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대세상승 꺾였지만 급락상황은 아니다
◆ 긴급점검, 부동산 불패 신화 막내리나◆
부동산시장 침체가 길어지면서 집값이 2006년 말부터 2007년 초까지 정점을 찍은 후 안정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대세 하락을 점치는 목소리도 높다.
일본식 침체냐, 조정 후 회복이냐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지만 당분간 거래 부진과 이에 따른 시세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데는 전문가들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 인구구조 변화 집값 영향 주목
= 부동산시장은 그동안 경제 성장과 만성적인 주택 부족이라는 두 날개로 지속적인 고공행진을 해왔다.
그러나 주택보급률이 2002년 100%를 넘어서면서 주택시장의 구조적인 변화가 진행 중이다.
대세 하락론자들은 특히 인구구조 변화에 주목한다. 미국과 일본도 저금리, 과잉 유동성에 힘입어 과도하게 오른 집값이 베이비붐 세대 은퇴와 함께 부동산 수요 감소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본 토지 가격은 40~59세 인구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한 이후 하락 추세를 이어가고 있고, 미국 역시 40~59세 인구 비중이 2006년 정점에 도달한 이후 2007년부터 주택 가격이 하락했다. 한국에서도 주택 주요 수요층인 35~54세 인구가 올해 1655만4000명을 보인 후 감소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산은경제연구소와 현대경제연구원은 주택 핵심 소비계층인 35~54세 인구 감소 등 인구구조 변화를 이유로 집값이 하락할 수 있다고 최근 보고서를 통해 경고했다.
이상영 미래에셋 부동산연구소장도 "수도권은 당분간 주택 주요 수요층인 35~54세 인구가 줄지 않아 급격한 수요 위축이 나타나지 않겠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5~10년 이내에 시작되면 지방부터 주택 수요가 감소해 수도권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택보급률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도시화 속도가 느려지는 것도 주택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 전망을 어렵게 한다. 평균 연봉을 받는 근로자가 서울에서 66㎡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서는 13년간 연봉을 모아야 할 정도로 주택 가격의 절대 수준이 높고,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139%(2008년 말 현재)로 미국과 일본에 비해 높은 것도 대세상승 기대를 접게 하는 요인이다.
◆ '대세상승 마무리=급락' 아니다
= 결국 만성적인 주택 부족과 경제 성장으로 지속되던 주택시장의 장기 상승국면은 계속 이어지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장기 상승국면의 끝이 곧바로 장기 하강국면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우선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1~2인 가구 증가로 가구 수는 2030년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또 전체적인 주택 수요가 감소하더라도 경기순환상 상승과 하강 국면, 지역별 수급 불균형은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주택보급률이 충분히 높고 인구가 감소한 선진국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는 점에서 2000년 초반 글로벌 부동산 가격 급등이 좋은 사례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대세상승기는 지난 것 같다"면서도 "'대세상승기 마무리=대세하락기 또는 폭락'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말했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담보대출 확대로 대표되는 가구의 금융건전성 악화와 인구 감소 등으로 선진국과 유사한 패턴을 그릴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은 여전히 소득 증가에 따른 주택 구매ㆍ교체 수요 증가 가능성이 있다"며 "적극적인 이민정책 도입이나 남북통일 등으로 인구가 다시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 하락 늦추는 변수 여전히 많아
= 국내 부동산시장이 본격적인 하락으로 접어들었다고 보기 어려운 국내 시장만의 특수한 상황도 여전히 많다. 우선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뉴타운ㆍ재건축ㆍ재개발을 들 수 있다.
재개발 등으로 살던 집을 철거하면 철거민들의 이주 수요가 발생하는데 이는 사실상 주택시장에는 인구 증가와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현 단계를 장기 대세하락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재건축ㆍ재개발에 따른 이주 수요"라며 "이주 수요가 부동산 가격 정점을 연장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부실 가능성이 거론되고는 있지만 낮은 담보대출 연체율과 저금리 역시 큰 폭의 주택 가격 하락이 없을 것으로 전망하게 하는 요인이다.
메리츠종금증권 부동산금융연구소는 "미국은 모기지 연체가 곧바로 주택 압류로 이어지지만 한국은 담보대출 연체가 바로 공매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저금리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이자 부담을 못 견뎌 집을 처분하려는 투매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3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토지 보상금과 시중 부동자금 등 풍부한 유동성 역시 부동산시장의 불안 요인이다.
규제 완화 변수도 남아 있다.
정부는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수요를 억누르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규제가 일부 완화될 경우 부동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릴 가능성은 여전하다.
손재영 건국대 교수는 "집값은 수요공급에 의해 움직이는데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아직 공급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고, 수요 쪽에서는 DTI 규제 때문에 투자가 움츠러들어 불편해도 집을 안 사 보합세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메리츠종금증권 부동산금융연구소는 "주택 가격이 연착륙할 것인지, 경착륙할 것인지는 정부 정책이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며 "장기적인 주택 가격은 급격한 하락보다는 물가상승률을 밑도는 실질가치 하락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특별취재팀 = 이은아 기자 / 이지용 기자 / 이명진 기자 / 김제림 기자 / 부산 = 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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