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동서기행] 오색과 오미 속에 담긴 과학

2010. 6. 1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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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건강한 세상]

아스피린, 항암제 탁솔,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의 공통점은? 모두 천연물을 기반으로 한 신약이라는 것이다. 최근 새로운 항암제나 차세대 항생제를 개발하려는 제약회사들은 수천 년 동안 사용되어온 한약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쑥 추출물을 원료로 한 위염 치료제와, 세 가지 한약재를 원료로 한 관절염 치료제가 개발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약을 신약 개발의 원료로 볼 때는 우선 한약재에서 주요 성분들을 추출해 분석하고, 성분별로 세포실험이나 동물실험을 통해 어떤 약리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찾아낸다. 다음 단계로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에서도 그 효과가 입증되면 신약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유전자 칩을 이용하여 약재의 성분이 인체 내의 특정 유전자 발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약물 유전체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방식은 전통적인 한약에 대한 접근방식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한약은 단일 약재로 처방되기보다는 여러 가지 약재의 혼합 처방으로 치료 효과를 기대할 뿐 아니라 약재 하나의 효능을 밝히는 것도 기미론(氣味論)이라는 독특한 이론체계로 설명한다. 약재의 기운은 뜨겁고 따뜻하고 서늘하고 차가운 네 가지로 나누며, 약재의 맛은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짠 다섯 가지 맛(담담한 맛을 포함하여 육미로 보기도 한다)으로 나누는데, 기미에 따라 약재의 효능이 결정된다.

약재의 색 또한 오행 속성에 따라 황색은 비장, 흑색은 신장 등으로 주로 작용하는 장부가 정해진다. 검은콩, 검은깨 등 검은색 약재들은 신(腎)을 보하는 약재가 되는 것이다. 또한, 뿌리 약재는 주로 장부로 가고, 잎이나 꽃은 피부 쪽에 작용한다고 보았으며, 약재의 형태나 서식지의 특징, 즉 해가 잘 드는 곳인지, 습한 곳인지 등도 약효에 관련이 많다. 기미 중에서 미가 현대과학에서 말하는 구성성분과 관련이 있지만, 똑같다고 볼 수는 없다. 한의학의 기본 사고는 약재를 물질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형태와 색, 맛, 기운, 주위 환경 등이 어우러진 에너지가 약재의 효능을 결정한다고 본다. 인체를 총체적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체를 치료하는 약재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인삼의 주성분은 사포닌이지만 사포닌과 인삼의 효과가 같지 않다는 것은 현대의 연구에서도 밝혀져 있다. 사포닌만 해도 여러 가지인데다, 인삼에는 주요 성분 외에도 수십 가지 미량 성분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기운을 도와주는 대표적 한약재인 황기의 주성분 아스트라갈루스가 면역세포를 활성화하고,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많은 임상 연구 결과가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한약재의 효과가 현대과학의 연구로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이것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한약재에 접근하는 현대과학이 오히려 전통 한의학 이론을 입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과일과 채소들의 색소가 바로 영양소이며, 항산화물질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색의 과일과 채소를 골고루 먹으라는 것은 오색과 오미를 고루 섭취하라는 조상의 건강법과 다르지 않다.

한약재 개별 성분의 효능 분석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한의학적 관점에서 약재 전체, 나아가 처방 전체로서 연구하는 것이 다국적 제약회사와의 신약개발 경쟁에서 우리가 앞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윤영주(부산대 한방병원 교수/의사·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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