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빚 권하는 정부..DTI 둑 무너진다
[이데일리 박철응 기자] "가격 안정성 도모를 위해서는 LTV(담보인정비율) 및 DTI(총부채상환비율)의 잦은 변경을 지양해야 한다"(2010년 6월, OECD `한국경제 보고서`)
"적절한 검증도 없이 DTI를 경기조절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책은 보다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를 필요로 한다"(2010년 8월,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DTI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은 일반적 조언이다.
금융위기로 세계가 소용돌이칠 때, 우리나라의 DTI 등 금융규제는 모범적 사례였다. 우리 정부도 해외에서 한국경제의 체력을 설명하면서 DTI를 강조해왔다.
무엇보다 소득 수준에 맞는 부채 규모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합리적이고 효용이 큰 정책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번 부동산 대책에 내년 3월까지 실수요자에 한해 금융기관이 DTI 적용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DTI 규제는 한시적으로 무력화됐다.
건설업계의 요구가 적극 반영됐으며 주택 경기를 살리기 위해 가계와 금융 건전성을 볼모로 잡힌 것이다. 빚 내서 집 사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름 없다.
정부는 OECD가 "잦은 변경을 지양하라"던 DTI를 올 들어 두번째 `변경`했다. DTI 규제는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던 원칙도 이미 빛이 바랬다. 원칙을 잃은 정책은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정책이 신뢰를 잃으면 시장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고, 과거 사례에서 보듯 그 피해는 대부분 서민들의 몫이다.
물론 정부는 DTI 기본 골격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강변할 것이다. 사실 그렇다. 내년 3월까지 한시적으로 실수요자에 한해 금융기관이 자율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강남3구는 제외됐다.
일정 기간만 풀어주는 것이며 실수요자만 대상으로 DTI의 틈새를 보다 넓힌 조치다. 하지만 문제는 틈새가 둑을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DTI 완화의 목적은 거래 활성화에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 이면에는 위기의 건설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내년 3월까지 한시적으로 완화했는데도 거래 활성화라는 결과물을 얻지 못하고 건설업 구조조정이 가속화된다면 새로운 요구가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 대책도 지난 4.23대책의 수혜자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자 새로 들고 나온 것이다.
실제 서울지역 주택담보대출의 DTI 평균 비율은 23% 가량으로 한도인 40~50%에 크게 못 미친다. 이는 이번 대책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집값 하락을 전망하는 심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고, 하반기 금리 인상도 불가피해 보인다. 이러저래 `못 사는 것`이 아니라 `안 사는 것`이란 진단이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건설업계는 이같은 시장 흐름을 용인할 수 없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DTI의 일괄적인 완화를 강하게 주장할 것이고, 한 발 두 발 물러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 DTI 규제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한다. 가계대출 규모는 700조원을 넘어선 상태다.
이는 우리나라 건설업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구조적 문제와 맥이 닿아 있다. 경제개혁연대가 2008년 10월 조사한 OECD 회원국들의 GDP 대비 건설업 부가가치 비중을 보면 우리나라는 1995~2006년 평균 8.80%로 1위를 차지했다. OECD 30개 회원국 평균 5.48%의 1.6배 수준에 이른다.
비대한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영양분을 계속 공급하려면 탈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의 의지와는 별개로 건설업 구조조정은 앞으로 시장에서 상시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제 주택은 투기 목적이 아닌 주거 목적이라는 큰 흐름에 맞춰가야 한다"면서 실수요자 위주 대책을 지시한 바 있다. 하지만 실수요자 대책이 투기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물론 건설업체 CEO 출신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임기 중 건설업체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대형 개발 프로젝트가 좌초하는 상황을 손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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