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불패' 사수파의 자가당착 투쟁
[한겨레21] [곽정수의 경제 뒤집어보기]
700조원 규모 가계 부채에 우려 큰데 DTI 완화 주장…
땅값 올리려는 기득권 세력에 휘둘려 또 정책 일관성 잃나
경제위기 회복 과정에서 양극화 논란이 뜨겁다. 기업 측면에서 양극화의 핵심이 대·중소기업 간 격차라면 개인 측면에서는 빈부격차다. 한국에서 빈부격차의 주된 요인은 '부동산 불패 신화'로 상징되는 부동산 투기병이다. 부동산 소유의 편중과 고질적인 땅값 폭등은 부의 불평등을 악화시켜왔다.
건설, 쉽고도 위험한 경기 부양의 유혹
우리나라의 토지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 땅을 모두 판 돈으로 대략 미국 땅의 절반을 살 수 있고, 캐나다 땅을 6번 살 수 있으며, 프랑스는 8번 살 수 있을 정도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해방 이후 역대 정권의 집권 기간 중 연평균 땅값 상승률을 비교한 것을 보면, 박정희 정권 때 땅값이 가장 많이 폭등했다. 1963년 전국 땅값 총액이 3조4천억원에서 1979년 329조원으로 무려 100배 상승했는데, 이는 연평균 33%의 상승률에 해당한다. 이후 전두환 정권 때 땅값은 2배가 오르고, 노태우 정권 때 2.3배 상승했다. 김영삼·김대중 정권 때는 땅값 총액이 오히려 하락했다. 집권 내내 부동산에 시달린 노무현 정권 때는 상대적으로 소폭 상승했다. 땅값이 많이 오른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은 모두 군사정부고, 이후 세 정권은 모두 문민정부로 대조를 이룬다. 군부정권의 성장 지상주의, 실적주의, 개발 위주 정책은 당장은 고성장을 가져왔지만, 땅값 상승이라는 괴물을 낳았다.
역대 정부는 조금만 경기 불황이 와도 건설을 불쏘시개로 써서 경기를 살리는 인위적 부양책을 밥 먹듯이 써왔다. 그것은 부동산 투기를 조장했다. 그 과정에서 부익부 빈익빈, 서민 고통 증가, 노동 의욕 저해, 부의 정당성 상실, 위화감 팽배 등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가 양산됐다. 건설업체 난립과 과도한 건설업 비중은 그 부산물의 하나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0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1995~2006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업의 부가가치 비중을 비교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8.8%로 스페인과 일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건설업 의존도가 과도하다.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면 '건설사 부실→금융사 연쇄 부실→부동산·건설 경기 부양책 발표→그것도 부족하면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지원→국민 부담 귀결'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이명박 정부가 잇따라 부실 건설사와 금융사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고 부동산 불패 신화가 지속되면, 그 나라의 국가경제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관심은 손쉬운 불로소득으로 쏠리고, 생산적 활동은 뒷전이 된다. 일확천금을 노린 투기 바람의 이면에는 집 없는 서민들의 눈물과 한숨이 쌓인다.
부동산을 정상으로 돌리려면 정부가 부동산·건설을 동원한 인위적 경기 부양의 유혹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동시에 보유세의 점진적 인상과 그에 상응하는 거래세 인하, 다주택 보유자의 양도세 강화, 거래 투명성 제고, 서민 임대주택 공급 확대, 무분별한 주택대출을 막기 위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규제 강화 등이 입체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마약과 같아서, 벗어나려 하면 극심한 금단현상과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또 그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은 총력 저항을 한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지키기 위한 저항은 두 가지로 집중된다. 먼저 부동산 세금 증가에 대한 저항이다. 참여정부 시절 보수 언론이 일제히 '세금폭탄론'을 터뜨린 것이 단적인 예다. 다음은 땅값 하락에 대한 저항이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땅값 하락을 저지하고, 땅값을 다시 상승세로 돌려놓기 위해 암약한다. 최근 DTI 완화 여부를 포함한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은 바로 부동산 불패 신화 사수파들의 땅값 하락 저지 투쟁이다.
윤증현 장관의 DTI '공치사'
부동산 불패 신화 사수파들은 현재 주택시장은 미분양 아파트 적체 장기화, 입주 대란 위기감 고조, 거래 급감 등으로 정상적 주택시장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DTI 규제 완화를 포함한 강도 높은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의 땅값·집값 하락은 오랜 부동산 불패 신화가 허물어지면서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오히려 경제위기 2년간 다른 선진국가의 집값이 엄청나게 떨어진 것에 비하면 우리의 하락폭은 크지 않다. 오히려 빨리 가격 조정이 안 되면 침체는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마저 나올 정도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이 "(주택 가격이) 지금보다 몇십%는 더 떨어져야 맞다"고 말한 것은 지극히 타당한 얘기다.
DTI 완화는 소득에 비해 더 많은 빚을 낼 수 있게 해줌으로써 주택 수요를 끌어올려보자는 것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700조원이 넘는 가계 부채가 너무 많다는 우려가 팽배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DTI 규제 완화론의 자가당착을 금방 알 수 있다. 더구나 출구전략과 함께 시장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서 상환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DTI 완화의 실효성도 의문시된다. 시중에 돈이 없어서 집값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돈은 사방에서 넘쳐난다. 지금의 집값 하락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 때문이다. 전반적 경기 상황과 소득 축소, 주택 공급 물량 확대, 고령화 추세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집값이 하향 안정화되지 않겠느냐는 심리가 시장을 지배한다. 집값이 더 떨어질 전망인데, 빚을 얻어 집을 서둘러 사는 바보가 있을까? 주택 경기는 집값이 충분히 하락해 '이제는 더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확산될 때 비로소 살아나게 돼 있다. 거래 부진으로 인한 실수요자들의 불편은 별도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맞다.
DTI는 처음 도입될 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DTI가 처음 등장한 것은 참여정부 때인 2005년 8·31 조처 때다. 집값 폭등세를 잡기 위한 강력한 규제책이었다. 2006년 3·30 대책 때는 투기 지역에서 6억원을 초과하는 집을 살 때는 원리금 상환액이 자기 소득의 40%를 넘지 못하도록 더욱 강화됐다. 하지만 집값 폭등세는 이후 6개월 이상 더 이어졌다. 이유는 금융기관과 대출자들이 만기 연장 등 각종 편법으로 DTI 규정을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뒤늦게 알고 노발대발해, 금융감독 당국이 창구 지도를 강화했다. DTI는 제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집값도 2007년 1월을 고비로 안정세로 돌아섰다. 노 대통령은 당시 DTI가 제 기능을 못한 이유와 책임을 밝히기 위한 특별조사를 지시했다.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청와대까지 모두 조사 대상이었다. 조사 결과 금융감독 당국의 느슨한 관리와 안이한 시각이 확인됐다. 문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운 좋게 넘어갔다. 그 장본인 중 한 사람이 당시 금융감독의 수장이던 윤증현 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윤 장관은 지난해 초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로 지명됐을 때, 참여정부 시절 DTI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2008년 이후 금융위기를 어떻게 넘겼겠느냐고 공치사를 해 혀를 차게 만들었다.
정책 혼선 먹고 자라는 부동산 괴물
"사장님, 한두 번 겪었습니까?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풀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서울 잠실 지역의 한 부동산업소 대표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정부의 오락가락, 냉탕·온탕식 부동산 정책에 오랫동안 익숙해진 결과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깨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다. 부동산 투기는 정부 정책의 혼선과 그로 인한 국민의 불신을 먹고 괴물처럼 성장한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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