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경향 신춘문예]소설부문- 연규상 '개가 돌아오는 저녁'

2009. 12. 3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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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의 변용

1.순식간이었지만 분명 꿩이었다. 황색선을 세차게 출발한 그것은 길을 가로질러 전력 질주했다. 거추장스러운 외투를 뒤로 훔쳐 올리듯 날개를 잔뜩 웅크린 놈은 몸을 낮추고 목을 길게 뺀 채 도로를 횡단했다. 둥지로 돌아가는 참이었는지, 먹이가 떨어진 터전을 등지는 중이었는지, 몹쓸 짓을 저지르고 야반도주를 하던 길이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여하튼 무엇을 하기에도 어중된 시간, 오직 길 너머만을 겨냥했을 놈의 목표는 산산이 흩어졌다. 부정출발한 스케이트 선수처럼 놈이 황망하게 속도를 늦추는가 싶었을 땐 이미 차의 헤드라이트가 맹렬하게 그 위를 덮친 후였다.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차체 뒤로 깃털이 눈발처럼 날렸다. 죽음이 가볍게 흩어지는 동안 가슴에 둔중한 통증이 내려앉았다. 현기증이 올 때처럼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밝아졌다. 뒤따르던 차가 머뭇머뭇 속도를 줄이는 게 보였고 속도계는 그제서야 120㎞ 너머에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일러스트 | 이강훈작가· < 나의 지중해식 인사 > 저자차에 치여 죽어나자빠진 많은 동물의 잔해를 보았고 때론 질겁하며 그 주검을 밟고 지나치긴 했지만 실제로 로드킬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다. 저지른 것인지, 당한 것인지, 그저 겪은 것인지 역시 분명치 않았다. 브레이크도 밟지 못할 정도의 짧은 순간에 대체 무엇을 한단 말인가. 다가오는 참극을 빤히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버젓이 날개 달린 놈이 날지 않고 하필 뛰었을까 하는 의심은 무용지물이었다. 그 순간 놈도 자신의 목숨을 체념했을까. 하긴 체념할 시간이나 있었을까.

"체념하면 안 돼요. 아빠."이제 소리를 그만 찾아야겠다는 말을 꺼내자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의 표정은 원망으로 일그러졌다. 찾을 가망이 없다는 것과 찾을 의지가 없다는 것 사이의 날카로운 차이에 상처받을 나이였다. 할 만큼은 했다는 나의 위안은 아들의 완강함 앞에 무력했다. 아들이 손톱을 씹었다.

"벌써 한 달이야. 심마니 할아버지 말대로 소리는 산신령이 데려갔을지도 몰라. 그리고……."

아들이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손톱 좀 깎으라려던 잔소리도 목구멍으로 도로 들어갔다. 방문이 닫혔을 때 이제 아들이 현실의 해답을 동화 속에서 찾는 나이가 지났다는 걸 직감했다. 아들은 조금씩 조금씩 자라지 않고 손톱처럼 한순간에 커버렸다.

생전 처음 살아있는 것을 차로 들이받고도 이상하리만치 손쉽게 평정을 회복한 것은 꿩이 차 바닥을 훑으며 지나는 소리가 불러낸 더 큰 예후 때문이었다. 소리도 낯선 길 위에서 차에 치인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측이 꿩에 대한 애도를 가로챘을 것이다.

벌써 다섯 번째의 헛걸음이었다.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몇 번이나 마을을 샅샅이 뒤지고 들판을 헤집었지만 소리를 찾을 수 없었다. 허탕을 치고 돌아온 날, 아들은 쉬 잠들지 못했다. 겨우 잠든 아들의 얼굴을 만지면 가시덤불에 긁힌 자국과 식은땀이 만져졌다.

소리는 아들이 애지중지하던 보더콜리종의 개였다. 소백산과 태백산이 만나는 깊은 산속 마을에서 아들은 소리를 잃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소리가 사라진 것이다.

