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종이 만난 사람]'우리땅 걷기' 운동 벌이는 향토문화사학자 신정일

김석종 문화에디터 2010. 6. 2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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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다 보면, 길 위에서 자연을 만나고 나를 만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도로와 자동차의 속도를 버리고, '올레길'과 '둘레길', 옛길을 찾아나서고 있다. 신정일씨(56)는 '걷는 사람'이다. 전국 방방곡곡의 강과 옛길과 산을 죄다 두 발로 누빈 강호 제일의 '걷기 고수'다. 정처없는 나그네로, 도보여행가로, 우리땅 걷기 운동가로, 저술활동을 위해 답사를 하는 향토문화사학자로 평생을 길에서 살았다.

온 산천을 두 발로 빠짐없이 밟아온 향토 문화사학자 신정일씨는 '걷기'를 통해 강산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흙 한 줌까지 가슴으로 만난다. | 김세구 선임기자 k39@kyunghyang.com지난 22일 전주에서 신씨를 만났다. 제대로 된 전주 비빔밥에 모주 한 잔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그의 집으로 옮겼다. 햇빛에 검게 그은 얼굴에 헐렁한 개량한복을 입은 그는 뒤축이 단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전주 진북동에 있는 아파트는 전체가 집필실 겸 서재다. 거실이든 방이든 책으로 가득 차 있다. 벽에는 '세상은 걸어볼 만하다'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다. 신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우리땅걷기' 모임의 캐치프레이즈다. 장시간 인터뷰에도 요지부동, 또박 또박 말끝에 힘을 주는 것에서도 '걷기 달인'의 남다른 내공은 묻어났다.

- 그동안 얼마나 걸었습니까."어릴 때부터 참 많이도 걸어다녔습니다. 30년 가까이 답사를 하는 동안 기록으로 남긴 거리만도 2만㎞쯤 됩니다. 강과 산, 그리고 옛길과 마을 등 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지요. 남한 땅에 흐르는 8대강을 발원지부터 하구까지 두 발로 밟았어요. 한강은 3번, 금강 섬진강은 2번 끝마쳤죠. 조선시대 옛길인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도 걸었지요. 국내의 크고 작은 산도 400여개를 올랐습니다. 지금은 희미해진 옛길을 더듬어 인가가 없는 산골 오지까지 헤매고 다녔습니다."

키 170㎝, 몸무게 60㎏. 호리호리한 체격에 걸음걸이가 가볍고 날렵하다. 그는 하루 평균 25~30㎞쯤 걷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혼자서 걸어다녔다. 요즘은 주말 2~3일씩 우리땅걷기 회원들과 함께 길을 나선다. 지난주에는 춘천 봄내길 석파령 고개를 걸었다. 주말에는 강릉 대관령너머길을 걸을 계획이다. 그는 '왜 걷느냐'는 물음에 "걷다 보면 나를 만난다"고 대답했다.

"길에서 자연을 만나고, 역사, 문화, 그리고 인연을 만납니다. 강산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흙 한 줌까지 가슴으로 만납니다. 길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풍경,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인생을 가르쳐주는 스승입니다. 그 걸음 속에서 자신을 만나고,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보게 됩니다. 옛사람들이 도(道)를 근원적인 진리로 삼은 것은 그만큼 큰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 걷기의 매력은 무엇입니까."걸으면 비아그라가 필요없습니다. 또 차를 타고 휙 지나가는 '주차간산'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봅니다. 풍경이 새롭게 보입니다. 걷는다는 것은 오로지 내 두 발을 움직이는 행위입니다. 누가 대신해주거나, 건너 뛸 수 없어요. 평등하지요. 함께 가는 사람은 도반(道伴)이 됩니다. 걷다보면 '저 모퉁이 돌아가면 어떤 낯선 풍경이, 어떤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합니다."

