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3국, 분쟁 '뙤악볕'에 무기의 '그늘'만

2010. 3. 15. 14: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수단·코트디부아르·알제리 가보니

독재·내전 얼룩, 집집마다 빵은 없어도 총은 필수

테러 흔해 곳곳 검문검색…말라리아·테러도 극성

지난 3월1일부터 3월8일까지 아프리카 분쟁 지역인 수단, 코트디부아르, 알제리 3국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한 국가에 거의 하루씩 체류하는 '맛뵈기' 수준의 경험이었지만, 때로는 환상으로, 때로는 편견으로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던 아프리카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밤에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고 낮에 아프리카를 둘러보는 4박8일의 '강행군' 여행기를 조금이나마 소개해보고자 한다.

평화유지군 최다 상주 '수단', 20년 내전에 200만 숨져"뙤약볕이냐, 모래바람이냐" 자연 환경까지 '위협적'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3월2일, 밤 10시40분. 동부 아프리카의 수단 카르툼 공항에 도착하자 숨이 턱 막혔다. 한국의 한여름 열대야와 같은 더위에다 코끝을 스치는 먼지 섞인 바람이 아프리카에 도착했음을 실감케 한다. 공항에서 만난 한 현지인은 "낮에는 40도를 넘나든다"며 "밤이라 그나마 시원해진 것"이라고 '위로'를 했다. 공항 주차장 이곳저곳에서 '백숙, 불고기, 상시 대기 00식당'이라는 한글 로고가 새겨진 한국의 중고차들이 여기저기 보여 그나마 이방인의 낯섦을 달래준다.

20년 동안 내전을 겪고 있는 수단의 비참한 현실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피부로 다가왔다. 숙소인 'VIP호텔' 앞에는 무장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호텔 안으로 들어가면 1박에 170달러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울 만큼 시설이 낙후돼 있었다. 화장실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물먹은 화장지는 서로 엉켜서 달라 붙어있었다. 다른 일행이 머무른 방에는 모기들이 주인 노릇을 했다. 뷔페식으로 나온 호텔 아침은 빵과 토마토, 계란 주스로 구성된 '1식 3찬'이었다. 가장 최근에 개장한 '고급형'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외지인들이 적응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수단은 유엔의 평화유지군(PKO)이 제일 많이 상주하는 나라다. 남북이 갈라져 20년간 내전하면서 200만명이 숨졌다고 한다. 2003년 발발한 다르푸르 사태로는 30만명이 숨졌다. 유엔평화유지군은 다르푸르에 2만6천명, 남부에 1만명이 상주하고 있다.

내전과 독재, 석유와 지하자원을 둘러싼 지역·종족간 쟁투(남부에 석유가 많이 매장돼 있다), 기독교권인 남부와 이슬람권인 북부의 종교적 차이, 이권을 둘러싼 서구의 개입과 10년 동안의 경제 제재 등으로 만신창이가 됐던 수단은 2005년 수단 정부와 남부 반군이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진정세를 보였지만, 최근 들어 남부의 분리 독립 기운이 강해지고 있다.

당장 2010년 4월엔 대선, 남부 대통령 선거(수단은 남북간 대립으로 남부 대통령을 따로 뽑는다), 총선 등이 실시되고, 무엇보다 내년 1월 남부 수단의 분리를 위한 주민투표법이 실시될 예정이다. 평화협정 이후 5년 동안 남북이 '불안한 동거'를 해왔지만, 남부쪽에선 분리 독립하자는 여론이 높다고 한다. 남부는 자신들의 영토에 매장된 석유를 독점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부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어 언제든 '전쟁터'로 변할 수 있다고 현지 사람들은 우려하고 있다.

'내전'이 없어도 수단의 자연환경은 사람이 살기에는 열악하다. 겨울인 1~2월에도 낮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간다. 무엇보다 이곳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모래바람인 '아부부'다. 모래바람의 압력이 얼마나 센지 위스키병에까지 모래먼지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수단 사람들은 모래바람이 불어 태양을 가리면 그나마 날씨가 선선해져 좋아한다고 한다. 수단 사람들에겐 "뙤약볕이냐, 모래바람이냐"는 양자 선택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니 외국인들이 살기엔 '험지'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2008년엔 수도인 카르툼 코앞까지 반군이 들어오기도 했다. 일본제 랜드로바를 끌고 밤에만 이동하는 기습작전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진압은 됐지만 이런 불안한 정세 때문에 늘 탈출계획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 가족을 데려오기도 쉽지 않다. 근무여건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한국 기업 지사나 상사도 나와 있는 곳이 없다고 한다.

번듯한 쇼핑센터도 하나 없고, 아이들이 갈만한 학교도 없다. 물가는 프랑스의 2배라고 한다. 10여년 동안 서방 세계의 제재를 받고 있어 물자가 귀한 데다 국내생산하는 물자는 거의 없고, 프랑스에서 물품을 운송하려면 관세가 높고 운송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북 갈등 때문에 아직도 총기류가 가정마다 깔려 있다. 권총 정도는 시장에서 언제든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이곳 한국 대사관 사람들은 "디알콩고나 앙골라보다는 우리가 근무여건이 더 낫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곳에 부임한 지 3년이 된 이병국 대사는 도인의 풍모를 풍기며 "이 나라를 사랑해야 적응할 수 있다"는 화두를 던졌다.

아름다운 '코트디부아르', 쿠데타 거치면서 '만신창이'대선 앞뒀으나 서구 열강 잔재로 주민 확인조차 난항

수단에서 코트디부아르로 넘어가기 위해 새벽 1시에 다시 카르툼 공항에 도착했다. 아직도 한국의 아침인 줄 착각한 생체리듬 때문에 수단 공항 화장실에 들렀는데 화장지가 없다. 다음번 화장실에 들어가는 일행에게 '주의'를 줬다.

