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중의 아프리카 로망] 레소토 왕국

2010. 3. 1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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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산맥… 3000m 봉우리들 줄이은 산악국가

남아공 지도를 보면 신기하게 자그마한 나라 하나가 남아공의 품에 폭 파묻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겐 생소한 레소토(Lesotho) 왕국이다. 레소토는 배낭족들이 많이 이용하는 바즈 버스의 루트에서 다소 떨어져 있다. 그리 알려진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여행객이 잘 찾지 않는 나라다. 그래도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서라도 꼭 가보고 싶었다. 더욱이 남아공에 온 이상 찾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름철에 사용하는 레소토 집들. 원뿔 모양의 레소토의 집들이 평원 위에 뜨문뜨문 세워져 있다.

레소토는 인도양에 면한 항구도시 포트 엘리자베스나 더반을 기점으로 찾아가면 된다. 필자 또한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출발해 중간마을인 콕스타드와 운더버그를 거쳐 레소토 왕국 아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까지 가기로 했다.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콕스타드까지는 바즈 버스가 운행한다. 오전 9시쯤 바즈 버스를 타고 포트 엘리자베스를 출발해 오후 7시가 지나 예약해 둔 사니패스 로지에 도착했다. 게스트하우스 안쪽으로 들어가니 소박한 산장에 들어온 느낌이다. 주방과 공동 휴게실이 있는 곳에서는 여행객들이 각자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보통 여행객들은 레소토 여행의 기점이 되는 운더버그나 이곳 숙소에 머물면서 레소토 왕국의 사니패스를 구경한다.

레소토 왕국은 남아공 최대의 산악지대인 드라켄스버그 국립공원과 연결돼 있는 산악국가다. 세계유산 가운데 하나인 이 국립공원은 그 길이가 수백 ㎞에 이르는 광활한 산맥과 3000m가 넘는 고봉들이 이어져 있다. 드라켄스버그 산맥의 서쪽은 레소토 왕국의 동쪽 국경으로 내려가 레소토와 만나고, 반대로 산맥의 동쪽은 인도양 해안가로 내려가 남아공 이스턴 케이프주의 '와일드 코스트(Wild Coast)'를 만든다. 원래 드라켄스버그 지역은 1000년 전 수렵 채집민이었던 산(San) 부시맨들의 고향이었다. 산족은 이 지역을 지배하려던 줄루족, 코사족, 아프리카너와 영국인들에 의해 밀려나 현재 보츠와나의 칼라하리 사막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드라켄스버그 지역의 동굴에는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부시맨의 암각화가 남아 있다.