그 날 도계탐사대(道界探査隊)는 경북 영주시 부석면에서 출발해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으로 이어지는 고치재 너머의 산촌을 답사했다. 며칠 전 내린 폭우로 소백산의 임도에는 군데군데 흙더미가 내려앉아 있었다. 탐사대는 산 기슭에 소형 버스를 두고 걸어 고치재를 넘었다. 아직도 계곡엔 흙탕물이 우렁차게 흘러내렸다.

탐사대는 역사연구소 연구원, 백두대간종주회원, 자연해설사, 산림공무원, 작가, 대학원생, 기자 등 전문조사원 위주로 꾸려졌다. 나 외에도 별다른 전문성이 없는 대원으로 퇴직 교원이나 자영업자가 더러 있었지만 내가 탐사대에 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박물관 전시업체 대표라는 직함 덕분이었다.

"해발 760m의 고치재는 백두대간의 주능선으로 태백산이 끝나고 소백산이 시작되는 고개입니다. 때문에 여기 고갯마루에 서 있는 산신각에는 태백산신과 소백산신이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바로 단종과 금성대군이죠."

국사서낭당이라는 당집 앞에서 강의보다는 사단법인 역사연구소 일에 더 열심인 고상훈 대장이 고치재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혁명이 실패로 끝났을 때 분 피바람 때문일까요? 이 너머 가을 나무가 뿜어내는 붉은색은 남다른 느낌을 자아냅니다."

고치재는 영주 순흥도호부 부사와 힘을 합쳐 영월에 유배된 단종의 복위를 꿈꿨던 금성대군의 좌절이 서려 있는 고개라는 설명이었다. 순흥과 영월을 오가는 가장 빠른 길목이었던 고치재에서 단종과 금성대군의 밀사들이 바라보았을 한양은 분명 세상의 안쪽이었겠지만 지금은 충북과 경북, 강원의 맥박이 가장 희미하게 뛰는 삼도접경의 오지일 뿐 안과 밖의 경계는 희미해져 아무 의미도 없어 보였다.

"자, 그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 봅시다."고 대장의 말이 사극 속 밀사의 대사처럼 들려 나는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고치재 너머 첫 마을인 마주바우에 도착하자마자 탐사대는 분과별로 나뉘어 마을을 돌았다. 생태 전문 잡지에 탐사결과를 연재하는 사진기자가 분과를 오가며 가장 바쁘게 움직였다. 1964년 문을 열어 1991년까지 27년간 고작 14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문을 닫은 옥대국민학교 마락분교라든가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된 바위를 사진에 담던 사진기자는 아들이 소리와 뛰노는 장면을 찍어주기도 했다.

길 옆 구판장에는 한 축 들일을 마친 노인들이 초여름 햇살을 피하고 있었다. 전래이야기분과에 속한 나는 더 수소문할 것도 없이 구판장에 눌러앉았다. 방언과 생활사 연구자들이 주축인 전래이야기분과는 장을 보러 다닌 옛길과 전쟁시절 좌우익의 피해사례, 한말 산 속으로 숨어든 동학의 마지막 생존자 같은 이야기를 찾는 데 몰두했다. 이야기를 듣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생년월일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는 노인들의 동문서답으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일정' 때였는지 미군정 때였는지, 전쟁통이었는지, '박통' 때였는지를 구분하지 못한 채 풀어 놓는 노인들의 이야기는 녹취돼 홈페이지로 공유되었다.

마을 규모와 산촌인구의 연령 분포, 촌락과 개별 가옥의 구조를 조사하는 일은 마을역사분과에서 맡았고, 하천 지류와 동식물 분포는 마을생태분과 소관이었다. 분과와 상관없이 나는 틈나는 대로 희귀한 농기구나 사라져가는 물건들을 살폈지만 향토박물관 소장품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마을 뒤편에 쌓인 쓰레기더미가 차라리 볼 만했다. 농약 포장지부터 술병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쌓인 조개무덤을 파헤치면 현대농경역사박물관 하나가 채워질 것이었다.