- 강을 따라 걷는 느낌은 어떤 것입니까."강은 물의 길입니다. 한 방울의 작은 물방울이 모여 실개천이 되고, 실개천이 모여 지류를 이루고, 지류가 합쳐져 강이 됩니다. 막히면 돌아가고, 굽이굽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만 흘러내려 바다에 이릅니다. 강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지만 강물은 날마다 새롭습니다. 그런 점에서 강은 인생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나라 강의 상류는 너무나 아름답고, 그런 곳의 새벽 풍경은 황홀합니다."

- 그런 강이 지금 모조리 파헤쳐지고 있습니다."그동안 강이 사람들에게 소외돼 있었습니다. 요즘은 4대강 때문에 관심이 부쩍 늘었으니 아이러니지요. 4대강 사업은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저절로 쌓이는 모래톱이 있고, 여울이 있어야 강입니다. 개발이나 직강화로 강의 흐름을 바꾸지 말고, 그런 돈을 스스로 자(自), 그러할 연(然)이라는 뜻대로 자연으로 돌려놓는 데 썼으면 좋겠습니다. 영산강이나 낙동강의 일부 구간만 해보고 충분히 검토한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 이미 늦어버리지 않았나요."자연은 스스로 알아서 합니다. 오염된 것도 정화시키면서 유장하게 흘러가는 것이 강의 생명력입니다. 늦지 않았어요. 지금 그대로 공사를 중단하면 됩니다. 되돌릴 수 있습니다. 해놓고 잘못되면 누가 책임집니까."

- 토목공사를 하지 않고 강을 살릴 방법이 있습니까."강을 국립공원이나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해야 합니다. 강은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서려 있는 보물창고입니다. 한강박물관, 낙동강박물관, 금강박물관 같은 강박물관을 만들고,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을 내고, 역사·문화 체험장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루터와 주막을 복원하고 강문화유산해설사를 두는 겁니다. 그것이 강을 살리는 길입니다.

신씨는 고전과 역사와 문학작품 속의 문장들을 자주 인용했다. 기독교, 불교, 동학의 경전과 사서삼경은 물론 사르트르, 카뮈, 도스토예프스키, 볼테르, 보들레르, 톨스토이, 니체의 긴 글들을 숨도 쉬지 않고 외워냈다. 두보, 김수영, 김지하, 황동규, 김용택, 곽재구 등의 시편도 줄줄이 외웠다. 특히 길과 걷기를 표현한 경구들이 풍성하게 동원됐다. < 동의보감 > 을 쓴 허준은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行補)가 낫다'고 했고, 다산 정약용은 '걷는 것은 청복(淸福·맑은 즐거움)'이라고 말했다는 식으로 '걷기의 건강학'을 설명했다. 그의 대단한 기억력에 감탄하자 "기억력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고통과 절박함 속에서 읽은 책의 문장들이 뼈에 사무친 결과"라고 했다.

- 어린 시절에 책을 많이 읽었나요."읽고 싶었지만 책이 없었어요. 전북 진안 근처 후미진 산골마을의 지질이도 가난한 집에서 자랐어요. 공부도 잘 못하고 숫기도 없어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왕따'였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진안군 글짓기 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행상으로 어렵게 마련한 입학금을 아버지가 노름으로 날려버리면서 진학을 못했죠. 그때부터 이웃 마을을 뒤지고 다니며 책을 빌려다가 등잔불 밑에서 밤을 새워 읽었습니다."

신씨는 초등학교 이후 학교 문턱을 밟은 적이 없다. 15살 때 스님이 되려고 구례 화엄사에서 두 달을 지내다가 "너는 절에 있을 팔자가 아닌 것 같다"는 주지스님의 말에 발길을 돌렸다. 낯선 마을에서 밥을 얻어먹거나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한뎃잠을 자며 대구에서 고향까지 터벅터벅 걸어서 돌아왔다. 1주일이 걸렸다. 걷기 인생의 서막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책에 빠져 살았어요. 도스토예프스키, 프란츠 카프카, 헤르만 헤세, 알베르 카뮈, 니체를 그렇게 만났습니다. 간신히 돈을 모아 임실읍내에서 책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 중간에 다 읽어버리면 어찌나 허망하던지…."

