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연예퍼즐] 암초 만난 '방자전'..'참 방자하더이다'

윤상길 편집국장(대우) 2010. 6. 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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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 박스오피스 1위로 산뜻하게 출발한 영화 '방자전'(제작 바른손 시오필름, 감독 김대우)이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지방의 한 단체가 "영화 '방자전'이 소설 '춘향전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상영 중지를 요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북 남원시의 사단법인 춘향문화선양회(회장 윤영창)는 '방자전'이 개봉된 지난 2일 성명서를 통해 "'방자전'에서 춘향이와 방자가 향락을 즐기는 것은 춘향의 사랑을 단순 노리갯감으로 모독했다"고 주장하며 영화 상영 중지를 요청했다.

또 이들은 "'춘향전'은 지난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족문화 100대 상징 중에 하나로 선정된 작품이다. 그런데 이런 점을 간과하고 상영 허가를 내준 문화체육관광부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서 이 단체 회원 40여명은 3일 낮 12시 서울 세종로 문화체육관광부 정문 앞에 모여 "영화 '방자전'이 춘향을 포르노배우로 묘사하고 있다"며 상영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방자가 춘향을 범하는 등 사실을 왜곡했고, 한국 대표 고전을 외설적으로 전개시킨 것은 춘향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데 지나지 않는다."며 분개했다.

춘향문화선양회는 춘향문화의 전통적 가치를 계승, 승화시켜 민족문화를 보존하고 지역고유문화행사로 정착시키기 위해 1985년에 출범한 단체이다. 올해로 80회 행사를 치른 '춘향제'와 지난 56회 때부터 인연을 맺어 2008년 남원시로 이관하기 전까지 주관해왔다.

춘향제는 국내에서 개최되는 지역축제 가운데 가장 오래된 행사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우수축제로 지정한 이 축제는 전북 남원시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춘향제의 하이라이트는 '춘향선발대회'이다.

춘향선발대회는 한국전통 고유미를 상징하는 전국 규모의 선발대회이다. 이 대회의 입상자들 가운데 연예인으로 입지를 굳힌 춘향이 많아 연예인 지망생에게는 '스타로의 지름길'로 주목받고, 대회 때마다 '진주'를 찾으려는 기획사 스카우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오정혜, 박지영, 윤손하, 이다혜, 장신영, 임유진, 강예솔 등이 이 대회가 배출한 스타들이다.

지난 4월 치러진 제80회 '전국춘향선발대회'에서는 류효영(광주 숭일고), 윤태진(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마효령(중국 연변예술고)이 각각 진 선 미에 뽑혔다. 또 정 손희경(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과), 숙 장영주(청운대학교 방송연기과), 현 윤지연(숭의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우정상 김민정(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등이 선발됐다. 이들은 앞으로 1년간 남원시의 홍보대사로 활동한다. 당연히 대외 활동에서 선발 주체의 지휘 감독을 받는다.

춘향문화선양회의 영화 '방자전' 상영 중지 요청이 있기 나흘 전인 5월 29일, 올해의 '춘향 삼총사가' 방송에 출연, 놀랍게 변한 현대판 춘향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날 방송된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이하 스타킹)에서는 단아하고 청순한 매력의 춘향 진 류효영, '동덕여대 유이'로 통하는 정 손희경, 뛰어난 판소리 실력을 갖춘 본선진출자 민현경(23)이 출연했다.

이들 세 명의 미스 춘향은 '스타킹'에서 저마다의 매력 발산 시간을 갖고 장기를 뽐냈다. 류효영은 가야금 연주와 애교 3종 세트로 2PM 닉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손희경은 파워풀한 댄스 실력을 드러냈다. 이들은 걸그룹 시크릿의 '매직'에 맞춰 한복을 벗으며 섹시한 댄스를 선보여 남성 출연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한복을 벗어던지고 걸그룹과 유사한 무대 의상으로 과격한 몸짓을 연기한 이들은 과거의 춘향의 모습이 아니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춘향의 모습도 바뀌어가고 있음을 춘향 자신이 보여준 셈이다.