전래이야기분과는 말문을 튼다는 핑계로 걸핏하면 술자리를 벌였다. 12명의 자식을 낳아 모두 외지로 떠나 보내고 홀로 사는 할머니는 술기운이 돌자 자식들이 보청기를 해줘 전보다 사람 소리를 더 잘 알아듣는다는 자랑을 되풀이했다. 소백산을 이잡듯 했다는 심마니 노인도 살아있다면 서른을 넘겼을 자식이 하나 있는데 스무해 가까이 소식이 없다며 진작에 불콰해진 눈가를 비볐다.

밖에 나와보니 아들은 소리에게 편지를 배달시키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달려, 소리!"소리는 등산용 수건을 물고 순식간에 밭두렁을 건너뛰어 공지선 너머로 사라졌다 돌아왔다. 탁트인 벌판을 달릴 때, '어허, 저놈……' 하며 소리가 측대보로 뛴다는 것을 귀띔해준 이는 자연해설사였다. 적이 놀란 표정이었다.

"여우나 늑대, 들소, 호랑이, 낙타, 코끼리할 것 없이 모든 야생동물의 걸음은 측대보인 반면 대각보로 걷는 건 사람을 포함해 길들여진 고양이나 개, 말, 소 정도지요."

자연해설사는 오른쪽 앞다리와 오른쪽 뒷다리가, 왼쪽 앞다리와 왼쪽 뒷다리가 함께 움직이는 측대보로 뛰는 개는 여간해 보기 힘들다며 측대보는 야생의 걸음이요, 대각보는 문명의 걸음인데 자신도 듣긴 했어도 보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혀를 내두르자 아들은 신이 났다.

"이번엔 무슨 편지니?""그건 소리가 알겠죠. 편지를 보내면 전할 곳은 소리가 알아서 찾아요."아들은 편지의 내용을 소리의 영특함에 슬쩍 감추며 내 질문을 피해갔다. 어느날 책가방에 삐죽 나와 있던 일기에는 '나는 가끔 소리를 버린 주인에게, 이젠 괜찮아요, 소리는 여기서 잘 지내요라는 편지를 보낸다'고 적혀 있었다. 난 그 글을 '엄마, 괜찮아요, 난 잘 지내요'라고 읽었다.

"너무 멀리 가지 마라!"점심을 먹고 탐사대는 도화골로 향했다. 마주바우에서 오리쯤 산길을 오르면 팔십 노인 내외가 사는 집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내처 나선 길이었다. 아들에겐 험한 길이니 소리를 데리고 마을 주변에서 놀고 있으라고 일렀다.

"뛰어, 소리!"아들이 소리와 함께 밭두렁을 달려갔다. 보기에도 사람 살기에 갑갑한 골짜기인 데다 사람 하나 겨우 다닐 정도인 산길을 등짝이 흥건해질 만큼 올라서야 집 한 채가 나타났다.

"늙어보니 말여, 사람은 다 똑같은 거여. 왜 이런 데 사냐구? 다툴 일이 읍써. 돈이다 멩예다 하는데 생명이 젤 중한 거여……."

이가 빠지듯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이사를 가도록 팔십 평생을 살아온 노인은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몇 년째 병석에 누워 있었다. 몸은 문지방조차 넘어서지 못했지만 다짜고짜 풀어놓은 그의 말에 일행은 숨을 죽였다. 세상살이를 단 세 마디로 줄여준 강건한 두괄식의 어법이 벼락처럼 도시인들의 머리를 두드린 탓이었다. 노인이 문고리를 잡고 말하는 동안 할머니는 부엌문 옆에 신하처럼 꼼짝없이 서 있었다. 시대착오적인 정경 탓에 무대세트 같은 산촌의 집이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괜히 도화골이 아니었다.

산에서 내려왔을 때 이미 소리는 사라진 뒤였다. 소리를 찾아 마을과 들판을 헤맨 아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가엔 땀인지 눈물인지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아들이 애원했다.

