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엽편주에 몸을 실어 기암절벽 병풍 속으로..

2010. 2. 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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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겨울] 이와테현 게이비케이

일본 이와테현 게이비케이 새하얀 설원을 지나 '일본백경(日本百景)' 중의 하나인 게이비케이(猊鼻溪)에 도착했다. 이와테(岩手)현 남부에 위치한 게이비케이는 강이 석회암을 침식해서 생긴 약 2km의 계곡이다. 차창 밖으로 아담하고 낡은 목조 건물의 매표소와 여러 척의 배가 정박되어있는 나루터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리자 상쾌한 겨울 공기가 코 안 깊숙히 빨려 들어 히터 때문에 답답해진 가슴이 뻥 뚫렸다. 발목까지 눈이 쌓여 있었지만, 바람이 없어 춥지는 않았다. 한 외국인 관광객은 반팔티만 입고 여자 친구 앞에서 용맹을 자랑하기도 했다. 수북이 눈이불을 덮은 배 몇 척이 나루터 한 귀퉁이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었고, 나머지 대부분의 배들엔 유리인지 투명 아크릴인지 모를 덮개가 덮여 있었다.

티켓을 끊고 선착장에 들어섰다. 전통을 지켜가고 있는 자부심을 표현한 듯 티켓의 뒷면에 사공 35명여의 단체 사진과 이름이 인쇄돼 있었다. 앉으면 머리가 닿을 듯 나지막한 덮개가 있는 배 안으로 신발을 벗고 올랐다. 난로가 붙어 있는 일본식 좌식 탁자인 '고타츠'가 가운데로 길게 놓여져 있었고, 상 위엔 도시락과 김을 뿜고 있는 일본식 전골이 1인분씩 소담하게 차려졌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앉자마자 전골 뚜껑부터 열었다. 예전에 이 계곡에 살던 나뭇꾼들이 즐겨 먹던 '기나가시나베'라는 이름의 이 전골요리는 일본 된장에 닭고기, 돼지고기, 산나물이 어우러져 담백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어느덧 사공은 깃 삿대 하나만으로 능숙하게 배를 조종해 게이비케이의 첫 굽이를 돌았다. 그제서야 '게이비케이를 보는데 왜 꼭 배를 타야 하나' 하는 의문이 풀렸다. 마치 거제 해금강의 십자동굴 안에 들어온 것처럼 배를 타지 않고선 볼 수 없는 절벽이 좁은 강 양쪽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도로에 인접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20여m를 지나 모퉁이만 돌았을 뿐인데, 느닷없이 펼쳐진 심산유곡(深山幽谷)에 놀란 가슴을 추스를 틈도 없이 기암 괴석의 장관에 숨이 막혔다. 역시 '일본백경'의 영예는 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100m 이상 높게 솟은 양쪽의 깎아지른 석회암 절벽과 눈 덮인 노송(老松)은 수묵의 농담으로만 표현한 듯 비경을 이뤘다. 마치 영화 '전우치'에 나오는 도사가 사는 산수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어린 잎 녹차를 타 놓은 듯 푸르고 바닥이 다 보이는 맑은 물은 어찌나 고요한지, 흐르는 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절벽 때문에 음파가 상쇄된 '절대 고요'의 상태 속에서 '쏴악~착' 하고 사공이 물을 가르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사공의 설명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배를 타기 전에 받은 한글 안내문을 보면서 이쪽 바위는 사람 옆 모습을 닮았고, 저 바위는 '부부바위'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만약 우리말로 설명을 해준다 해도 절경에 취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도 같았다.

이름이 붙어있는 17개의 기암 괴석을 지나 계곡의 심장부에 이르니 이제서야 배가 정박할 수 있는 곳이 보였다. 배에서 내려 눈밭을 지나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니 어마어마한 절벽이 나타났다. 빌딩 정문에선 꼭대기가 안보이듯 높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나무 푯대 만이 이 거대한 벽의 높이가 124m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옆엔 이 계곡 이름을 짓게한 사자코(猊鼻) 바위가 있었다. 석회암 중 철 성분이 부식되어 흘러내린 붉은색 부채꼴 모양의 바위가 무채색 절벽 중간에 툭 불거져 나온 형상으로 그 이름 값을 하고 있었다. 사자코 바위 아랫 쪽엔 1m 정도 되는 홈이 있는데, 그 곳에 돌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예닐곱 개를 던졌는데 하나도 안 들어가 그냥 포기하고 다시 배에 올랐다.

지나온 물길을 되돌아 다시 선착장으로 가는 길엔 사공이 불러주는 전통민요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시조창처럼 길게 뽑아 부르는 늙은 사공의 노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고는 하나 좀 구슬프게 들렸다.

유람을 끝내고 선착장에 내리니 배를 타고 아주 잠깐 왔다갔다한 것 같은데 어느새 1시간30여분이 지나 있었다. 시공을 초월한 곳으로 다녀온 듯 야릇한 기분에 소름마저 돋았다.

여행수첩

● 이와테현에는 국제공항이 없기 때문에 인근 아키타공항(아키타현)이나 센다이공항(미야기현)을 이용해야 한다.

● 출시된 패키지 여행상품은 없지만, 북도호구3현ㆍ홋가이도 서울사무소(www.beautifuljapan.co.kr (02)771-6191~2)를 통해 여행관련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 온천이나 호텔을 이용할 때 유카타(일본식 잠옷)를 입고 객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으니 주의하는 게 좋다.

● 슬로프 정상 부분에선 세찬 눈바람이 자주 몰아치기 때문에, 스키장 이용 시 고글을 착용하지 않으면 큰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

이와테(일본)=글ㆍ사진 김종민기자 kjm123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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