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원점으로 가는 세종시?

김종배 (시사 평론가) 2010. 2. 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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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른 길은 없다. 도 아니면 모다. 정부가 지난 1월27일 세종시 관련 법률 개정안 5개를 입법예고함으로써 3월 이후 세종시 수정안은 가결 아니면 부결 운명을 맞이해야 한다.

정부와 친이계는 4월 가결을 공언하지만 확신보다는 희망에 가깝다. 친박계가 방침을 선회하지 않는 한 가결은 고사하고 4월 처리조차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6·2 지방선거 공천이라는 악재와 겹친다. 계파 논리가 극점에 이를 때 상대 계파가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안을 처리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세종시특별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1월27일 행정안전부 직원들이 개정안 관련 관보를 보고 있다.

여론전이 변수로 작용할 여지도 없다. 정부와 친이계는 설 연휴에 열리는 여론시장에서 반전의 계기가 마련될지 모른다고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 '총알'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는 순간 차·포는 이미 소진돼버렸다. 기껏해야 졸, 즉 세종시 입주기관 추가 발표와 같은 '찔끔 카드'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걸로는 여론시장을 흔들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충청 민심을 흔들 수 없을뿐더러 주호영 특임장관이 세종시 수정안 추진의 디딤돌로 설정했던 60% 지지조차 끌어내지 못한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정부와 친이계의 4월 처리 계획은 헛꿈에 가깝다.

관전 포인트는 이 지점에서 도출된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정부와 친이계의 돌파 전략 또는 출구 전략은 어떻게 되는 건가?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친박계 일부에서 제기됐다가 폐기된 조기 전당대회론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오는 7월로 예정된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에서 세종시 문제를 쟁점화한 후 친이계 후보를 대표로 선출해 이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당심의 추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렇게 친박계의 승복을 강제하는 것이다.

동기는 뚜렷하다. 어차피 이명박 대통령 처지에서는 차기 당 지도부를 친위 체제로 구축해야 한다. 집권 중반기의 누수 현상을 예방하고 2012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차기 당 지도부를 친이계 중심으로 짜야 한다. 이렇게 총력전을 펴야 하는 전당대회라면 세종시를 베팅판에 올려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죽기 아니면 살기이니까.

전당대회가 반전 계기 될까?

행여 모른다.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 절대 불가를 외친 이유가 지방선거 때문이었다면, 그래서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서 슬쩍 한 발 뺄 여지가 생긴다면 이런 시나리오가 먹혀들지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을 쳐다보지도 않는 이유는 지방선거 때문이 아니라 대선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끝난다고 박근혜 전 대표에게 타협할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뿐이 아니다. 박 전 대표 처지에서 보면 전당대회에서 패배한 마당에 세종시 수정안에까지 굴복하면 망한다.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고 정치적 명분이 약해지고 정치적 위상이 추락한다.

자명하다. 일합을 겨룰 시점을 지방선거 이후로 늦춘다 해도, 전장을 국회에서 전당대회장으로 바꾼다 해도 출구는 열리지 않는다. 그럼 뭘까? 지긋지긋한 세종시 공방, 나아가 계파 갈등을 끝낼 묘수는 뭘까?

달리 방법이 없다. 정부와 친이계가 생문(生門) 없는 세종진에 갇혔다면 구멍을 파야 한다. 뒷구멍을 파서 생문으로 삼아야 한다. 설득을 하든 회유를 하든, 협박을 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친박계에서 '전향자'를 끌어내야 한다. 박근혜계가 '거대한 소수'로 군림하는 이유인 캐스팅보트권을 허물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가운데)가 세종시 수정안을 쳐다보지도 않는 이유는 지방선거 때문이 아니라 다음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소속 의원들에게 권력의 법칙, 즉 미래 권력에 대한 경사 법칙을 비웃으라고 강요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공존이 아닌 파괴를 지향함으로써 친박계의 극심한 반발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성과가 크면 또 모른다. 권력의 법칙을 외면하고 '전향'하는 의원들이 다수라면, 그래서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를 파괴해도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또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큰 성과를 낸다는 보장이 없다.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때로는 단순한 게 합리적이라는 믿음으로 '알렉산더의 칼'을 빌리는 것이다. 풀려고 하지 않고 끊어버리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세종시 수정안 포기를 선언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승자 격인 박 전 대표의 아량이 지방선거 지원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선거 승리로 귀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조차 현실적이지 않다. 어떤 친이계 의원이 그랬다지 않은가. "포기할 것이라면 시작하지도 않았다"라고. 대통령의 지분을, 그것도 49%가 아니라 51%가 될지도 모를 지분을 내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이다.

대비해야 할지 모른다. 미디어법 사태가 되풀이되는 상황, 즉 1년 넘게 공방 국면이 이어지는 상황을 대비해야 할지 모른다.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미디어법 사태와는 다른 상황, 즉 1년 넘도록 시간을 질질 끌어도 공방 국면이 마무리되지 않는 상황을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상태에서 국민의 진을 빼는 그런 상황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지 않았는가. "(세종시는) 다음 정권 중간쯤에 해야 할 일"이라고, "나는 그냥 슬슬하면 만사가 다 편안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었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돌고 돌아 원점으로 가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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