"아빠, 소리 좀 찾아봐요. 소리가 안 보여요."2.퇴근시간의 교통체증을 뚫고 사무실에 도착할 무렵에야 가슴에 내려앉았던 묵직한 통증이 겨우 가라앉았다.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불은 미간이 잔뜩 내려앉은 직원들의 눈에도 켜져 있었다.

"아이소매트릭이 다 됐는데 지금 아이템을 바꾸면 언제 렌더링해 마감칩니까? 전시 위계하고도 안 맞고요. 알잖아요. 지금 우리 캐에퍼에 슬림하게 가기도 벅차다는 거……."

설계팀장이 기획팀장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나는 그의 불만을 십분 이해했지만 여전히 영어를 반 이상 섞어 쓰는 특유의 어법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영어가 전문성의 헐거운 틈새를 메워주는 유용한 도구라고 여기는 느낌을 주었다. 내가 소리를 찾아 헤매는 것을 알고 있는 설계팀장의 말엔 때가 어느 때인데 그 따위 개에 매달리느냐는 적의도 어느 정도 억눌려 있었다.

십년 전, IMF의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봄날, 다니던 광고기획사를 그만두고 전시업계에 뛰어든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문화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전시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때에도 직원 급여를 미룬 적이 없다. 그러나 1년 전 아내가 떠난 뒤 나는 회사가 기울고 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휘청거렸다. 한 번 기울기 시작한 사세는 걷잡을 수 없었다. 나보다 먼저 사태를 파악한 서넛이 회사를 옮긴 다음에도 여덟 명을 감원해야 했다. 반년 만에 직원 수도 반토막이 났다. 영어 공교육 강화에 따라 쏟아져나온 영어체험교실 같은 소규모 사업까지 손을 댔지만 수지타산 맞추기엔 턱도 없었다. 하청업체는 밀린 대금을 달라고 악다구니를 썼고 자재상은 현금을 안 주면 자재를 못 내준다고 버텼다. 감리는 현장에서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아우성이었다. 회계과장이 책임을 진다며 사표를 내던 날, 될대로 되란 심정으로 지금의 설계팀장을 스카우트했다. 회사 수익의 반을 배당한다는 조건이었다. 실무에 밝고 인맥이 두텁기로 업계에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

설계팀장은 빠르게 회사를 장악했다. 자투리 일을 잘라내고 중대형 설계 경기나 공모를 택했다. 실패하면 다시 못 일어날 도박이었지만 설계팀장의 패는 나쁘지 않았다. 석달 만에 다섯 번의 공모에서 두 건의 중급 규모 제작설치 사업을 따냈다. 회사는 겨우 핏기가 돌았지만 몇 남지 않은 직원들은 진이 빠질 대로 빠져 있었다. 설계팀장은 더 큰 고기를 겨냥했다. 실학역사관 건립사업 건이었다. 시장(市長)의 문화분야 공약이긴 했지만 민생현안에 묻혀 있다가 정권의 실용노선에 편승해 서둘러 추진되는 사업이었다. 설계팀장은 낮에는 대학의 해당분야 교수를 찾아 자문을 구하고 밤에는 공무원들을 만나 심사위원의 인력풀 범위를 좁혀 나갔다. 그는 눈 먼 고기를 얼추 잡았다고 확신했다.