하루종일 모래바람을 맞고 약간 더위까지 먹은 탓인지 비행기 안에서 일행은 널브러졌다. 게다가 말라리아 약을 먹은 후유증인지, 기운이 빠지고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케냐를 경유해 거의 10시간에 이르는 비행 끝에 3월4일 도착한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아비장은 아름다운 도시였다. 축축 늘어진 야자수 잎은 전형적인 '아프리카 풍경'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나라 코트디부아르도 2002년과 2004년 쿠데타를 거치면서 황폐화했다. 이웃 나라인 부르키나피소 대통령의 중재로 2007년 3월 와가두구 평화협정이 체결됐지만, 코트디부아르 북부는 여전히 반군이 장악하고 있다. 현지에서 코트디부아르의 재건활동을 총괄하고 있는 최영진 유엔사무총장 코트디부아르 특별대표는 "보통 1년 동안 내전을 치르면 재건하는 데는 10년이 걸린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전쟁을 놓고 봐도 3년 전쟁 끝에 재건을 위해 치러야 했던 비용을 생각하면 코트디부아르의 상황에 대한 유추가 가능할 것이다.

대략 오는 5월쯤 코트디부아르 대선이 예정돼 있다. 그러나 아직도 '주민확인' 작업은 난관에 부딪혀 있다. 서구 국가들이 식민지 시절 임의대로 그어놓은 국경선 때문에 같은 부족들이 서로 국경을 넘다 보니 누가 코트디부아르 국민이고 선거권을 갖고 있는지 분간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설해놓은 인프라가 그대로 남아있어 수도 아비장의 도시계획은 비교적 잘 돼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내전 이후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유지보수가 제대로 안되는 바람에 도로는 곳곳이 패여 있고, 정전·단수가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한다. 그나마 에어컨을 거의 쓰지 않아도 한 달 전기료가 150달러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코트디부아르의 3월 날씨는 섭씨 30도 정도로, 수단보다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대서양을 끼고 있어 5분만 밖에 있어도 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땀이 밴다. 무엇보다 '백인들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말라리아가 많은 곳이다. 박윤준 주 코트디부아르 대사도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을 했고, 부인도 여러 차례 말라리아에 물려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시차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새벽 6시쯤 호텔 정문으로 나와 보니 호텔을 둘러싼 굳게 잠겨진 쇠창살 사이로 앳된 아이가 구둣솔을 집어넣고 흔든다. 구두를 닦으란 얘기다. 대여섯살쯤이나 돼 보일까. 가슴 한구석이 아리다.

매혹적인 지중해의 옥빛 바다 '알제리'그러나 수도 알제는 '살풍경'에 물들고

코트디부아르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알제리로 이동. 파리로 나갔다가 알제리로 입국하는 코스다. 비행기 안에서 쪽잠을 자며 3월6일 아침 10시쯤에 도착한 알제리는 경계가 삼엄하다. 공항에는 100m 간격으로 실탄을 장착한 군인들이 서 있고, 고속도로에서 시내로 나가는 길목에도 검문검색이 이뤄지고 있다.

2007년 12월 수도 일제에 있는 유엔 건물이 폭탄테러를 당하고 나서 벌어진 살풍경이다. 당시 주 알제리 한국 대사관도 폭탄테러의 여파로 유리창에 금이 갔다.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무대이기도 했던 알제리에 대한 약간의 환상도 금이 갔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이 현 정부에 대항해 벌이는 폭탄테러로 2009년에만 350건, 300~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알카에다 마그레브 지부'라고 자칭하며 현재 5명의 외국인 인질도 억류 중이다. 게다가 지난 1962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알제리는 132년간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와의 독립전쟁에서 200만명이 희생돼,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이 다른 아프리카 국가보다 심한 편이라고 한다. 몇몇 한국인들도 길을 지나가던 중에 '돌을 맞았다'고 한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알제리는 한때 평화로운 시기를 구가했으나 1989년 다당제를 도입한 뒤 1990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이 압승하자 이를 두려워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급격하게 '시계 제로'의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1999년 군부의 지지를 받은 부테플리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조금 안정되기는 했지만, 최근 들어선 군부로부터 독자 노선을 걸으려던 부테플리카 대통령과 군부가 다시 갈등을 빚고 있다. 이를 틈타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의 활동도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고 한다. 알제리에는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어 기업 관계자들이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

검문검색이 심하다 보니, 알제리에선 "테러로 아이스크림 장사가 다 망했다"는 농담이 있다고 한다.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트럭 문을 열어 검사를 하므로 아이스크림이 가게에 도착하기 전에 다 녹아버린다는 뜻이다.

실제로 3월7일 아침 여유있게 알제공항을 향해 출발했지만, 고속도로에서의 검문검색, 공항에서의 검문검색으로 허겁지겁 출국 신고를 해야 했다. 테러 위험 때문에 비행기 출발 20분 전에 비행기 문을 닫아버리는 데 출국신고는 더디게 진행됐다. '독수리 타법'으로 인적 사항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입국 심사원 앞에서 사람들은 5~10분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새치기하는 사람이나 친분이 있는 듯한 입국 심사원을 따라 옆길로 들어가는 사람도 눈에 띈다. 출국 및 보안심사를 마친 뒤, 공항 안에서도 자유롭게 흡연을 할 수 있는 알제리만의 '매력'을 누리며, "제대로 비행기에 탈 수 있을까"하는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간신히 풀었다. 아참, 지중해의 바다, 그 옥빛은 매혹적이었다. 글·사진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