 "금리를 보장해주고 주식 가격이 빠지면 내 돈으로 다시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노조에 사인까지 했다.
문득 "조직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전략의 내용보다 리더가 조직의 말단까지 전략을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 끈질기게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일본의 '턴어라운드' 컨설턴트 사에구사 다다시의 조언이 떠올랐다. 이렇게 쌓은 신뢰는 위기 때 빛을 발했다.
2008년 예상치 못한 금융위기가 몰아닥쳤다. 박 회장은 "모든 걸 다 공개하니 어려울 때 직원들이 먼저 손을 내밀더라"고 말했다.
노조가 자발적으로 연봉 삭감과 보너스 반납을 결의했다. 정년을 3년 앞둔 직원들이 스스로 사표를 냈다. 박 회장은 "회사를 떠날 때 공장에 돗자리를 펴고 큰절을 한 뒤 나가면서 내게 고맙다고 하는 직원들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회사가 정상화되면 꼭 다시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지켜졌다.
◆ 턴어라운드 전략 기저는 'R&D'
= 1986년 대학원에서 노사문제를 전공하던 박 회장은 영등포 한 공장에 '위장취업'했다. 노동자들에게 이념을 교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고졸 학력으로 속이고 직원 10여 명의 열처리 공장에 가까스로 취업한 박 회장은 "공고 나온 동료에게 '쭈쭈바'를 사주며 기술을 배웠다"고 말했다.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며 생산 경험을 쌓았다.
이때 경험은 상고를 졸업한 박 회장이 전형적인 실무형 테크노 CEO가 된 배경이 됐다.
박 회장은 1992년 직원 15명의 열처리 공장을 운영할 때부터 연구소를 세워 연구개발을 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박사후과정(포닥)에 있던 중 박 회장을 우연히 만나 입사하게 된 박상우 연구소장과의 인연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박 소장은 "3~6개월 정도 도와드린다는 생각에 합류했는데 여기까지 왔다"며 "연구개발에 관한 한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100개를 개발해 한두 개만 사업화에 성공해 대박을 터뜨리면 된다"는 게 연구개발에 관한 박 회장 철학이다. 벤처캐피털의 기본 철학과 맞닿아 있다.
기술이 앞선 일본ㆍ독일 기업을 배우기 위해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은퇴한 일본 기술자를 영입하기도 했다. "연구개발에 투자한 돈은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는다"는 신념이 있었다. 기술을 보여주길 꺼리는 일본이나 독일 공장에 방문할 때는 탐방직원들과 사전에 역할을 분담해 공정과 설비 내용을 외워오기도 했다.
박 회장은 무엇보다 "실패한 R&D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삼성전자에 납품해 턴어라운드 발판을 마련한 LCDㆍLED TV용 알루미늄 압출소재 핵심 기술은 사실 크루즈 시장을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
"크루즈는 화물선에 호텔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볍게 만드는 게 핵심이라 철이 아닌 알루미늄 용접기술로 H빔을 만든다. 알루미늄을 용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의 용접에 관한 한 최고 연구소에서 로열티를 주고 기술을 가져왔는데 이 기술이 LCD용 알루미늄 소재를 만드는 핵심 기술이 됐다."
박 회장은 "예를 들어 다른 기업이 스틸로 만든 제품을 1만원에 제시했을 때 우리는 7000원에 더 혁신적인 제품을 제시했다. 대기업이 우리 제품을 쓸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회장은 중소기업이 R&D가 없으면 대기업과 상생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이 요구하는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소극적인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한 번 써보라고 제시할 수 있어야 진정한 상생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박 회장은 설명했다.
연구개발에 관한 한 박 회장의 극성은 유별나다. 얼마 전에는 추석을 끼고 2주간 유럽 7개국을 다녀왔다. 출장을 다닐 땐 연구소장이 늘 동행한다. 연구소장은 박 회장이 방문하는 곳마다 보고 듣고 배운 걸 모두 녹음한 후 그날 저녁 정리해 다음날 아침식사를 할 때 박 회장에게 보고한다.
박 회장은 출장 기간에도 이를 본사에 보내 연구하도록 한다. 연구개발에 관한 논의와 의사 결정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셈이다.
사업 초기부터 정착된 연구개발 문화는 '새시'의 영광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동양강철의 문화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
박 회장은 "인수 후 직원들이 우리도 이제 믿고 바뀌어야 한다는 사고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과 동시에 연구소장을 필두로 연구개발 문화를 이식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알루미늄은 연구개발을 할수록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소재라고 단언했다. 박 회장은 "미래는 에너지와 환경이 기업 생존의 필수요건이다. 플라스틱과 달리 100% 재활용이 가능하고 철보다 가벼운 알루미늄이 일상을 바꿔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박도봉 회장은 …
△1960년 충남 금산 출생 △1979년 대전상고 △1985년 목원대 상업교육과 △2007년 서남대 경영행정대학원(석사) △1988년 장안종합열처리(현 케이피티유) 설립 △2002년 동양강철 사장 △2008년 동양강철 회장
[임상균 기자 / 황형규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