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각본없는 드라마 계속되나
[이데일리 문영재 기자] 세종시(이하 행정도시) 건설 사업은 반전을 거듭해왔다. 신행정수도 추진→신행정수도특별법 제정→헌법소원→위헌→행정도시 특별법 제정→헌법소원→각하→수정안 등 행정도시 추진 역사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
수도이전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대립하면서 심각한 사회갈등을 빚었고, 당시 참여정부와 여당은 국민투표를 통해 정면 돌파하는 방안도 심도 있게 검토했다.
◇ 2002년 9월,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
2002년 9월 30일. 행정도시의 모태인 신행정수도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민주당 선대위 출정식에서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부처부터 옮겨가겠다"는 내용의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 공약이 나오기까지 새천년민주당 내부에서도 뜨거운 찬반 논쟁을 벌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A씨는 "역대 대선 공약 중 이렇게 폭발력이 큰 공약은 없었다. 수도권 표심 이탈이 예상된다는 내부 반대 의견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며 "하지만 국가균형발전과 캐스팅 보트를 쥔 충청권 민심을 잡기 위해선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라고 전했다.
◇ 2003년 2월, 신행정수도 밑그림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신행정수도 이전 사업이 본격화한다. 구체적인 타임스케줄과 청사진은 2003년 2월 대전에서 열린 국정토론회에서 제시됐다. 새 정부가 공식 출범하기도 전에 밑그림이 나온 셈이다. 참여정부의 최우선 정책 과제가 신행정수도였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제시한 타임스케줄은 2004년 상반기 부지 예정지 지정, 2007년 상반기 부지 조성공사 착수, 2010년 입주 순이었다.
참여정부는 공식 출범 5개월 만에 입지·개발 절차 등을 담은 신행정수도건설 특별조치법을 제출한다. 하지만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반대가 워낙 심해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위원회 설치 구성안이 부결됐다. 충청권은 거세게 항의했다. 여기에 변수로 작용한 것인 2004년 4.15 총선이었다.
충청권을 중심으로 지방이 신행정수도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지도부는 반대 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작업을 벌였다. 결국 국회는 2003년 12월 본회의를 열어 법안을 가결한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수도 이전은 정치권의 이슈였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지는 않았다. 신행정수도 건설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것은 2004년 6월이다. 참여정부는 이때 신행정수도로 대통령 비서실을 포함한 85개 국가기관 이전을 공식 발표한다. 또 7월에 연기-공주를 후보지로 선정하면서 신행정수도 건설은 여·야, 진보·보수를 넘어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대립구도도 바뀐다.
◇ 2004년 7월, 연기-공주 선정
당시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수도 이전을 막아야 한다`고 반발했고, 경기도·인천 등 일부 지자체들은 신행정수도 후보지 평가위원회에 인력을 파견하지 않는 등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진보 성향의 민주노동당 조차도 논란 끝에 신행정수도 건설 반대 당론을 채택할 정도였다.
반면 충청권과 일부 지방은 신행정수도 반대는 수도권 이기주의라며 수도 이전만이 지방을 살리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맞섰다. 이 과정에서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측은 `이는 천도이며 천도를 하려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신행정수도 추진을 위한 돌파구 마련에 부심했던 참여정부와 여당인 열린우리당 수뇌부는 국민투표 실시 여부를 심도 있게 고려할 정도였다.
신행정수도 건설에 관여했던 B씨는 "국무총리·여당 대표·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장·신행정수도 추진단장 등 수뇌부가 모여 국민투표를 통해 정면 돌파하는 것을 논의했었다"라며 "비용, 국민투표를 할 경우 승산이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해 조사키로 했으나 착수 직전에 중단됐다"고 전했다.
그는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간다는 점이 걸림돌이었고 무엇보다 실제 투표를 강행할 경우 결과가 가져올 후폭풍이 당시 정부 입장에선 이래저래 부담이 된다는 게 국민투표를 하지 못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 2004년 10월, 위헌판결
사회적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해 분수령이 된 게 헌법소원이다. 2004년 7월12일 `수도이전 위헌 헌법소원 대리인단'은 신행정수도 건설이 위헌이라는 취지의 헌법소원과 함께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 활동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다.
2004년 10월21일 헌법재판소는 "수도=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관습 헌법론을 피력,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해 8대1의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내린다.
여당 핵심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C씨는 "헌재의 위헌 판결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여당 내에서도 기각 결정에 대한 환영 회견문만 마련돼 있을 정도였다"고 술회했다.
정부는 헌재의 위헌판결 이후 부랴부랴 후속대책 마련에 들어갔으며, 문제가 된 대통령과 국회를 제외한 정부기관 이전이라는 해법을 찾는다. 그해 11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결정에 따른 후속 대책위원회`가 출범했고, 2005년 3월 여야는 줄다리기 끝에 12부4처2청만 옮기는 것을 골자로 한 `신행정수도건설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 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한다.
◇ 2005년 3월, 신행정수도→행정중심복합도시
이에 따라 신행정수도 이전은 `행정타운+교육+산업도시`를 묶는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수도 이전은 행정기관 이전으로 축소됐지만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정부는 이 같은 갈등을 안은 채 2005년 5월 행정도시 예정지역 및 주변지역을 최종 확정했으며, 행정도시 주변에 대한 투기단속 및 보상을 위한 주민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판결을 끌어냈던 헌법소원 청구인단은 행정도시법이 대체입법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민투표와 헌법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을 근거로, 2005년 6월15일 재차 헌법소원을 제기한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11월24일 행정도시 특별법에 대한 위헌소송을 각하함으로써 참여정부 행정도시를 둘러싼 논란은 수그러든다.
◇ 2007년 7월, 착공
참여정부는 헌재의 각하 결정 이후 2006년 1월1일 건설교통부 외청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개청한다. 그리고 2007년 7월20일 행정도시 건설을 위한 착공식이 연기·공주에서 열린다.
순항할 것으로 여겨지던 행정도시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또 다시 격랑에 휩싸인다. 새 정부의 초대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 내정된 최상철 서울대 명예교수가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기존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행정도시 궤도 수정을 주장하면서 이 문제는 또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다.
여기에 당초 2009년 6월 국회 통과가 확실시되던 세종시 설치 근거법인 `세종특별자치시 특별법`이 무산되면서 행정도시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급기야 정운찬 국무총리가 세종시와 관련해 "국가 전체로 봐선 행정적 비효율이 있다"며 행정도시의 방향을 틀었다.
◇ 2010년 1월, 수정안 제출
MB정부는 지난1월11일 세종시의 도시성격을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바꾸고 행정기관 이전도 백지화하는 수정안을 내놨다.
대신 과학비즈니스 벨트 거점지구 지정을 추진해 삼성과 한화, 웅진, 롯데, SSF등의 기업을 유치하기로 했다. 자족용지 비율을 기존 6.7%에서 20.3%로 대폭 확대하고 25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고려대와 KAIST 등도 세종시에 들어오기로 했다.
정부는 총 16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현행 계획에 잡혀있는 8조5000억원의 예산을 그대로 유지하고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에 따른 재정지원 3조5000억원과 각종 기업 유치 등으로 발생할 민간투자 4조5000억원을 합친 금액이다.
정부는 세종시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지구로 지정, 2015년까지 세종국제과학원(가칭)을 설립하고 그 산하에 기초과학연구원, 융복합연구센터, 중이온가속기, 국제과학대학원 등 핵심시설을 건립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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