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장광근 쳐내고 '바지대표' 딱지 떼나?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0. 1. 1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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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은 통과시켰다. 조기 전당대회론도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 큰 파도를 넘긴 듯 평온해 보이는 한나라당에 조만간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떠오를 전망이다. 취임 4개월이 지나도록 '초보운전' 딱지를 떼지 못한 정몽준 대표가 당직개편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것인지가 주목된다. 당 대표가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 중 핵심은 당의 살림을 꾸리고 공천 작업을 총괄하는 사무총장 자리다. '정몽준발 당직개편안'의 관전 포인트는 결국 '사무총장 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보다 노골적으로 말해 "정 대표가 현 사무총장인 '장광근 쳐내기'를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로 정리된다.

사무총장 인사는 당 대표의 권한이니만큼, "대표가 사무총장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도체제의 속사정을 짚어보면 이해가 된다. 정 대표의 리더십이 극히 취약하다는 게 문제의 출발점이다.

사무총장은 '대표의 남자'인 게 보통이지만, 정몽준 대표(오른쪽)와 장광근 사무총장(왼쪽)의 관계는 그와 거리가 멀다.

지난해 9월 박희태 전 대표의 사퇴로 대표직을 승계한 정몽준 대표는 4개월이 넘도록 당 장악은커녕 변변한 우군 하나 만들지 못한 모습이다. '자기 사람'이라고 해봐야 여전히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선수로만 보면 6선으로 18대 국회에서 두 번째 다선 의원이지만 그중 다섯 번을 무소속으로 보냈다. 정당 생활은 겨우 2년밖에 안 된 '초보운전자'다. 한나라당의 터줏대감을 자임하는 몇몇 다선 의원은 대놓고 정 대표를 무시하는 발언을 쏟아낸다. 초보 대표 정 대표가 '조직의 쓴맛'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세 차례 연이은 '맨땅에 헤딩'으로 당내 입지는 더 좁아졌다. 지난해 12월14일에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사면 논의에 대해 "이른 감이 있다"라며 반대했다. 12월16일에는 4대강 사업 예산 문제로 꼬인 정국을 풀자며 청와대와 민주당에 '3자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엿새 뒤인 12월22일, 정 대표는 4대강 사업을 두고 "정말 국민이 걱정하고 바라는 사업인가 좀 회의가 든다"라고 말했다. 세 번 모두, 청와대는 여당 대표의 말을 흘려들었다. 사면을 단행했고, 3자 회담을 거부했고, 국회를 통해 4대강 예산을 처리했다. 정 대표가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리저리 수를 던져보지만 청와대는 신경 쓰지 않는 형국. 정 대표의 임기 내내 반복된 패턴이다.

"대표가 타이밍을 보고 있다."

청와대가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서 '굴러 들어온' 대표의 힘이 빠진 만큼 친이계의 기세는 높아졌다. 안상수 원내대표와 장광근 사무총장은 공개적으로 정 대표를 무시하는 발언을 해 여러 차례 언론을 타기도 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정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후보 단일화를 한 것에 여전히 앙금이 남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얘기다.

당 소속 국회의원이 직접 뽑는 원내대표야 그렇다 하더라도, 대표 직속이라 할 사무총장까지 대표를 흔들고 나서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직접적인 하극상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정 대표가 3자 영수회담을 제의한 이틀 뒤인 12월18일 장광근 사무총장은 "원내대표의 정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어떤 행보도 자제해야 한다"라고 말해 사실상 정 대표를 겨냥했다. 다시 나흘 뒤인 12월22일 원내대책회의에서도 "대통령을 정국파행의 중심으로 끌어들여서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속 보이는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3자 회담을 촉구하는 야당에게 한 말이라지만, 최초 제안자인 정 대표더러 들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평소에도 장 총장이 정 대표에게 보고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정 대표가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망신당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 대표 주변은 부글부글 끓지만, '장광근 쳐내기'가 청와대의 재가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는 눈치다. 지금껏 청와대가 정 대표에 힘을 실어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정 대표가 칼을 뽑을 수 있을지는 조기 전당대회론이 어떤 식으로 정리될지와도 관련이 있다. 현 시점에서 조기 전당대회는 박근혜·이재오 두 대주주가 모두 원하지 않는 데다 청와대에서도 현상 유지를 선호해 동력이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정 대표 쪽에서는 조기 전당대회가 확실히 불가능한, 즉 청와대가 정 대표 체제로 지방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는 시점까지 '거사'를 미룰 가능성이 있다. 정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대표가 타이밍을 보고 있다. 조기 전당대회론이 아직 완전히 꺼진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이심'은 어디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왼쪽)와 조찬 회동에 앞서 정 대표로부터 당원증을 받고 있다. 가운데는 한나라당 장광근 사무총장.

친이 직계인 '장광근 쳐내기'가 어차피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면, 정 대표의 몸값이 최대한으로 올라갈 때가 '거사 시점'이 되지 않겠느냐는 의미다. 여기에 1월11일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면 한동안 세종시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어쨌거나 정 대표 주변에서는 "장광근 체제로 지방선거를 치르는 것은 '정몽준 리더십'의 종언으로 보면 된다. 이대로 시체 같은 리더십을 유지해 나가느니 승부수를 던지는 게 맞다"라는 정서에는 공감대가 생긴 듯하다.

그렇지만 정 대표의 주변을 한 발짝만 벗어나면 "거사? 결국 못하지 않을까"라는 관측이 한나라당의 다수설이다. 청와대의 힘 때문이 아니다. 여러 의원은 오히려 정 대표의 스타일을 그 이유로 지목했다. 중립 성향인 한 수도권 의원은 "현대가의 '왕자'로 태어나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에서만 정치를 해온 탓에 작은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정치 스타일이 몸에 뱄다. 청와대를 상대로 모험을 걸 배짱이 있을 것 같지 않다"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친이계 핵심 의원은 아예 방법론까지 제시했다. "어차피 지금 청와대는 정 대표를 못 버린다. 지자체 선거를 코앞에 두고 당의 혼란을 감당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그냥 대표 그만둘 각오를 하고 청와대에다 '사무총장 자르겠습니다' 통보하면 되는 거다. 결재를 맡고 할 일조차 아니다. 그 정도 위험부담도 지기 싫으면 정치하지 말아야지. 그건 본인 정치력이 없는 것일 뿐 청와대 탓할 일이 아니다."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시점까지 기다리겠다는 정 대표 쪽의 판단과, "그러다가 끝까지 기다리기만 할 것 같다"라는 외부의 냉소적인 시선이 맞물린 장면이다. 정 대표의 다음 인사를 보면 답이 나온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 시사IN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시사IN 구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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