기획팀장은 말수가 적었다. 기획팀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몇 개의 단어를 팀원들은 암호를 해독하듯 쪼개 제안서를 만들었다. '나무'에서 지상 3층 규모의 교육박물관 전시체계가 나왔다. 나무의 생장과정과 교육발달사를 접목하는 식이었다. '3'에서 불교전문전시관이, '탈출'에서 산림생태관이, '유혹'에서 고생대박물관이 생겨났다. 문제는 이번 공모에 내놓은 '개'라는 화두였다. 팀원들에게 박지원의 글 한 편과 함께 던져주며 덧붙인 게 '운종가의 개, 오'였다. 며칠 전 2차 기획회의 보고서 맨끝에 첨부된 그 글을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개들이 마구 짖어댔는데, 동쪽에서 오(獒)가 한 마리 나타났다. 흰 빛깔에 비썩 말랐는데 빙 둘러서서 쓰다듬어 주자 좋아라 꼬리를 흔들며 머리를 숙인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언젠가 들은 말인데, 오는 몽고산으로 그 크기가 말만 하고 몹시 사나워 길들이기가 어렵다고 한다. …… 이상한 것을 봐도 짖지 않지만 한 번 화가 나면 으르렁거리며 사납게 구는 바 우리말로는 호백(胡白)이라고 부른다. …… 모두 고기를 좋아하지만 비록 몹시 굶주려도 깨끗하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며 심부름을 시키면 사람 마음을 잘 알아차린다. 그래서 목에 편지를 걸어 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꼭 전하고 혹시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꼭 그 주인집의 물건을 물고 돌아와서 그것으로 갔다 온 징표를 삼는다고 한다. 매년 사신들을 따라 우리나라에 들어오지만 대부분 굶어 죽으며 항상 혼자 다니면서 다른 개와 어울리지 못한다.

"그 일화가 연암은 물론 실학, 나아가 당대의 정치관과 국제정세까지도 일별할 수 있는 상징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연암은 '오'라는 개를 빌려 자신의 처지와 세상사의 뒷모습을 폭로하고 있는 것인데 이 상상력의 힘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무엇이라는 말이죠. 신랄한 비판이 아닌 유쾌함으로 거짓을 뒤집는 힘, 그 유려함이 제가 말하는 핵심입니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새로움을 넘어서' 아닙니까?"

"그렇게 래디컬하게 갈 상황이 아닙니다. 관람자나 수요기관의 니즈에 어프로치하기에는 너무 앱스트랙트하잖아요. 에듀테인먼트로 가도 무거운 판에 그 개인지 오인지 하는 컨셉이 먹히겠냐구요."

"지금 시도할 만한 건 또 하나의 평이한 주석이 아니라 진지하고 색다른 해석입니다. 표현만 달리한 중언부언이 아니라 낯선 시선 같은……. 교과서의 입체화가 아니라 지평의 전환 같은……."

"저라고 루틴하게 가고 싶어 이럽니까? 그렇게 크리티컬하게 가면 랜덤한 심사위원들 컨센서스를 어떻게 끌어내냐구요."

설계팀장이 강조하듯 말 끝에 '심플, 노멀'이라고 덧붙였다. 그 말이 내겐 잘못 발화된 욕설처럼 들렸지만 기획팀장의 표정은 담담했다. 기획팀장과 설계팀장이 부딪친 곳은 연암관이었다. 설계팀장이 고집하는 연암관의 안은 연행도(燕行圖)를 디오라마로 재현해 열하일기의 대장정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임팩트가 중요합니다. 버추얼 비전, 홀로그램, 렌티큘러, 열감지 미러패널 같은 비주얼 매체가 내용을 압도하지 않으면 안 먹힙니다."

'무엇을'과 '왜'까지는 함께 걷다가 '어떻게'에서 헤어지는 전형적인 논쟁이었다. 둘 사이의 결론이 아니라 누군가의 판단으로 끝날 일이었다. 기획팀장의 추상적인 당위론과 설계팀장의 구체적인 현실론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은 간단했다.

"며칠째 밤샘하고 있는 직원들 컴플레인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설계 변경을 하면 리스크도 리스크지만 코스트가 감당이 안 됩니다. 그렇잖아도 어바웃 반 이상 아웃소싱한 마당에……."

설계팀장이 동의를 구하듯 내게 시선을 옮겼다. 직원들의 원성을 가까스로 막고 있다는 암시는 그렇다 해도 회사 재정에 대한 월권으로도 비쳐질 수 있는 말이었지만 반감은 일지 않았다. 그가 인맥과 로비력을 겸비해서라기보단 결론처럼 '다 잡아놓은 고기입니다. 그물망을 촘촘히 한다고 도망갈 것도 아니고 플랫하게 갑시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다 잡아놓은 고기'라는 말에 안도했다. 둘 사이의 논쟁만큼 그 사안이 전체 전시관 연출체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도 아니었다. 흔한 자존심 싸움처럼 보였다.

