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진짜 쏜다

2010. 3. 2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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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탕탕탕! 스트레스 박살내는 '조준·격발·명중'의 짜릿한 사격 쾌감

꽃 소식 질펀한데, 날씨는 들쭉날쭉이다. 그래도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얼었던 강물이 풀리자마자, 이 땅 큰 물줄기 네 곳을 갈아엎고 처막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걸 강 살리는 소리라고 믿는 이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국토 파괴 굉음으로 듣는 이도 있다. 이래저래 찌뿌듯하고 스트레스 쌓이는 봄날이다.

뭔가 박살내지 않으면 속이 터질 듯한 느낌일 때, 한 방에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방법. '총 쏘기'만한 것도 없겠다. 공인된 사격장을 찾아가 표적을 꼬나보며 '탕' '탕탕' 총질을 해보는 것. 합법적이면서도 돌이킬 수 있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이자,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심신을 다스리고 재충전시키는 방법이다. 게임이나 실내 영상사격에서는 맛볼 수 없는, 호호탕탕한 야외 레포츠다. 쌓인 스트레스는 발사 순간 굉음과 함께 날아가고, 적중시키는 순간 표적과 함께 박살난다.

좀 오래된 썰렁 유머 하나. 총을 쏘는 방법은? '1, 총을 든다. 2, 총을 놓는다.' '놓고 들고 가는 것은?' 하고 묻는 수수께끼 문답에서처럼, '놓다'는 '쏘다'의 뜻으로도 쓰인다. 사격장은 총도 놓고 스트레스도 놓고 돌아올 수 있는 곳이다. 겨울 비수기를 거치며 스트레스 받은 전국 사격장들이 봄을 맞아 일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클레이사격·공기총사격·권총사격을 두루 체험할 만한 종합사격장이 10곳(창원·화성·대구·나주·임실·춘천 등) 있다. 만 14살 이상이면 누구나 준비물 없이 찾아가, 간단한 현장교육을 받고 '조준·격발·명중'의 짜릿한 사격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총과 실탄, 귀마개·사격조끼 등을 현장에서 빌려주므로 장비에 대한 부담도 없는 레포츠다.

"눈만 감으면 자꾸만 접시가 날아요"

경기도 화성에 있는 경기도종합사격장의 경우 지난해 사격장 이용객이 전년보다 20% 이상 늘었다. 이 사격장 안전관리팀 최현주(57) 팀장은 "지난해 약 6만여명(연인원)이 사격장을 찾았다"며 "사격선수가 30% 정도 되고 나머지는 일반인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용객이 는 것은 최근 서울 태릉사격장의 클레이사격장이 폐쇄된 데 따른 이유도 있지만, 일반인들이 늘어나는 등 사격 인구가 꾸준히 확산되는 것으로 사격장 쪽은 보고 있다. 경기도종합사격장 접수대의 김미화씨는 "요즘 주말이면 하루 300~400명 정도가 찾아와 사격을 즐긴다"며 "지금부터 6월까지는 사격장 전 직원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는 시기"라고 말했다.

