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없는 '눈폭탄'.. 땅·하늘 막히고, 지하철은 숨막혔다

김기범·유정인·황경상·김지환기자 2010. 1. 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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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수도권·충청지역 등이 폭설로 덮인 4일 도로와 하늘길은 꽁꽁 묶였다. 눈길·빙판길에서는 하루종일 사람과 차가 우왕좌왕하며 최악의 교통대란이 벌어졌다. 아침에는 무더기 지각사태가 이어졌고 예정된 시무식은 취소되거나 오후로 늦춰졌다. 거리에는 자장면 배달이나 택배도 자취를 감췄다. 새해 첫 월요일이 '설폭(雪爆)'을 맞은 날이다.

조종석 닦고…

수도권 폭설로 일부 항공기 운항이 중단된 4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직원들이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도로 수십곳 마비 … 김포공항 9년 만에 올스톱

폭설이 내린 수도권 일대 고속도로와 시내도로는 통행마비 상태에 빠졌다. 김포공항을 뜨고내리던 항공기 운항도 210편이 결항되다 오후 3시30분부터 재개됐다.

경찰청은 이날 오후부터 삼청터널길·인왕산길·북안산길 등 서울시내 도로 3곳을 포함해 전국의 도로 17곳의 통행을 금지시켰다. 성남의 남한산성로 3.5㎞ 구간과 의왕의 도깨비도로에서도 하루종일 양방향 차량 통행이 금지됐다. 오전 한때 경부고속도로의 서초·양재·수원·오산(하행선)·판교(상행선), 서울외곽고속도로 산본·평촌 등 7개 고속도로의 나들목(IC)들도 차량 진입이 통제됐다.

김포공항에서는 2001년 1월 폭설 이후 9년 만에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현재 오전 6시45분 김포발 제주행 대한항공 비행기를 시작으로 공항을 출발할 예정이던 항공기 103편과 도착 예정이던 107편이 결항됐다.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자 김포공항에 있던 승객들이 철도로 몰려 큰 혼잡이 빚어졌다. 서울에서 부산지검으로 출근하려던 검찰 공무원 박모씨(48)는 아침 6시 공항에 나왔다가 비행기가 결항되자 서울역으로 방향을 돌려 기차로 내려갔다. 항공기 운항은 오후 3시30분부터 부분 재개됐다.

눈길·빙판길 교통사고와 정전 등 크고 작은 사고도 잇따랐다. 이날 오후 3시30분쯤 경기도 하남시 중부고속도로 상행선 만남의 광장 부근에서 한 반도체회사 통근버스가 갓길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5m 아래 언덕으로 굴러 김모씨(31·여) 등 7명이 크게 다치고 35명이 경상을 입었다. 오전 4시50분쯤에는 제2경인고속도로 인천 방면 문학 나들목에서 전모씨(46)가 몰던 트레일러가 눈길에 미끄러지며 사고가 나 5㎞ 구간에서 정체가 빚어졌다. 오전 11시12분쯤에는 서울 상계3동 배드민턴장에서 육모씨(54)가 배드민턴장의 비닐 지붕에 쌓인 눈을 치우려다 떨어져 사망했다. 종로구청 인근 주택가에서는 폭설로 변압기에 과부하가 걸려 전기공급이 1~2초 끊기는 사고가 발생했다.

택시 승객도 밀고…

4일 밤 늦게까지 눈이 녹지 않은 서울 역삼역 사거리에서 택시 승객이 미끄러지는 차의 출발을 돕기 위해 밀고 있다. |김기남기자

분당~서울 5시간… 버스 포기 '지옥철'로

폭설이 기습한 4일 시민들이 한꺼번에 버스나 지하철로 몰리면서 출퇴근 길은 '교통지옥'으로 바뀌었다.

회사원 안모씨는 오전 7시30분쯤 분당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출발, 서울 종로구 계동까지 출근하는 데 5시간이 걸렸다. 평소 1시간10분 걸리던 거리다. 분당을 떠난 버스는 3시간 넘도록 고속도로에도 진입 못하고 도로에 갇혔다. 끝내 고속도로 진입로가 폐쇄돼 안씨는 분당으로 돌아가 지하철을 타고 낮 12시30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용인에서 오전 7시20분쯤 통근버스에 오른 한 공무원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한 것은 5시간20분이 지난 낮 12시40분쯤이었다.

