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내 영화는 수평사회를 꿈꾼다"

글 백승찬·사진 서성일 기자 2010. 5. 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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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견자(犬子), 즉 '개새끼'라 놀림받던 서자가 용상에 앉을 수 있을까. 이준익 감독(50)이 새 영화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에서 던진 화두다. 그는 "난 수평사회를 꿈꾸는 인간이다. < 황산벌 > < 라디오스타 > 등 내 모든 영화가 수평사회를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 달 전 구입했다는 아이폰 이야기를 꺼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자가 7, 애플이 3을 가져가는 아이폰의 분배 구조야말로 수평사회의 좋은 예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사회는 고도성장을 위한 수직사회다. 대기업이 모든 것을 수직계열화한 한국에서는 절대 아이폰이 나올 수 없다. 한국에선 대기업이 8을 먹고 개발자에게 2를 준다"고 말했다.

- 이렇게 절망적, 냉소적인 대중영화를 만들고 흥행은 어떻게 하려고 하나."그래서 밤에 잠이 안온다. 더 상업적으로 가는 방법을 알면서도 끝내 자해했다. (1000만 관객을 넘은) < 왕의 남자 > 와 < 구르믈… > 의 라스트 신은 같은 장소에서 찍었다. 시대도 80년 정도밖에 차이가 안난다. < 왕의 남자 > 처럼 아름다운 비극으로 끝냈다면 관객은 낭만과 판타지에 젖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거짓된 희망이다. 결말의 낭만성에 젖어본 사람은 그 결말에 기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번에 감독으로서는 전진했다는 확신이 있다. 해본 거 또 하면 왜 감독 하나. 감독이 자기 똥에서 콩나물 빼먹고 살면 되겠나."

- 견자는 꿈이 없는 소년이다."행동하는 한 아이는 대기업 제품 생산하는 게 꿈이 아니라며 대자보 쓰고 자퇴했다. 그 대자보 바라보는 아이들은 무슨 꿈이 있는가. 우석훈은 '88만원 세대'라고 부르던데, 난 '약정 세대'라고 부르겠다. 꿈이 약정에 묶여 있다. 휴대폰 약정이 풀리면 다른 약정을 맺듯이."

- 그런데 영화 속에선 꿈이 있어도 이루기 어려운 상황이다. 꿈을 가지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헛된 꿈을 갖지 말라는 거다. 주요 인물인 황정학, 이몽학, 견자, 백지 모두 자신의 꿈을 변질시키지 않고 밀어붙인다. 그랬더니 파국이 됐다. 한번 태어난 이상, 옳든 그르든 그 꿈을 증명하기 위해 끝까지 가본 인간은 아름답다. 단 극중 대사대로 '내 꿈이 소중하면 남의 꿈도 소중한지 알아야지.' 오른쪽 날개가 왼쪽 비난하고, 왼쪽 날개가 오른쪽 인정하지 않으면 새가 나는가."

- 동명 원작 만화는 견자의 성장극에 가깝다. 그런데 영화는 주요 인물 4명의 절망의 드라마다.

"청소년 성장 드라마에 제작비 50억원을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대중영화가 상정하는 대중은 10대 후반~20대 초반이지만, 난 10~70대를 모두 대중으로 본다. 당신 아버지도 대중 아닌가. 난 시대 정신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다. 단세포다. 인풋이 오면 아웃풋이 바로 나간다. 작금의 현실 감각이 이렇게 (절망으로) 표현된 것 아닌가 한다. 어수선하고 출구가 안보인다."

- 이 영화엔 영웅이 없다. 더 멋있을 수 있었던 이몽학의 캐릭터가 사악한 악당 같다." < 글래디에이터 > 나 < 브레이브하트 > 처럼 할 수 있다. 일부러 안했다. 미국식 영웅주의에 물든 관객에게 다른 충격을 주고 싶었다. 영웅이라고 인간적인 결함이 없나. 이순신도 영웅이니까 모든 행적이 영웅적으로 포장돼야 하는가. 바로 그게 거짓 우상이고 낭만적 민족주의다. 낭만적 민족주의가 이 민족을 얼마나 눈멀고 병들게 했나. 난 실존적 민족주의자다."

- 대체 누가 주인공인가. 개인적으로 어느 인물에 가장 공감하는가."내 영화에서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는 건 우문이다. 내 영화는 '다초점 누진렌즈'니까. 난 분열적인 인간이라 모든 인물에 공감한다. 황정학의 대사는 욕 빼고는 다 은유다. 이몽학의 대사는 다 직유다. 은유와 직유가 부딪히니까 사단이 난다. 난 그동안 은유의 영화만 찍어왔다. 이몽학을 통해 처음으로 직유라는 문법을 표현했다."

- 전작 < 님은 먼곳에 > 흥행이 기대에 못미쳤다."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다. 1970년대 이야기도 동시대의 현대사인데, 관객들은 우리가 베트남에 갔다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거다. 그런데 영화에서 무슨 리얼리티를 느끼겠나. 40대 이상 관객은 눈물 흘리면서 좋다고 했다. 마치 내가 딴 세상을 사는 것 같았다. 자꾸 이렇게 되면 대중과 불소통하는 감독이 되는 거다. 매일 고민하고 있다."

- 영화 속에서 계속 사회를 이야기한다."이 영화는 사회적 코드로 읽게 장치돼 있다. 영화를 미학으로만 사고하면 영화는 사회에서 격리된다. 후진국은 정치권력, 중진국은 경제권력, 선진국은 문화권력이 세다. 문명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문화권력을 가장 존중하는 북유럽 복지국가로 향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 있나. 경제 논리에 줄서고 있다. 그런데 무슨 선진국인가."

이준익 감독은 차기작으로 다시 한번 사극 < 평양성 > 을 준비 중이다.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킨 668년이 배경이다. 백제의 계백 장군이 패배한 시기가 배경인 < 황산벌 > 의 후속편인 셈이다.

< 글 백승찬·사진 서성일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출시-ⓒ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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