국내 사격 인구는 수렵인을 포함해 2만여명으로 추산(대한수렵협회)된다. 대부분은 날아가는 접시(피전)를 쏘는 클레이사격을 즐기는 이들이다. 생활체육전국사격연합회나 인터넷 카페 등 동호회의 대부분이 클레이사격 마니아들로 꾸려져 있다. 권총·공기총도 나름대로 묘미가 있지만, 야외에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표적을 다양한 방식으로 쏘아 맞히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클레이사격의 호쾌한 즐거움을 따라올 수 없다. 클레이사격을 흔히 '사격의 꽃'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사격이 레포츠라고는 해도 결국 총을 다루는 일이다. 고막을 찢을 듯한 총성과 화약연기, 어깨를 강타하는 개머리판의 반동이 장난이 아니다. 사대에 서면 엄격한 규칙 아래 총을 다루고, 표적을 향해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사격은 정신수련과도 같습니다. 집중력과 자제력, 순간판단력을 기본으로 합니다. 잡념·욕심·흥분은 금물이죠." 사격 베테랑들이 초보자들에게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정확한 사격, 다시 말해 제대로 쏘고 제대로 스트레스를 발산하기 위해선 그만큼 치열한 정신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잡생각이 끼어드는 순간 총알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행위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 "참아야 할 때와 쏴야 할 때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격을 섹스(남성 처지의)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발사와 함께 터져나오는 쾌감, 명중시킨 표적을 바라보며 느끼는 만족감도 비슷한 데가 없지는 않다. 제대로 쏠 수 있게 되기까지 기다리는 것도 자제력의 하나다. 군대 시절의 사격 경험만 믿고 대들었다가 '깨갱' 하고 물러나는 남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처음 쏘는 여성들이 오히려 빼어난 사격감각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클레이사격의 맛에 빠져들면 어느 순간 이런 상태가 된다. "잠자리에 누우면, 눈앞에서 자꾸 접시가 날아오르죠. 맘속으로 수없이 총을 쏴댑니다." 한달이면 두세번 정도 사격장을 찾는다는 엄기선(41·개인사업)씨 얘기다. 전에 다니던 대기업 동호회를 통해 클레이사격에 입문한 지 3년째다. 1년 정도 초보자용인 '아메리칸 트랩'을 이용하다 제대로 쏘고 싶어, 중고품 총을 구입했다. 엄씨는 자신이 "아직 초보자"라고 주장했다. 아메리칸 트랩에서 25발 중 20발 이상을 매번 적중시켰는데, 선수용 트랩에 올라오니 열개 맞히기도 힘들다고 했다. "집중력 싸움, 자신과의 싸움이란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결국 정신수양이란 거죠."

집중력 싸움, 자기 자신과의 싸움

그렇다면 사격을 오래 하면 집중력이 좋아질까. 18년째 클레이사격(스키트)을 해왔다는 용호사격클럽의 정구익(55)씨가 말했다. "집중력·민첩성을 기르는 데 좋습니다. 잡념을 싹 버리고 한발 한발 격발에 집중하는 동안 무아지경에 빠지면서, 쌓인 스트레스도 말끔히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정씨는 "집중하면 할수록 잘 쏘게 되고 스트레스도 풀리지만, 정신이 흐트러지면 계속 실수하게 돼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격장은 총기를 다루는 곳이므로 정해진 규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사대에 들어선 뒤엔 반드시 교관(코치·안전요원)의 지시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사격인들 사이엔 두가지 불문율이 있다. '절대 남의 총기에 손을 대지 않는다', '사격이 시작되면 입을 닫는다'. 당연해 보이는 내용이지만, 만에 하나 일어날지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 사격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원칙들이다.

비용은 크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보통 클레이사격 1회 25발 기준 1만8000~2만8000원 선, 권총은 10발에 1만~2만원, 공기총은 10발에 2000~4000원 선이다. 클레이사격의 경우 한번 이용에 2라운드(50발)를 쏜다면 한달에 한두번쯤 취미생활을 하며 사격솜씨를 닦아볼 만하다. 사격장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면 매회 일정액을 할인받을 수 있다.

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어디서 쏠 것인가

⊙ 경기도종합사격장 | 경기 화성시 양감면 사창리 (031)352-6056

⊙ 충북종합사격장 |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043)213-7041

⊙ 대구종합사격장 | 대구광역시 북구 금호동 (053)312-2000

⊙ 창원종합사격장 | 경남 창원시 퇴촌동 (055)282-0900

⊙ 전북종합사격장 | 전북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 (063)643-0104

⊙ 나주종합사격장 | 전남 나주시 안창동 (061)333-5857

⊙ 문경사격장 | 경북 문경시 불정동 (054)553-0001

⊙ 횡성스포랜드 | 강원 횡성군 공근면 청곡리 (033)344-2500

⊙ 대유사격장 | 제주 서귀포시 상예동 (064)738-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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