그는 이제껏 조직 생활이라고는 군대 3년이 전부인 사람이다. 중·고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마쳤다. 제대 후 제주에서 2년 반 동안 공사판 막일꾼으로 벽돌을 져 날랐다. 1981년 제주도에서 모은 돈으로 전주 전북대 앞에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카페를 열었다. '당천'은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회합장소였다. 신씨도 대학생, 지역문화예술인들과 어울려 동학을 공부하는 등 역사의식에 눈떴다. 85년에는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조직했다.

- 황토현문화연구소는 어떤 단체입니까."황토현은 동학농민군 전적지입니다. 평가절하돼 있던 동학농민운동, 전봉준에 가려진 김개남 장군, 정여립 등 전북의 역사인물을 발굴해 재조명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1주일에 2번씩 1박2일 또는 2박3일짜리 답사를 다니기도 했지요."

황토현문화연구소 활동은 산씨가 본격적인 현장 답사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낮에는 걷고, 밤에는 고단한 여정의 노독을 참으면서 책을 읽었다.

"집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그때 읽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2만권 정도는 읽었을 겁니다. 속독을 하는 편이어서 지금도 하루 1~3권씩 읽어요. 책을 읽고 현장을 답사하면서 그동안 꿈꾸었던 글이 써지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가 < 동학의 산 그 산들을 가다 > < 지워진 이름 정여립 > 같은 책들이다. 그는 동학농민군의 자취를 따라 금강 답사를 다니면서 금강 전체를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2000년 9월, 동료들과 함께 전북 장수군 수분리 뜬봉샘을 출발했다. '한걸음 한걸음 천리길을 걷는다'라는 이름의 대장정이었다. 금강이 바다와 만나는 충남 장항의 금강하구둑까지 14일 동안 천리길을 걸었다. 그후 의욕과 자신감을 갖고 강을 하나씩 답파했다. 그 기록들을 < 금강, 401㎞ > < 섬진강 따라 걷기 > 같은 '강 시리즈'로 출간했다.

- 옛길과 강을 따라 걸은 것이 책을 쓰는 중요한 밑천이 됐군요."학벌도, 월급받을 직장도 없는 아웃사이더인 저에게는 길과 강이 학교이자, 연구실이자, 도서관입니다. 저는 자득(自得)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 깨우쳐 얻을 때 그 기쁨이 더욱 크지요."

요즘 도보 답사가 유행하면서 지역마다 경쟁적으로 길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제주 올레길은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지리산 둘레길' '변산 마실길' '강화 나들길' '소백산 자락길' '봉화 울진 십이령길' '강릉 바우길' '고창 질마재길' 등 특색있는 코스도 수없이 많다. 이런 길만들기에 앞서 신씨에게 의견을 묻기도 한다. 그가 답사하고 제안한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등 조선시대 옛길 복원과 문화생태탐방로, 동해트레일도 추진되고 있다.

- 길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까."저는 옛길을 '찾고', 끊어진 길을 '잇고', 그 길을 많은 사람들이 '걷고'라는 뜻으로 '쓰리고'면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돈도 많이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제주올레의 경우는 15㎞에서 25㎞ 구간을 개설하는 데 1000만원 정도가 들었다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 포클레인을 동원해 반듯하고 넓은 길을 만들거나 쓸데없이 박석을 깔고, '데크'와 목책을 늘어놓는 곳도 있습니다. '임도'를 옛길이라고 선보이는 곳도 있어요."

- '걷기'에 대한 관심에 비해 문화콘텐츠는 부족해 보입니다."맞습니다. 길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걷는 삶의 자기 성찰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길의 영역은 그곳에 나있는 옛사람의 체취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여름방학이면 국토순례라는 이름으로 해남에서 통일 전망대, 판문점까지 그냥 군대식으로 걸어가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요. 그건 극기훈련에 불과합니다. 태백시의 검룡소에서부터 1300리 물길을 따라 김포까지 이르는 길을 걸어본다면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한강과 내가 먹는 물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어서 어디로 가는가를 알게 됩니다."