"실학파가 번개모임을 갖던 백탑이나 다산의 주교(舟橋), 화성성축 거중기, 홍대용이 혼천의를 만들던 농수각(籠水閣)도 디오라마로 연출했으니까 연암관도 연행도 디오라마 쪽으로 갑시다. 기획전시실에 배치된 다산의 다신계(茶信契)나 윤회매(輪回梅)는 체험실로 돌리고, 운종가의 개는 빼죠. 가능한 심플하고 노멀하게!"

직원들은 밤을 새울 태세였다. 나는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다. 직원들이 먹고 내놓은 자장면 그릇에서 중국음식 특유의 기름 냄새가 훅 끼쳐왔다. 점심과 저녁을 거른 공복이었다.

3.도우미 아주머니가 오는 날이었는지 집안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아들은 침대 위에서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젖을 놓치지 않으려고, 젖니도 다 갈고 난 열한 살 잠에 엄마 품을 또 붙드는 모양이었다. 기척에 아들이 웅얼거렸다. 웅크린 채 두 손을 입가에 대고 있는 아들은 어쩌면 손나팔로 소리를 부르거나 엄마와 별을 헤고 있는지도 몰랐다.

소리를 잃어버린 마주바우는 초행이 아니었다. 몇 년 전 가족이 하룻밤을 자며 쏟아질 듯 총총한 별들을 올려다본 곳이었다.

"저기, 물바가지처럼 생긴 별 말이야. 저게 북두칠성인데 한 번 세어볼까?""하나 둘 셋, 넷,…… 열둘, 열셋, 열넷……."북두칠성을 제대로 찾지 못한 아들이 한정없이 별을 헤던 때였으니 벌써 사오 년 전이었다. 더 설명을 하려던 아내마저 깔깔 웃었고 그녀의 웃음소리가 밤하늘에 맑게 퍼졌다.

"생각나니? 이곳?"소리와 함께 마을 주변을 뛰어다니느라 벌써 등짝이 젖어버린 아들을 쉬게 할 겸 아들의 손을 잡고 마을을 거닐 때였다.

"그럼요, 그 때 저 집에서 아궁이에 불도 피우고 그랬잖아요."엄마와 북두칠성을 세던 것도 기억나는지를 묻진 못했다.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다닌 곳을 다시 찾게 될 때마다 목울대가 해빙기의 축대만큼 불안했고 아들의 깊은 곳 어디쯤도 엄마의 부재로 인해 흔들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곤 했다.

엄마가 떠나고 소리가 왔다고 아들은 믿었다. 소리가 와서 비어 있던 엄마의 자리를 메웠다. 어느날 학교 운동장에 나타난 개에게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몇 번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개는 유독 아들에게만 꼬리를 흔들며 따랐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아들도 학원을 가기 위해 집으로 돌아올 때 개는 현관까지 따라왔다. 아들이 학원버스를 기다리는 아파트 상가 앞까지 따라왔고 세 시간 후 아들이 다시 내릴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외로움, 그리움 같은 말의 '-움' 속에는 시간의 퇴적층보다 질긴 생명이 깃들어 있어서 두꺼운 사전 속에 납작한 명사로 눌려 있다가도 어느 순간 색깔이나 냄새, 파동으로 생생하게 살아나곤 했다. 개는 아들에게서 그렇게 생겨난 어떤 '-움'의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퇴근했을 때 현관 앞에 검은 털과 흰 털이 섞인 개가 있었다. 개는 이튿날에도 아파트 현관을 떠나지 않았다. 굶길 수는 없어 밥을 말아 주면 한 그릇을 금세 해치웠다. 개의 사진을 찍어 잃어버린 개를 보호하고 있다는 전단을 집 주변에 붙였지만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들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옷을 갈아 입다가 아내의 옷장을 열었다. 아내의 겨울 외투가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아내의 옷가지며 화장대를 아직도 치우지 않았냐는 사람들의 핀잔에 나는 영락없는 박물관맨이라 그렇다고 둘러대곤 했다. 언제든 누구에게든 낡음과 늙음, 사라짐과 죽음은 천천히 왔다. 갑작스럽게 생겨나거나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 나는 불현듯 다가오는 운명 같은 것들에 치를 떨었다. 박물관이라는 거대한 죽음의 창고에서 나는 평온함을 느꼈다. 그곳의 죽음은 오래되어서 인간적 애증도 정치적 다툼도 국가적 영욕도 고즈넉했다.

