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대동맥' 경부고속도로 40년

2010. 7. 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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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발전과 후손의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인 만큼 우리의 힘으로, 우리 기술로, 우리 노력으로 빠른 시일내에 완공해 산업화의 주춧돌이 되게 하겠다."1968년 2월 동장군의 기세가 꺾이지 않은 날씨에 열린 서울∼부산 고속도로 착공 기공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같이 말했다. 그후 40년, 박 전 대통령의 말대로 경부고속도로는 한강의 기적을 만든 국토의 대동맥으로 자리잡았다. 반대가 더 많았던 경부고속도로 착공1968년 당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142달러의 후진국이었다. 국가예산의 23.6%인 429억7300만 원을 투입하는 단군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극심했다.야당과 학계에서는 자동차 등록대수 5만 대에 불과한 나라에서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고속도로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을 비유해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서울~부산간 복선 철도가 있는 상황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은 중복투자라는 지적, 도로 건설이 필요하다면 비포장도로가 대다수였던 전국의 국도를 정비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특히 경부축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은 수도권과 영남권 등 특정지역에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비난도 많았다.야당에서는 대형 국책사업이 충분한 조사준비 없이 졸속으로 착공되고 서울~수원 공사는 예산에 없는 공사로 국회에 보고하지도 않고 착공됐다고 비난했다. 학계에서는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수도권 등 대도시로 생산 및 서비스시설이 집중돼 중소도시 경제는 퇴보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도로 건설 과정에서 산을 깎고 농지를 훼손하는 등 환경을 파괴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고속도로, 대한민국을 바꾸다착공 열 달만인 1968년 12월 서울~수원 구간이 개통된데 이어 이듬해 서울~대전, 대구~부산 구간이 완공됐고, 공사시작 2년 5개월 만인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는 부족한 자본과 기술력의 한계, 여론의 반대 등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전구간 개통을 맞았다.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16시간 걸리던 서울~부산은 5시간 35분으로 크게 단축되고, 경부축을 1일 생활권으로 연결하며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왕복 8차선으로 확장된 경부고속도로 동대구~구미 구간.(사진=연합뉴스)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고속도로 건설에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호남고속도로(대전~순천), 남해고속도로(부산~순천, 이상 1973년), 영동고속도로(신갈~강릉, 1975년), 구마고속도로(대구~마산, 1977년)를 잇따라 완공하며, 전국을 고속도로로 연결하는 국토의 동맥을 완성했다.고속도로의 원활한 물류 수송에 힘입어 우리나라 산업은 경공업에서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등 중화학공업으로 재편될 수 있었다.뿐만 아니라 고속도로 인접 도시의 발전, 지방 공업단지 연결 등으로 국토 균형발전의 토대가 마련됐고, 지역간 정보와 문화 교류가 다양해지며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7명의 희생위에 탄생한 경부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부근(부산기점 246km)에는 40년 전 조국 발전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77명의 순직 근로자를 추모하는 위령탑이 서 있다.경부고속도로 최대 난공사였던 대전~대구 구간은 당재터널(옥천터널), 영동터널 등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터널 및 교량을 만들기 위해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발파작업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77명이 순직했고, 이들의 희생 위에 고속도로는 놓여진 것이다.

충북 옥천군 경부고속도로 순직자 위령탑. 매년 7월 7일 위령제가 열린다.(사진=연합뉴스)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 1970년 7월 7일, 완공의 기쁨보다는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동료를 그리는 아쉬움의 눈물이 많았으며, 젊은 도로 기술자들이 부동자세로 눈물을 흘리는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도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다. 경부고속도로는 지금도 진행형경제·사회적으로 어려운 여건에서 탄생한 경부고속도로는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바꿔 놓았으며, 경제 대동맥이자 경제발전의 화두로서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이끈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경부고속도로는 지금도 국토의 대동맥이자 국민의 주요 교통로로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1992년 서울(양재)~수원 왕복 8차로 확장에 이어 1998년 청원~회덕 8차로 확장, 2003년 동대구~구미 8차로 확장, 2006년 동대구~영천 8차로, 구미~영동이 6차로로 넓어졌으며, 2008년 부터는 한남~오산 전일제 버스전용차로가 시행돼 수도권 주민의 교통난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경부고속도로 약사1968년 2월 1일, 서울~수원 기공식(현 만남의 광장)1968년 12월 21일, 서울~수원(30km) 개통1968년 12월 30일, 서울~오산(14.2km) 개통1969년 9월 29일, 오산~천안(38.1km) 개통1969년 12월 10일, 천안~대전(69.2km) 개통1969년 12월 29일, 부산~대구(122.1km) 개통1970년 7월 7일, 대전~대구(149.8km) 개통(전 구간 개통)1992년 7월 14일, 양재~수원 8차로 확장1998년 9월 30일, 청원~회덕 8차로 확장2003년 12월 30일, 동대구~구미 8차로 확장2006년 11월 8일, 동대구~영천 8차로 확장2006년 12월 13일, 구미~영동 6차로 확장

※자료제공=국토해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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