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경쟁적 '재정 포퓰리즘'..빚 늘어날 일만
- 정치적 판단 가미된 퍼주기 복지정책으로 재정 흔들
- 지출확대·세금감면, 늘어만 날 뿐 구조조정은 없어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지난 1월, 노대래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엊그제는 예방접종을 무료로 하겠다고 하던데 이게 바로 복지부의 한계"라면서 "올해에는 특히 재정의 건전성 확보에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정당국의 이런 각오는 선거를 앞두고 유야무야 되는 양상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정이 저소득층 무상급식과 영유아 무상교육 확대, 지방 미분양주택에 대한 양도세 감면 연장 등을 전격 결정함에 따라 나라살림에 추가적인 부담이 불가피해졌다.
그리스 등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가 한 쪽에서는 지출 구조조정을 포함한 재정 건전화 대책을 강구하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대규모 추가예산이 필요한 선심대책을 신설하고 있어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선거시즌을 맞아 야당은 복지확대를 위한 '추경' 요구까지 하고 있어, 재정 포퓰리즘은 여야가 따로 없는 양상이다.
◇ 구분 애매한 `정치적 퍼주기`와 `복지확대`..재정 흔들
1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2009~201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해 향후 5년간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을 4.2%로 억제할 것을 약속해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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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또 향후 5년간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지않도록 관리하겠다는 약속을 내세우며 국가재정수지의 균형 시점을 2013~2014년으로 1~2년 미뤘다.
하지만 IMF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가 400조원을 돌파하는데 이어 4년 뒤인 2014년에는 5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은 "올해 국가채무는 GDP대비 38%수준까지 높아지고, 2012년까지 국가채무가 일시적으로 40%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2050년 들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GDP대비 116%에 달해 유럽연합(EU)국가들과 비슷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보건, 복지분야 지출 증가가 중장기적으로 재정에 가장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분석이다. 복지지출은 속성상 시혜적인 퍼주기 성격이 강해 매우 정치적인 사안으로 통제가 여간 어렵지 않다.
정형민 국제금융센터 조기경보실장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되고, 사회보장 수요가 높아지는데다 통일까지 감안하면 향후 재정부담은 막대한 수준일 것"이라며 "기본적 권리와 관련된 사회보장은 필수적이지만 향후 연금개혁을 지속적이고 점진적으로 추진해 재정 부담을 낮추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 재정지출, 늘릴 계획만 있을 뿐 구조조정 요원
복지지출 증가가 노령화와 사회안전망 확충 등 사회구조 변화에 따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 여타 다른 분야에 대해 강력한 세출 구조조정을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요원하기만 하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향후 10년(2009~2020년)간 국가 주요 사업의 총사업비 추진에 따른 재정부담은 98조2127억원에 달한다. 이중 사회간접자본(SOC)분야의 총사업비 재정부담이 전체의 94%(92조원)에 달하지만 종합적인 관리가 미흡한 상태다.
예정처는 "SOC분야 도로관련 사업은 국토해양부의 데이터관리 부실로 2014년이후 세부사업에 대한 총사업비 추이 확인이 어려웠다"며 "철저한 관리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4대강 사업뿐 아니라 많은 사업들이 500억원 미만으로 쪼개져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피해가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 들어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재해예방, 지역균형발전 등 모호한 경우를 포함시켜 예비타당성 조사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무원칙한 세금감면도 재정 건전성을 위협하는 주 요인이다. 세감면액이 지난해에만 28조원에 달했고, 국세감면율은 한도를 넘어선 14.7%를 기록했다. 예산정책처는 2008~2012년 감세정책에 따른 국세수입 감소액이 99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된 조세법안 28건 중 세수 감소가 예상되는 안건은 20여건이나 된다. 이 가운데 비용 추계를 첨부한 6개 법안에 따른 세수 감소 규모는 연간 1조원, 비용 추계를 첨부하지 않은 법안까지 포함할 경우 전체 규모는 훨씬 커질 전망이다.
◇ 여야 따로 없는 재정 포퓰리즘..비용·효익 따지지도 않은채
정부 관계자는 "이번 무상급식, 보육안은 당의 요청에 따라 검토해 합의한 것"이라며 "아직까지 예산이나 지출 배정이 어떻게 조정되는지 구체적으로 추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5월 8일 국무위원들이 참석하는 중기재정전략회의를 열어 2010~201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대해 논의할 방침이다. 2010~201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오는 9월 국회 제출과 함께 발표된다.
정부는 한시적인 재정규율 장치를 도입하고 조세감면을 축소하며 국유지·여유자금 등 국가자산 관리로 세외수입을 극대화하는 등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으나, 가시적인 건전화 장치는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하지만 재정부 고위관계자는 "2009~2013년 계획보다 재정운용 목표를 더 강화할 계획은 없다"며 "2009~2013년 계획을 달라진 상황에 맞게 업데이트해 2010~2014년 계획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일자리 대책'을 명목으로 추가경정 예산안까지 요구하고 있다. "야당에서 추경을 하자는데 왜 정부가 망설이냐"며 "5조5000억원의 추경을 정부와 여당이 적극적으로 검토해 4월 중으로 추경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것.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횡행하는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라도 재정규율을 정비하고 이를 반드시 지키도록 온 국민이 감시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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