시장기에 비해 식욕은 일지 않았다. 늦은 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유리창에 비치는 것이 두려웠다. 캔맥주를 따서 베란다에 앉았다. 소리가 앉아 먼 곳을 응시하던 곳이었다. 수직으로 고립된 전대미문의 공중가옥 아래로 붉은 불빛의 무리들이 양떼처럼 한 곳으로 몰려가고 몰려왔다. 소리에게도 그 풍경은 헛것들의 환영이었을 것이다. 소리는 위태롭게 몰려가는 그 불빛들을 막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 짖어봐도 소용없다는 듯이 그저 먼 곳을 응시하곤 했다.

소리가 짖지 않는다는 것을 안 것은 소리를 집에 들이고 몇 달이 지나서였다.수의학과를 나와 지방공항 검역소에서 10년을 일하다 돈도 체질도 안 맞는다는 이유로 동물병원을 개원한 친구가 아니었으면 소리가 어떤 종이었는지도 몰랐을 판이었다. '보더 콜리' 종으로 뼈대있는 개라며 연신 털을 쓰다듬던 친구는 소리의 입을 벌려 속을 들여다보았다.

"허어, 성대수술을 해버렸군."나는 소리가 짖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무심함이 아니라 성대수술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이상할 건 없어. 원체 에너지가 넘치는 종자라 집안에만 갖혀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하루종일 짖어대는 놈들도 있으니까. 주인이 나쁘다기보단 이웃에게 염치가 없었겠지."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때 아들이 지어낸 이름이 소리였다. 짖을 수 없는 개에게 소리를 선물한다는 뜻이었다.

캔맥주가 비워질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랜 가뭄 끝이었다. 빗줄기가 굵어졌다."소리도 비를 맞을까요?"빗소리 때문이었는지 깨어난 아들이 베란다로 나왔다. 비를 맞으면 애처로움이 클 것이고 맞지 못하면 필시 죽은 몸이었기에 아들 마음이 아프긴 매한가지일 터였다.

"글쎄…….""춥겠죠?""사람만큼은 아닐 거야. 지난 겨울도 베란다에서 났잖아?""밤비를 맞으면 소리도 추울 거예요.""동굴같이 안전한 곳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 거야."소리는 숱이 많고 속털이 깊어 털 엉킴을 막기 위해 매일 빗질을 해야 했다. 아들이 소리의 털을 쓸어내릴 때처럼 난 아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아들은 말을 끊었다. 수긍보다 부정의 표시였다. 아들이 부풀려진 희망이나 맥락없는 결론을 거부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가자, 소리!'아들이 먼저 달리고 소리가 펄떡펄떡 뛰며 뒤따르던 그 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4.어릴 적 옆집 영미네 집에 '수영빤스'라 불리던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요즘에야 널린 게 애완견이지만, 여름 보신용으로 기르던 잡견이 고작이던 고향에선 흔치 않은 동물이었다. 흔치 않으면 대개 귀하게 마련이건만 애완의 개념이 없던 시골 사람들에게 몸집이 작고 앙증맞은 수영빤스는 볼품도 없고 먹잘 것도 없는 천덕꾸러기에 불과했다. 어른들은 툭툭하게 살이 오른 누렁이가 돼야 개 취급을 해줬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귀가 쫑긋한 진돗개 잡종쯤 돼야 텃세라도 부릴 수 있었다. 형들은 쉐퍼드종을 선망했지만 시골구석에서는 만나기 힘든 개였다. 그러니 체구가 발발이만도 못한 데다 던진 막대기도 물어올 줄 모르고 게을러터진 수영빤스는 어디 써먹을 구석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털이 홀랑 깎인 듯 앙상한 알몸으로 불알만 도드라지게 나다니는 꼴이 보통 볼썽사나운 게 아니었는데 누가 이름 붙였는지 수영빤스라는 별명은 그런 민망함을 가릴 요량이었던 셈이다.