◇옛날 '산(San)족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사니패스'. 한마디로 '구절양장'이다. 길이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심해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레소토 왕국이 산속 깊은 곳에 만들어진 이유는 19세기 초 원래 바소토족(레소토 사람들을 '바소토'라고 부른다)이 살던 지역에 보어인과 줄루족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바소토족은 이들을 피해 드라켄스버그 산맥에 레소토 왕국을 만들었다. 레소토는 한때 '바소토랜드'라는 이름의 영국보호령이었다가 1966년 '레소토'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산속에 위치한 레소토는 수입원이 적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레소토 왕국에서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사니패스(Sani Pass)'다. 사니패스란 '산(San) 족이 다녔던 길'이란 뜻. 인근 숙소에 머물면서 '사니패스 투어'를 신청하면 하루 일정으로 사니패스를 다녀올 수 있다. 오전 9시가 되자 나이가 지긋한 가이드가 나타났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35년간 가이드를 했다고 한다. 어젯밤은 밤이 늦어 숙소 주변을 보지 못했지만, 지프에 오르기 전 숙소 앞을 보니 탁 트인 산맥이 눈에 들어온다. 사니패스의 모습이 짐작이 간다. 차로 10분 정도 가니 '굿 호프'라는 자그마한 빈터가 나왔다. 옛날 레소토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와 주수입원인 양털과 생활필수품을 교환하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레소토 왕국까지는 45㎞. 사니 패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길이다. 정상은 2873m에 이른다. 길이 구불구불하고 험해 운전하기가 만만치 않은 곳이다. 올라갈수록 경사가 심해지고 지프는 원을 그리듯이 천천히 올라간다. 중간에서 자동차가 멈추어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 멀리 웅장한 산맥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조금 있다가 해발 1968m에 위치한 남아공 국경을 통과했다. 이어 레소토 국경이 나온다. 레소토 국경을 통과하면 길이 점점 더 험해진다. 지프가 올라온 길을 슬쩍 내려다보니 아래는 낭떠러지다.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계속 올라가니 조금씩 온도가 내려가고 날씨가 흐려진다. 분명 아침에 출발할 때는 햇볕이 쨍쨍했는데 조금 더 올라가자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한다. 역시 산중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정상 가까이 올라가자 탁 트인 평원이다. 평원에는 원뿔 모양의 여름철용 레소토 집들이 뜨문뜨문 서 있고, 한쪽에는 양떼의 모습과 양털 깎는 막사가 보인다. 20분 정도 올라가자 평원이 내려다보인다. 가이드가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나누어 주었지만 바람이 세고 날씨가 추워 밖에서 먹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차 밖으로 나가니 '음메'하는 양들의 울음소리와 방울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양치기와 그를 따라 가는 양치기 개들의 모습이 보인다. 담요를 하나씩 걸친 양치기들은 복면 같은 헝겊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삐죽 내밀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잘 웃지 않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 양 치는 일 외는 할 일이 없으니 화낼 일도 웃을 일도 없을 것 같다. 청소년기에 양치기는 외로운 직업이라고 가이드가 말한다.

◇레소토의 양치기 소년. 추운 산악의 날씨 때문에 담요를 하나씩 걸치고 복면 같은 헝겊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끝으로 향한 곳은 사니패스의 정상인 '사니톱(Sani Top)'이다. 해발 2873m의 사니톱에 오르자 비가 내리고 주위는 안개로 가득하다. 사니톱에는 산장이 있어 숙박을 할 수 있고 자그마한 카페에서 음료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산장 실내로 들어가니 입구에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펍(pub)'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 날씨가 춥고 흐린 탓에 따뜻한 음료가 그리워진다. 다행히 겨울철 와인인 글뤼바인을 팔고 있다. 카운터에서 한 잔 주문하여 마시니 몸이 녹는 것 같다. 달콤하고 따뜻하다. 이어 레소토에 온 기념으로 레소토 맥주를 한 잔 했다. 산장 안을 둘러보니 눈 덮인 사니패스의 겨울 풍경을 찍은 사진이 한 장 걸려 있다. 겨울철에도 사니패스에 오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어떤 한 사람이 한겨울에 15분 동안 스키를 타고 산 아래로 내려왔다가 3시간에 걸쳐 올라간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사니톱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차에 올랐다. 10분 정도 내려왔는데도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 차창 밖을 슬쩍 보니 낭떠러지다. 마음을 조아리면서 내려가고 있는데 어느덧 안개가 걷히고 조금 후에 차가 잠시 멈춘다. '유스 스프링(Youth Spring)'이라는 샘물이 있는 곳이다. 이곳 샘물을 100㏄ 마실 때마다 한 살씩 젊어진다고 해서 '젊음의 샘물'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이런 가이드의 설명을 듣자 모두 차에서 내려 샘물을 마시기 바쁘다. 샘물을 마시면서 주위를 돌아보니 알록달록한 꽃이 예쁘게 피어 있고, 쌍무지개가 하늘에 걸려 있다.

다시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6시쯤. 하루를 사니패스에서 보내고 나니 레소토 왕국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절양장(九折羊腸) 같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과 웅장한 산맥도 인상적이었지만, 우수에 찬 듯한 양치기의 얼굴도 한동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남아공에서 계속 바다를 보다가 오랜만에 산림 속에 있으니 색다른 기분이다. 신선한 공기와 자연 속에 고립된 느낌도 좋았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밤새 많은 비가 내린 것 같다. 정원 한쪽에서 빗방울을 머금은 꽃들을 바라보니 마음 또한 촉촉해지는 것 같다.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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