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 발단에서 폐기까지
[머니투데이 변휘기자][[세종시 수정안 부결 파장은]]
'세종시' 문제는 지난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따라 처음 등장한 이후 지속적으로 여야의 정쟁 거리로 논란이 돼 왔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정운찬 국무총리가 취임과 함께 '수정안'을 들고 나오며 정국의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
참여정부가 마련한 '신행정수도건설 특별조치법'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으로 얼굴을 바꿨고 2005년 3월 여야는 이 법안을 합의 처리했다. 이후 세종시 건설은 2007년 7월 기공식을 거치며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지만 같은 해 12월 이명박 정권의 출범은 또 한 번의 굴곡을 예고했다.
특히 지난해 9월 국무총리로 내정된 정운찬 후보자의 세종시 수정 의지가 10개월 넘게 이어진 세종시 수정 논란의 발단이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세종시 원안에 대해 "국가 전체로 봐서 행정적 비효율이 있다"며 "행정부처가 두 곳으로 떨어져 있어 여러 모임을 할 때 많은 인력이 옮겨 가는 것도 비효율이고 서류도 왔다 갔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도시를 만들려면 자족기능을 가져야 한다"며 "당초 예산 22조5000억원보다 늘려서라도 (세종시를) 과학연구기관과 대학을 갖춘 인구 50만 명의 자족 기능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야권은 중앙부처 이전을 백지화 하려는 의도라며 '원안 고수'를 주장했다. 특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른바 '원안+α'를 바탕으로 수정안 반대 입장을 밝히며 여권 내부의 갈등이 불거졌다.
그러나 정 총리는 지난해 11월 세종시 수정 추진 방침을 발표하고 민관합동위원회를 구성·발족 시켰다. 이 대통령도 이어진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선 당시의 '세종시 원안 추진' 약속을 파기하게 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수정안 추진 방침을 천명했다.
이후 정부는 지난 1월 11일 세종시 성격을 행정도시에서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바꾸고 삼성·한화·롯데·웅진 등의 기업을 유치하는 내용의 수정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같은 내용의 세종시 수정 관련 5개 법안을 3월23일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6.2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충청권은 물론 전국에 걸쳐 참패함에 따라 '세종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불거졌다. 여기에는 야권은 물론 여당내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도 가세했다. 결국 여야는 22일 세종시 수정안을 국회 국토해양위 전체회의에 상정, 토론 및 표결절차를 거쳐 부결시켰다.
수정안은 한나라당 임동규 의원 등 친이(친이명박)계 의원 66명이 세종시 수정안의 '본회의 부의요구서'를 제출함에 따라 마지막 생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29일 오후 본회의 표결 처리 결과는 찬성 164 대 반대 105, 기권 6으로 부결됐다. 10여 개월 동안 정국 논란의 핵이었던 세종시 수정안은 결국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됐다.[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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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휘기자 h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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