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포일락, 신뢰, 세종시

2010. 1. 1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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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중국 역사상 명군으로 꼽히는 당 태종에게는 바른말 하는 명신 위징이 있었다. 위징이 남긴 시 <술회>에 '계포는 두 번 약속하지 않았네'(季布無二諾)라는 구절이 있다. 계포는 초나라 항우의 장수였는데, 한번 약속하면 반드시 지켰다. 그래서 '계포는 한번 약속하면 그뿐이다'라는 '계포일락'(季布一諾)이란 사자성어가 생겼고, '황금 백근보다 계포의 말 한마디가 낫다'는 속담도 있다. 이백의 시에 '초나라 사람들은 약속을 중시한다'는 구절도 계포를 연상시킨다.

공자는 신뢰가 국정의 기본임을 역설한 바 있다. 현대경제학은 계포와 공자의 선견지명을 인정하고 있다. 종래 경제학은 물적 자본, 인적 자본만 중시했으나 최근에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 나라의 경제발전의 요체가 바로 사회적 자본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수없이 약속했던 세종시 원안 추진을 헌신짝처럼 던져 사회적 자본을 파괴하더니 도깨비방망이라도 가졌는지 불과 두 달 만에 수정안을 뚝딱 만들어냈다. 정부 부처 이전을 백지화하고, 기업도시, 과학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을 억지로 세종시에 끌어들이기 위해 세금 감면, 토지 헐값 매각에 토지 전용권까지 주는 변칙과 특혜를 마다하지 않는다. 서울에 가까운 세종시에 특혜를 주어 기업을 유치해가면 지금까지 기업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써왔던 지방의 혁신도시, 기업도시, 경제자유구역 등은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세종시의 원래 취지가 균형발전인데, 정부의 수정안은 균형발전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왜 세종시를 수정하려고 하나? 행정수도 분할로 인한 비효율을 이유로 든다. 행정수도가 분할되면 회의를 하기 위한 교통비용이 들기는 할 것이다. 세종시를 만들어 운영해본 뒤 과연 회의비용이 크다고 판명되면 수도 이전을 국민투표에 부쳐 청와대, 국회까지 몽땅 세종시로 이전하면 된다. 서울의 과밀이 줄어들고, 청와대, 국회가 공원이 되면 서울시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고, 세종시도 좋고, 지방도 좋고,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최근 세계적인 여행안내서 출판사인 <론리 플래닛>이 뽑은 세계 최악의 도시에 서울이 3위에 올랐다. 선정 이유는 서울이 '무질서하게 뻗은 도로, 옛소련 스타일의 콘크리트 아파트, 끔찍한 대기오염, 영혼도 마음도 없는 지겨운 단조로움이 사람들을 알코올중독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란다. 좀 과장이 있지만 옳은 이야기를 했다고 본다. 이번 폭설로 서울시 교통은 마비상태에 빠졌다. 과밀의 비용을 잘 보여준다. 이런데도 서울을 더 공룡으로 만들고 싶은 서울중심주의자들이 세종시를 왜곡시키고 있다. 경제대통령을 자임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묻겠다. 경제적으로 어느 비용이 더 큰가? 회의비용인가, 아니면 신뢰 상실과 균형발전 후퇴로 인한 비용인가? 삼척동자라도 그 답을 알 것이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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