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장관이 국방비 감축을 주장할 수 있는 이유

신호철 기자 2010. 7. 1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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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년에 쓰는 국방 예산은 나머지 전 세계 나라가 쓰는 국방 예산과 맞먹는다. 지난 10년간 미국 국방비는 70% 가까이 늘었다.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미국 국방비에 칼을 대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티파티 신고립주의자와 리버럴 반전 운동가가 함께 모이는 일이 가능할까?” 지난 7월7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미국 국방 예산 줄이기 운동을 벌이는 세력을 설명하는 기사였다. ‘티파티’란 민주당을 반대하는 친공화당 보수 세력이 주최하는 모임 또는 그 모임을 주최하는 풀뿌리 우파 세력을 부르는 말이다.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던 티파티 운동가가 반전·평화 운동가와 힘을 합친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국방 예산 감축이라는 주제라면 가능하다. ‘좌우합작으로 국방 예산을 줄인다’. 워싱턴 독립언론인 ‘워싱턴 인디펜던트’ 뉴스의 머리기사다. 미국 국방 예산, 러시아의 10배 최근 워싱턴 정가에서 국방 예산 감축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다. 왜 국방비가 문제 되는지를 이해하려면 국방비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 국방 예산은 미국을 뺀 전 세계 각국의 국방 예산을 합친 것과 비슷하다. 러시아의 10배, 중국의 7~8배에 달한다.  

ⓒU.S. Air Force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해외 파견 미군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지난해 기준으로 해외 파병 미군이 30만명에 이른다. 위는 미 국방부 본부(펜타곤).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 국방부가 올해 2월 요청한 2011년 국방 예산은 7082억 달러(약 847조원)였다. 이 액수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계산해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역사상 최고액이 될 만한 금액이다. 오바마가 취임한 이후 해외 미군기지 건설은 더 늘어나서 전 세계 46개국에 900여 군사시설, 650개 기지를 두고 있으며 건물만 2만6000동에 달한다. 2001년 이래 10년간 국방비는 계속 증강해왔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증가한 것이다. 국방비 지출 증가가 멈추지 않는 이유는 이라크와 아프간 주둔 미군이 철군하지 않은 데다 한번 증가한 국방 예산을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지, 국방비를 줄이자는 주장을 한 정치인은 대중에게 인기를 얻기 힘들다. 국방비 감축은 종종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라고 불린다. 최근 미국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가장 먼저 국방비 예산 감축을 주장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방부 장관이다. 지난해부터 로버츠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공식 석상에서 국방비 감축의 필요성을  주장하곤 했다. 지난 5월8일 아이젠하워 대통령 도서관 강연에서 “유정(油井)이 분출하고 있다”라며 봇물 넘치듯 커지는 국방비 예산을 비유했다. 그는 펜타곤의 관료주의를 지적하며 국방부 본부와 해외사령부를 구조조정할 것을 암시했다.  게이츠 장관은 또 이날 미국 장군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 국방부에는 너무나 많은 대장과 제독이 있다. 냉전 종식 이후 1990년대 미군 병력은 40%가량 감축됐으나 군 장성은 20%만 줄었을 뿐이다”라는 통계를 제시했다.

 

 

ⓒReuter=Newsis 국방비 삭감을 주장하는 의원들. 왼쪽부터 민주당의 바니 프랭크 의원, 공화당의 월터 존스·톰 코번 의원.

군 장성 수 같은 민감한 문제를 국방장관이 과감히 언급할 수 있는 이유는 게이츠 장관이 장성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민 통제의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국방장관은 장성 출신이 아닌 민간인이 맡고 있다. 국방부 장관은 당연히 전직 장군이 맡아야 한다는 한국의 고정관념과는 차이가 있다. 게이츠 장관의 소신은 물론 국방비 감축에 도움이 되는 것이겠지만, 진보파 일각에서는 미온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미국 진보지 〈더 네이션〉은 “게이츠 연설의 논리에 따르면 국방비 감축이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그가 한 일은 한 무기를 사는 데 드는 예산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것뿐이다”라고 평했다. 좀 더 혁신적인 국방비 감축안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지속가능한 국방을 위한 대책위원회 (Sustainable Defense Task Force)’가 그곳이다. 민주당 바니 프랭크 의원을 단장으로 한 이 위원회는 지난 6월11일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국방비를 25% 감축하라는 것이었다. 보고서는 앞으로 10년간 예정된 국방비 가운데 9600억 달러를 감축할 것을 권한다. 게이츠 장관이 제안한 것보다 더 과감한 감축안이다. 감축안 가운데는 핵무기를 줄일 것, 유럽·아시아 주둔군 10만명을 감축할 것, 해군 군함을 20% 줄일 것 등을 포함하고 있다. 국방 예산 감축에 공화당 의원도 가세 주목해야 할 것은 ‘지속가능한 국방을 위한 대책위원회’의 국방비 예산 감축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공화당 정치인이 많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 보고서는 작성에 도움을 준 사람의 이름을 서두에 밝혔는데 공화당 론 폴 하원의원과 월터 B. 존스 하원의원의 이름이 올라 있다. 월터 B. 존스 의원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이라크 전쟁을 강력히 지지했던 매파 의원이었다. 그는 이라크 전쟁에 비협조적인 프랑스를 비판하며 의원회관 식당 메뉴판에서 ‘프렌치 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라고 바꿔 붙이도록 해 유명해졌다. 그런 전쟁 강경론자가 국방비 삭감론에 힘을 실었다. 미국 공화당에서 국방비 감축을 주장하는 정치인이 요즘 늘어나고 있다. 예산삭감위원회에 속한 상원의원 톰 코번도 국방비 절감을 주장하는 공화당 정치인이다. 그는 위원회 의장에게 편지를 보내 더 이상 국방비를 늘리지 말라고 요청했다. 공화당 론 폴 의원, 다나 로라바셔 의원도 국방비 감축론자다.

 

 

 

 

ⓒU.S. Air Force 국방비 삭감론자들은 F22 전투기·F35 전투기(위)와 공중레이저 사업 등을 도입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공화당 정치인들이 국방비 삭감을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일관성 있는 주장이다. 공화당은 줄곧 오바마 행정부의 재정 확대를 비판하면서 나라 빚이 늘어난다고 공격했기 때문이다. ‘세금 삭감’과 ‘작은 정부’가 공화당 티파티의 요구 사항이었다. 모처럼 공화당과 민주당의 초당적인 협력 속에 국방비 삭감안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이 끝내 하지 못한 국방비 동결을 오바마 대통령이 이룬다면 또 하나의 업적이 되겠지만, 여전히 장애물은 많다. 군수업체들이 로비를 통해 지역구 의원의 마음을 돌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방비의 좌우합작’은 한국에도 있는 일이다. 다만 방향이 반대다. 한국 국방비는 이른바 진보 정부라고 불린 노무현 정부 때도 증가 추세였다. 국방부는 내년 국방 예산으로 6.9% 증액한 31조 6000억원을 요청했다. 대통령의 성향과 관련 없이 국방비는 늘어난다. 〈포린 폴리시〉에 따르면 한국은 병사 1만명당 장군 비율이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신호철 기자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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