다른 길을 걷는다 해도 시대 변화에 발을 맞추는 데에는 다름이 있을 수 없다. 아날로그에서의 디지털 변환을 이념이나 철학으로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고전 속의 춘향을 현대에 와서 지금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전혀 어색한 작업이 아니다. 하물며 자유로움을 속성으로 하는 예술작업에서 '다른 관점' 때문에 제약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영화 '방자전'은 방자와 춘향이 사랑을 하고 이몽룡이 출세를 위해 춘향을, 주인공 춘향은 신분 상승을 위해 이몽룡을 서로 이용한다는 해석을 담고 있다. 고전소설 '춘향전'을 새로운 각도로 조명, 방자의 관점에서 재창작된 작품이다.

'춘향전'은 조선 시대의 판소리계 소설이다. 주인공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당시 사회적 특권 계급의 횡포를 고발하고 춘향의 정절을 찬양하면서, 천민의 신분 상승 욕구도 나타내었다. 작가와 연대는 알 수 없다.

춘향이 실존인물이라는 학술적 견해도 있다. 연세대 설성경 교수는 이도령과 춘향이 조선 광해군, 인조 때의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설교수는 소설 '춘향전'은 실존 인물의 '역사적 사실'을 절반으로 하고 각종 고사·설화 등 '허구'를 절반으로 하여 한 '유능한' 작가의 창작에 의해 최초의 텍스트가 성립된 이후, 각양 각층의 민중 참여(첨삭)를 통해 오늘날의 '춘향전'으로 진화했다고 밝힌다.

실존 인물이었다고는 해도 영화 '방자전은 '소설 '춘향전'에서 모티브를 취한 것은 사실이다. 소설의 영화화인 셈이다. 소설과 영화는 우리의 일상에 큰 즐거움을 주는 매개체이다. 이 둘은 모두 이야기를 전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설과 영화는 각각 개별적 텍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와 소설 모두 결국은 텍스트 수용자로 하여금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내고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텍스트를 비교해볼만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원작소설의 작품성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완성도나 가치에 대한 판단이 분분한 경우가 많다. 영화사의 명작으로 꼽히는가 하면 원작의 가치를 손상한 영화로 혹평을 받기도 한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그것은 관객의 몫이다.

항의를 하고, 혹평을 던지는 사람들은 "조선시대 정절의 표상을 노골적인 성 묘사를 통해 포르노화 했다"고 항변한다. 소설 속에 감춰진, 추측 가능한, 작가의 상상력까지 억압하려 한다. 영화 '방자전'에 야한 장면과 은밀한 대사가 여러 번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19세 이하 관람 금지' 영화이다.

춘향문화선양회는 "상업적 영리만을 목적으로 '방자전'이라는 영화를 제작하며 춘향과 방자가 놀아나는 것으로 묘사한 것은 춘향의 사랑을 단순 노리갯감으로 모독한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상업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상업적 영리'를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상업영화에서 작가의식을 찾으려 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굳이 하려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방자전' 제작사는 춘향문화선양회의 항의에 대해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면 죄송하다"며 고 유감을 표하고 있다. 제작사는 "'방자전'은 소설 '춘향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창작물로, 이 과정에서 원작을 훼손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하며 더불어 어떠한 명예도 훼손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젊은 세대들이 우리의 고전 미담 '춘향전'에 대해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이를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여기고 더 좋은 영화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화 '방자전'은 현재 관객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영화로 호평을 받고 있다. 주말 극장(CGV강남)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한 관객은 "'방자전' 참 방자하더이다."라면서 "그래도 우리는 소설 속의 춘향을 불의에 맞서 목숨 걸고 정절을 지킨 한국 여인의 표상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윤상길 편집국장(대우) yoonsk4u@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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