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총리' 정운찬, 끝내기 안타? 병살타?
5초 동안 정적이 흘렀다. 세종시 외에 정운찬 총리의 치적을 꼽아달라는 기자의 질문 앞에서 한 친이계 의원은 짧게 침묵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 총리 스스로는 용산 연내 타결을 꼽더라는 기자의 말에 그는 "맞다 맞다, 그게 있었지"라며 한 발 늦은 정 총리 칭찬을 늘어놓았다.
정 총리 취임 100일을 평가해달라는 주문에 친이·친박을 떠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세종시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라는 첫 반응을 보였다. 다만 평가가 엇갈렸을 뿐이다. 친이계 정두언 의원은 "세종시로 고생은 했지만 존재감을 높이지 않았느냐. 잘만 해결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라고 말했다. 반면 친박계 김선동 의원은 "세종시 안을 들고 나오면서 화합보다는 갈등을 조장했다"라며 비판했다. 중도로 분류되는 한 중진 의원은 "세종시 말고는 한 게 있어야 말을 하지"라며 평가 자체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의 세종시 처리 요구에 대처하기 바빠 자기 정책을 펼치지 못했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정치권에서 정 총리는 '세종시 총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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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문제에 발벗고 나선 정운찬 총리(왼쪽)가 지난해 12월19일 충남 연기군의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
이에 대해 정 총리 쪽에서는 할 말이 많다. 1월11일 세종시 수정안이 나오면 세종시 문제는 일단락이 될 거라고 자신했다. 숨겨놓은 한 방이 수정안 지지 여론을 올릴 것으로 내다보았다. 김창영 총리실 공보실장은 "이제 정 총리의 양쪽 어깨를 짓눌렀던 용산참사, 세종시와 같은 '과거의 이슈'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그 빈자리에 경제와 교육이라는 전문분야를 올려 '미래의 이슈'로 어젠다 세팅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종시는 계속해서 정 총리의 발목을 붙들어맬 전망이다. 1월7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원안이 배제된 수정안은 반대한다"라며 기존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내세웠다.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단일하게 움직이는 한나라당 내 친박계 의원들이 세종시 수정안 반대에 나선다면 정 총리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의 한 한나라당 의원은 "(정 총리는) MB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는 카드이다. 총리 후보 면접 질문이 세종시였다고 하지 않나. 그렇다보니 총리는 취임 초부터 세종시 문제에 적극적이었다. 수정안이 통과된다면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꽃놀이패겠지만 친이·친박이라는 당내 역학구도상 통과되지 않더라도 그 책임은 총리가 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 총리는 MB발 시나리오의 조연
친박 쪽에서도 "친박이 (수정안에 대해) 세게 나온다면 친이계에서도 수정안을 계류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세종시 안은 유야무야 된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노린 수는 뭐였을까? 세종시에 정신을 빼놓은 다음에 4대강 예산을 통과시키고, 박 전 대표를 고사시키려는 계획 아니었겠나. 정 총리는 MB발 시나리오에 훌륭한 조연이었다"라고 말했다.
정운찬 총리는 야구광으로 유명하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임용 면접을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 덕택에 통과했다고 자랑할 만큼 야구를 좋아한다. 서울대 총장을 그만둔 후 야구해설가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9회 말 투 아웃 상태에서도 마지막을 예상할 수 없기에 야구와 인생이 닮아서 좋다"라고 말했다. 정 총리의 '세종시 한 방'은 통할 수 있을까?
핵심은 여론이다. 박 전 대표는 "내가 아니라 충청도민을 설득하라"고 말한 적이 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이명박 정부도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이 크다. 세종시 수정안 발표 후 여론의 향방이 정 총리의 미래를 좌우할 전망이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 시사IN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시사IN 구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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