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군수는 '1도 2부 3빽'의 달인?

당진·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2010. 4. 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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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추격적인 따로 없었다. '엽기 군수'의 마지막 엔딩도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지난 28일 저녁 8시20분 민종기 충남 당진 군수는 영동 고속도로 정왕 IC에 나타났다. 잠적 나흘만이었다. 지난 24일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민 군수는 인천공항을 통해 중국 칭다오로 출국하려다 위조여권이 들통 나자 현장에서 도주했다.

28일 대전지검 서산지청은 민 군수가 경기 시흥시에서 지인을 만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관들을 현장에 보냈다. 그러나 민 군수는 '1도 2부 3빽'(우선 도망가고 잡히면 부인하고 그래도 안 되면 힘 있는 배경을 내세우라)의 달인이었다. 수사관들보다 한 수 위였다. 검찰 수사관들의 잠복을 눈치 챈 민 군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시속 200km 속도를 올린 민 군수는 곡예운전까지 펼치며 수사관들을 따돌렸다. 현진 군수와 검찰 수사관 사이 한밤 레이스가 펼쳐졌고 30분간 추격전 끝에 민 군수는 붙잡혔다.

ⓒ시사IN 임지영 '한 번 더 맡겨주십시오. 으뜸 당진 완성하겠습니다' 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쥔 민종기 후보 플래카드

민 군수는 지난 22일 감사원 감사에서 관급공사를 특정 업체에 몰아주는 대가로 3억원대의 별장과 아파트를 뇌물로 받은 비리가 적발됐다. 또 1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내연관계에 있던 여직원을 통해 관리하도록 한 혐의도 드러나 검찰에 수사의뢰 됐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그는 특유의 1도2부3빽 전략을 들고 나왔다. 물론 순서가 바뀌기는 했다. 먼저 민 군수는 부인하고 보는 '2부'카드를 꺼냈다. 감사원 발표 다음날인 23일 민 군수는 해명 보도 자료를 통해 "뇌물로 받았다는 아파트는 처제 명의로 대출을 받아 대금을 지불한 것이며 처제가 관리했다는 10억원의 비자금은 처제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라며 감사원 발표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민 군수는 일단 튀고 보는 1도 카드를 꺼냈다. 그것도 현직 군수가 전문가도 놀라게 한 정교한 위조 여권으로 출국하려 한 것이다.

민 군수의 '1도2부3빽' 전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8년 민 군수는 시 승격을 위해 위장전입을 주도하면서 전국적인 이목을 끌었다. 그때 민 군수는 시 승격의 전제 조건인 당진읍 인구 5만 명 채우기 위해 위장 전입을 주도했다. 공무원에게 1인당 20명씩 할당해 한 집에 80명을 위장전입 시키는 등 모두 1만명을 위장전입 시키는 엽기행정을 펼치기도 했다. 그때도 한 언론사가 취재하자 그는 일단 부인하고 보는 '2부' 카드를 꺼냈다. 사실로 드러나자 그는 며칠간 사라지는 '1도' 카드를 썼다. 민 군수는 주민등록 신고 위반 등 혐의로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 됐다.

지난해에는 군내에 민 군수의 치부책이 공공연하게 나돌기도 했다. '당진군 행정쇄신공무원모임 일동'이라는 발신으로 된 11장짜리 문서가 군내 이 장단에게 전달됐다. 문서엔 인사 비리와 공사 수주 비리에 대한 고발이 담겨 있었다. 군청 간부급 공무원이 퇴직 후 건설사로 자리를 옮겨 군청 직원에게 관련 청탁을 한 사례를 비롯해 인사과장의 매관매직 정황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경찰은 어찌된 영문인지 문서를 작성한 이만 적발했고, 문서 내용은 수사하지 않았다. 시민단체는 민 군수가 힘을 동원한 '3빽' 카드를 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시사IN 임지영 민종기 후보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운동원들.

그런데도 민 군수는 감사원 감사 전까지만 해도 3선이 무난해보였다. 민 군수는 지난 2004년 열린 우리당 후보로 재보선에 당선했다. 2006년에 재선한데 이어 이번에도 3선이 유력했다. 그 사이 당적을 바꾸기는 했다. 민 군수는 정권이 바뀌자 2008년 3월 통합민주당을 탈당했다. 지난 1월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논산과 천안시 부시장을 역임한 그는 CEO형 군수를 자처했다. 2005년 '기업유치팀'을 만들어 기업유치에 나섰다. 2004년 159개에 불과했지만 836개까지 기업을 늘렸다. 재임 기간에 일하는 군수로 통했다. 황해경제자유구역과 석문국가산업단지 등 모두 5845만㎡에 달하는 산업단지 개발을 주도했고,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도 용광로를 뿜으며 당진에 활기를 더했다. 당진-대전간 고속도로도 뚫려 당진 관광시대도 열었다. 전국 246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지방행정혁신평가에서 당진군이 전국 최우수 대통령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잘나가던 군수님은 하루 아침에 당진 불명예의 장본인이 되었다. 충남 당진군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김아무개씨는 "이제 어디 가서 당진 산다는 말도 못하겠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믿었기 때문에 더 심한 배신감이 더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임지영 민종기 군수의 관사. 주인 잃은 관사에 신문이 그대로 꽂혀 있다.

당진을 찾은 4월27일, 비바람 부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처럼 당진군은 뒤숭숭했다. 군청 직원들은 말을 아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경로당에서도 식당에서도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그의 얘기 뿐이었다. 민 군수의 선거 사무실엔 선거 운동원 4명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나라당 공천이 취소됐지만 혹시 민 군수에게 연락이 올까 싶어 휑한 사무실을 떠나지 못했다. 민 군수가 후보자 사무실로 쓰던 건물 외벽엔 6개나 되는 대형 현수막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 '한 번 더 맡겨주십시오. 으뜸 당진 완성하겠습니다' 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쥔 민 군수의 얼굴이 거센 바람에 요동쳐 일그러졌다.

당진·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 시사IN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시사IN 구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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