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에 '동면(冬眠)' 들어가는 세종시법
세종시 수정안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천안함 침몰 사고로 온 나라가 '북풍'에 내몰린 가운데, 여의도 정치권에선 세종시법 처리의 향배를 놓고 물밑 신경전이 뜨겁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세종시법 수정안의 국회 처리는 당분간 어렵게 됐다. 올 연말까지 어떤 방향으로 처리될지 여부도 현재로선 안개 속이다.
세종시 해법을 모색해 온 한나라당 6인 중진협의체가 아무런 성과 없이 지난 4월 21일 활동 종료를 공식 선언했기 때문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세종시 수정안 관련 법안은 해당 상임위에서 '장롱법안'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 세종시 수정안 '장기 미제 사건' 되나 = 정부가 지난 1월 11일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은 행정 부처 이전을 백지화하는 대신 삼성 등 대기업을 유치, 교육·과학·산업 등 자족기능을 강화해 세종시를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지난 3개월 동안 세종시법 처리를 놓고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 간 갈등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도 "국민과의 약속·신뢰인 만큼 양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일찌감치 못 박았다.
결국 의원총회와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종시 수정 문제의 의견 접근을 보지 못한 끝에 3월 8일 마지막 '비상구'로 등장한 것이 6인 중진협의체였다.
친이 2명·친박 2명·중립 2명 등 중진 의원 6명으로 구성, 어떻게든 세종시 절충안을 마련해 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중진협의체마저 아무런 의견 접근을 보지 못하고 45일간의 활동을 접은 만큼 정부 측의 세종시 수정안이 이른 시일 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친이 측은 6·2 지방선거 이후 재논의를 기약하지만 6·30 전당대회, 7·28 재·보궐선거, 8월 하한기, 9월 예산국회 등의 후반기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시간이 갈수록 세종시 추진 동력은 떨어질 전망이다.
또 지방선거 이후엔 개헌·행정구역 개편 등 휘발성이 큰 정치적 의제가 많아 세종시 수정론을 다시 점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세종시 논란이 '장기 미제 사건'으로 잠복할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다.
◇ "불러놓고는…" 투자 기업들 '난감' =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정치권 내부의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세종시 투자를 결정한 기업들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기업들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투자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싶지만 수정안의 국회 처리 지연으로 자칫 투자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한화·롯데·웅진 등 세종시 투자 계획을 발표한 4개 그룹은 공장 건설 등을 추진하려면 현지 답사 같은 기초 작업을 진행해야 하지만 수정안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5개 계열사를 앞세워 2015년까지 세종시에 2조500억 원을 쏟아 붓기로 한 삼성그룹은 그린 에너지와 헬스케어 등 세종시에 신사업 분야의 투자를 원하지만 정쟁에 가로막혀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구체적인 착공 시기 등을 판단하려면 현지 실사가 필요하다"며 "수정안 추진이 답보 상태여서 아직 그런 계획을 진행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세종시 입주를 결정한 한화그룹 관계자는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계획했던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면서 "세종시 문제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한화는 세종시 60만㎡ 부지에 1조3270억 원을 투자해 태양광 사업 등 신성장 동력 분야의 연구·개발센터와 생산 라인을 만들 계획이다. 특히 항공·우주 분야의 연구센터를 연내에 착공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어렵게 내린 기업의 투자 결정 이행 절차가 지연될 경우 기회 손실이 커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세종시 입주를 결정한 기업들의 고민이 크다는 것을 내비쳤다.
이준혁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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