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에 춤추는 건설사 위기론

박형숙 기자 phs@sisain.co.kr 2010. 4. 13.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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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잠잠해졌다. 앞서 한 차례 '건설사 부도설' 광풍이 몰아쳤다. 그 '소문난 악재'의 구조는 이렇다. 미분양 아파트가 외환위기 때보다 1.2배 늘었고, 특히 준공 후 미분양 규모는 2.8배에 달해 건설업계에 돈이 말랐다는 것. 이 같은 분양 실패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로 이어져, 건설사에 돈을 빌려준 금융권에 도미노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PF 규모가 지난해 말 기준 82조4천억에 이르고 그중 절반이 올해 만기가 돌아온다는 점 때문이다. 때마침 지난 3월 중순, 중견 건설사인 성원건설이 법정관리 신청을 함에 따라 위기설은 부도설로 증폭되었다. 미분양이 많은 업체 서너 곳이 더 쓰러질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건설사 위기설이 정부의 조처와 맞물려 돌아간다는 점이다. 가령 미분양 주택에 대한 양도세 감면 혜택이 만료된 2월11일, 대한건설협회 등 주택 건설단체는 업계의 경영난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어 3월에는 금융당국이 PF 대출 관련 저축은행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발표하자 다시 위기설이 쏟아졌다. 그러다 정부의 후속 대책이 나오면 잠잠해지기를 반복해왔다.

ⓒ시사IN 조남진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경북 상주보 건설현장에서 대형 트럭들이 쉴 새 없이 모래를 퍼 나르고 있다.

성원건설발 연쇄 부도설도 그랬다. 정부와 여당은 업계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미분양 주택에 대해 지난 2월 종료된 양도세 감면 혜택을 내년 4월까지 연장해주고, 오는 6월 종료 예정인 취·등록세 감면도 같은 기간까지 연장해주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1조원의 유동성 공급도 약속했다. 국토해양부는 5000억원 규모의 지방 미분양 주택을 환매조건부로 사들이고, PF 대출보증도 5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보증한도를 상향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미흡하다"라며 더욱 화끈한 지원책을 원했다. 양도세 감면 연장을 지방 미분양에 국한하지 말고 수도권으로 확대 시행해줄 것과 미분양뿐만 신규 주택에 대해서도 적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최상근 규제개혁팀장은 "적체된 미분양으로 건설회사들이 자금 압박을 받는 것은 주택시장을 자율적으로 놔두지 않고 금융규제 등으로 수요가 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건설사 부도율, 사상 최저치

미분양을 앞세운 건설사들의 위기론을 자세히 드려다보면, 선뜻 수긍할 수 없는 몇 가지 '반박 지표'가 발견된다. 홍헌호 시민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미분양 주택 수만 가지고 단순비교해선 안 된다며 부도율 수치를 꼽았다. 지난해 말 기준, 건설사 부도율은 0.45%로 사상 최저치였다. 따라서 지난해 미분양(12만3297호)이 1998년 외환위기 때(10만2701호)보다 늘었다 해도 당시 부도율이 7.01%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지금은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건설사들이 내놓는 부채비율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한국기업평가원은 37개 주요 건설업체의 지난해 9월 기준 부채비율이 350%에 달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PF 대출을 포함한 수치였다. 법인세를 내는 모든 건설사를 모집단으로 하는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부채비율은 149.40%에 그쳤다(2008년 말 기준). 2000년도 부채비율(625.76%)의 4분의 1 수준이고, 제조업의 부채비율(123.23%)보다는 약간 높은 수준이다.

홍헌호 연구위원은 건설사들이 크게 문제 삼는 악성 미분양, 즉 준공 후 미분양 증가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내놨다. 금융위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대한주택공사)가 미분양 주택 매입에 나섰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매입 신청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숨겨진 미분양을 공개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렇다고 위기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위기 원인은 의외로 가까운 데서 찾을 수 있다. 단적으로 건설회사가 너무 많다. 1990년 6060개에서 2010년 2월 기준 5만7070개로 20년 동안 8배 이상 증가했다. 출혈 경쟁, 과잉 공급은 업계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는 셈이다. 홍 연구위원은 "건설업계 상황이 나쁜 게 아니다. 해외 수주는 사상 최대로 올해 500억 달러를 내다보고 있다. 내수도 4대강 사업으로만 22조원이 풀린다. 그동안 정부가 2조5000억원 상당의 미분양 주택을 사들이고 각종 세제 혜택까지 줬다. 이런 시절이 어렵다면 나중에 올 충격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나."

건설사들이 겉으로는 '준공 후 미분양'의 적체를 걱정하지만 막상 분양가 할인 따위 자구 노력은 하지 않고 정부 매입을 기다리거나 경기회복에 편승해 집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며 '버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업계에선 여전히 분양가 할인에 대해 "기존 입주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로 저항이 심하다"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박형숙 기자 / phs@sisain.co.kr-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 시사IN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시사IN 구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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