- 동해 트레일은 무엇입니까."부산 해운대의 달맞이 고개에서 동해바다를 따라 북한 두만강변 녹둔도를 연결하는 길입니다. 굽이굽이 절경인 동해 트레일 1300㎞는 세계 최고의 걷기 코스가 될 수 있어요. 여행자 숙박업소를 짓고 인증서를 발급해준다면 스페인 산티아고 800㎞ 순례길보다 몇 배나 더 황홀한 길이 될 것입니다. 남북 관계가 있으니 우선 남쪽의 끊긴 길부터 잇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북쪽에서 대륙으로 이어져 아프리카 케이프타운까지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씨는 요즘 '재미있는' 모의를 하고 있다. 나루터와 고갯마루에 있던 주막집을 되살려 '풍류마을'을 만들겠다고 한다. 팔도 민속주와 음식을 파는 마을이다. 주모를 공모해 날마다 잔치를 벌인다. 사라진 세시풍속과 민속놀이를 복원해 삼짇날에는 화전 부치기를, 단옷날에는 부채그림을 그리는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다. 신씨는 풍류마을 구상에 벌써부터 들뜨고 신이 나 있다.

신정일은 누구

'신 택리지'등 저술 50여권 출간 '한국의 대표 답사가'

신정일씨는 활발한 역사관련 저술활동으로 지금까지 50여권의 책을 출간했다. 역사인물, 인문지리, 8대강, 답사여행, 옛길 등에 관한 책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독립 저술가 가운데 한 명인 그는 올해에만 15권의 책을 더 출간할 계획이다.

그 가운데 최근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길 50곳을 소개한 < 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 > (랜덤하우스), 신씨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에세이 < 느리게 걷는 사람 > (생각의 나무), < 다시쓰는 택리지 > (1~4권)를 수정 보완한 < 신정일의 신 택리지 > (타임북스)가 나왔다.

신씨의 이력은 < 택리지 > 의 저자인 이중환의 삶과 닮은점이 많다. 이중환은 김립, 김종호, 김시습과 더불어 조선에서 가장 많은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이중환과 신씨는 길과 삶이 동의어이며, 현장 답사를 학문의 질료로 삼았던 것도 똑같다.

신씨는 이 '조선의 대표 답사가'를 텍스트로 삼아 지난 2005년 < 다시 쓰는 택리지 > 를 펴냈다. 이 책은 '발로 쓴 국토교과서'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그후 5년 동안 더 많은 현장 취재와 자료조사를 거쳐 완결판인 < 신정일의 신 택리지 > 를 내게 됐다. 이번에 나온 '살기좋은 곳'편은 10권의 시리즈 가운데 제1권이다. < 택리지 > 의 '복거총론'을 위주로 그 요지를 현대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복거총론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의 조건으로 지리(地理), 생리(生理), 인심(人心), 산수(山水)의 네가지를 들었다. 그러나 이 같은 조건에 부합되지 않더라도 아주 나쁘게 평하지는 않았다. 신씨는 "지금은 빌딩이 산의 높이를 넘어서고, 강의 물길이 바뀌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오늘날의 변모상을 되짚어보는 방식으로 책을 썼다"며 "이중환 선생의 지적처럼 우리가 지금 두 발로 선 이 땅을 자연과 사람 모두가 더불어 사는 명당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라고 말했다.

◇ 약력1954년 전북 진안 출생. 80년대 중반 전주에서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해 동학과 동학농민운동을 재조명하는 활동을 폈다. 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현재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 동학의 산 그 산들을 가다 > < 지워진 이름 정여립 > < 나를 찾아가는 하루산행 1, 2 > < 금강 401㎞ > < 섬진강 따라 걷기 > < 한국사, 그 변혁을 꿈꾼 사람들 > < 다시 쓰는 택리지 > <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 > < 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 > < 낙동강 > < 영남대로 > < 삼남대로 > < 관동대로 >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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