교통정체를 피해 지하철을 탄 시민들도 혼잡과 전동차 고장으로 큰 불편을 겪었다. 회사원 이지혜씨는 "양천구 목동에서 강남구 삼성동까지 1시간30분이면 갔었는데 지하철을 타고도 3시간이 걸렸다"며 "사람은 몇 배나 많고 열차 지연 때문에 느리게 가니까 '이런 게 바로 지옥철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돈암동과 성동구 옥수동 등 일부 지역에서는 경사가 높은 지역을 운행하던 마을버스가 끊어지면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어야 했다.

퇴근길 시민들이 몰린 지하철은 신도림·교대역 등 환승역을 중심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일부 회사들은 사원들을 배려해 퇴근시간을 1~2시간 정도 앞당기기도 했다.

만원 지하철을 걱정해 늦게 퇴근하거나 회사나 근처 사우나에서 잠을 자는 직장인들도 있었다. 경기 광주노동지원센터에 근무하는 한 20대 직장인은 "오늘(4일)은 결국 출근을 못했고, 내일(5일) 출근을 위해 저녁에 회사로 가서 잘 것"이라고 말했다. 문모씨(28)는 "동료 직원들과 직장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지하철에 사람이 줄어든 9시쯤 퇴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각 출근… 휴강… 배달 서비스 '스톱'

폭설로 출근길 지각 사태가 잇따르면서 새해 시무식이나 학교·학원의 개강이 늦어졌다. 공공기관이나 회사들도 지각 처리는 하지 않았지만 어수선한 하루를 보냈다.

한국도로공사는 오전 9시 서울영업소에서 열 예정이던 시무식을 도로 제설을 위해 아예 취소했다. 디자인회사 직원인 이모씨는 "오전에 경복궁에서 모여 시무식을 하고, 삼청동에서 전 직원이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는데 폭설 때문에 회사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회사에서 연락받기 전에 경복궁으로 출발한 직원들도 있어 결국 시무식을 치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오전 10시로 예정했던 시무식을 오후 3시로 연기했고, 현대그룹도 시무식을 오전 9시에서 11시로 옮겨 열었다. 회사원 신영수씨(29)는 "연기한 시무식에도 지각자가 많은 데다 다들 퇴근 걱정이 산더미이다 보니 종일 분위기가 어수선했다"며 "점심 먹을 때도 눈 때문에 다들 건물 안에서 해결하려 해 식당마다 미어터질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폭설로 인해 대학들의 계절학기 휴강도 이어졌다. 국민대 4학년 송모씨(26)는 "오전 9시 계절학기 수업이 있었는데 학교에 도착하니 교수님도 도착 못하고, 결석 학생도 많아 휴강이 됐다"고 말했다. 성균관대에서는 수험생들의 지각으로 연기·체육·미술·무용 등의 정시모집 수험생 실기평가가 1시간가량 지연되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에서도 통학 버스를 운영하지 못해 혼란을 겪었다. 유치원 학부모 조모씨는 "유치원에서 폭설로 인해 통학버스를 운영하지 못하니까 개별 등원하라고 요청해 오늘은 아예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법원에서는 판사와 참여관, 실무관의 지각으로 오전 재판이 연기되는 일도 벌어졌다. 수원지법 형사6부는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29건의 재판을 다음달 1일로 연기했고, 형사6단독도 오전 30건의 재판을 오후 1시 이후로 늦춰 잡았다. 형사10단독의 경우 오전 10시로 잡힌 재판을 오전 11시로 연기했다가 다시 오후 2시로 변경했다.

주로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중화요리점 등은 배달을 쉬는 경우가 많았고, 퀵서비스나 피자배달 전문점 등은 아예 개점휴업하는 곳이 많았다.

☞[화보]폭설이 가져온 지옥같은 상황

< 김기범·유정인·황경상·김지환기자 holjjak@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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