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지주회사 규제완화안' 표류 2년째
[한겨레] 하자니 내분 무섭고, 안하자니 재계 걸리고
국회·공정위 23일 공청회 열어세종시 등 정세불안 강행 부담포기 땐 재벌 간 '형평성' 논란
정부여당이 지주회사 규제 완화를 위해 추진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이 야당 반대로 2년째 표류하고 있는데도, 법개정 포기나 강행 사이에서 선택을 못한 채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초기 친재벌 기조를 내세워 무리하게 '금산분리 완화'를 강행한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지적이 많다.
국회 정무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는 23일 오후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에 관한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이번 공청회에서는 시민단체와 학계, 재계 인사들이 여야 대표로 나서 최근 공정위가 제시한 법 개정안 수정안에 관해 찬반토론을 한다.
공정위는 지난 2008년 3월 지주회사 규제 완화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이어 7월에 국회에 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야당이 금산분리 원칙 훼손이라며 반대해 2년째 국회 정무위도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최근 공정위는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법 개정안 중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소유는 허용하되, 대신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200% 제한 폐지, 지주회사 내 사모펀드(PEF)의 계열사 의결권 제한 및 행위제한 면제 조항은 포기하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공정위는 수정안이 2월 임시국회에서 정무위를 통과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야당은 아직 법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어 전망이 불투명하다. 민주당의 박선숙 의원(정무위)은 "일반지주회사에게 금융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는 것이 금산분리를 훼손한다는 당론은 여전하다"면서 "정부여당과 대화는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새롭게 검토 필요성을 제기한 중간 금융지주회사 의무화 방안도 공정위가 난색을 보이는 등 이견이 크다.
민주당 토론자인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정부가 굳이 지주회사제의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한다면 비은행 금융자회사들을 지배하는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일반금융지주회사 밑에 두도록 의무화해, 금융사로 인해 부실위험이 다른 계열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토론자인 전경련의 황인학 상무는 "개정원안 통과가 가장 바람직하다"면서 "중간 금융지주회사 의무화 조건을 들어본 뒤 최종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로서는 수정안도 여의치 않으면, 지난해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이나 출총제 폐지 때처럼 공정거래법 개정을 강행처리하거나, 아니면 아예 개정을 포기하는 양자택일을 해야하지만 둘 다 쉽지 않다. 개정 강행은 세종시를 놓고 여권 내분이 심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는 법개정 포기에 대해서도 "출총제 폐지로 인해 지주회사 규제완화를 하지 않을 경우 역차별 문제가 발생한다"며 난색이다.
소유구조가 단순·투명해 정부가 권장해온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재벌들은 현재 금융자회사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데, 소유구조가 복잡해 비난을 받고 있는 일반 재벌은 아무 제약없이 금융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어 형평성 시비가 일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일부 그룹들이 정부의 법개정 방침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보유 중인 금융사 매각작업을 중단한 것도 큰 부담이다. 공정위 주변에서는 출총제 폐지와 금융지주회사 규제완화, 일반지주회사 규제완화는 금산분리 완화라는 측면에서 여야 합의로 일괄처리했어야 하는데도 정부가 일부를 강행처리한 것이 '원죄'라는 지적이 많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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