일러스트 | 이강훈그 개는 애초에 영미네 부자 친척집에서 곱게 자란 몸으로 갑자기 쫄딱 망한 주인 팔자를 따라 얼결에 그 궁벽한 곳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집집이 누렁이 한 마리쯤은 기를 때에도 개 한 마리 먹일 처지가 안 되게 가난했던 영미 아버지는 그 놈을 잘 키워 자신도 개를 키울 형편이 된다는 걸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매양 얻어 먹기만 하는 게 염치없어 여름보약으로 개울가 벼랑에 매달아 그슬러 먹곤 하던 개 도르리 턱을 내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조석으로 찬밥이나마 국에 말아 정성껏 먹이며 몇 달을 기다려 봐도 수영빤스의 몸집은 그대로였다. 병이 있나 눈알을 뒤집어 봤지만 별다른 증세를 찾지 못한 채 일 년이 다 되도록 크기는커녕 점점 피골이 맞닿아져가자 영미 아버지도 그만 식용이 아닌 애완용이라는 그 개의 정체를 알아버린 것이다. 수영빤스의 수난은 그 때부터 시작된다.

영미 아버지는 걸핏하면 수영빤스를 걷어차 버렸고 영미 어머니도 자싯물을 버리러 나올 때마다 마당에서 빌빌대는 수영빤스만 보면 '어이구, 어디가서 뒈져버리든지……' 하며 자싯물을 냅다 끼얹었다. 집에서 천대받는 개는 아이들에게도 노리갯감이었다. 수영빤스만 나타나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기르는 개를 시켜 물어 뜯게 만들거나 슬금슬금 오줌을 싸며 도망치는 수영빤스에게 돌을 던지곤 했다. 태생이 입이 짧고 우아한 견종인지라 원체 먹질 않는 데다 집 안팎의 구박을 다 뒤집어쓰고 다니다보니 수영빤스의 행색은 말이 아니게 변해갔다. 짓무른 눈두덩이 밑으로는 눈곱이 끼었고 얼굴 주변에만 텁수룩하게 난 털에는 재와 밥풀이 던적스럽게 엉겨붙었다. 수영빤스는 언제나 꼬리를 엉덩이 밑으로 숨긴 채 이곳저곳 눈치를 보느라 휘둥그레진 눈망울로 사람들을 슬슬 피해다녔는데 멀리서 봐도 털이 짧아 거죽밖에 없는 몸뚱이가 사정없이 떨리곤 했다.

수영빤스가 겨우 숨을 돌릴 수 있는 것은 밤뿐이었다. 더이상 아무도 성가시게 굴지 않는 겨울 긴긴 밤, 수영빤스는 따뜻한 아궁이에 들어가 서러운 신세를 달랬다. 하지만 이마저도 새벽마다 들려오는 영미 어머니의 고함에 내빼지 않으면 후려치는 부지깽이 맛을 봐야 했다.

"저런 발광할 노무 개새끼, 부뚜막이 어디라고 올라와!"잠이 덜 깬 채 수챗구멍에 볼 일을 보고 있던 이른 새벽, 어김없이 그런 소리가 옆집 영미네 부엌에서 들려왔고 봉당을 굴러 떨어지듯 내려와 줄행랑치는 수영빤스가 보였다. 수영빤스의 고된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이장 일을 보던 아버지 덕에 집으로 제법 많은 우편물이 배달되었다. 계도신문과 새농민, 종묘 관련 책자를 빼면 대부분이 영농 신청서나 가구조사서 같은 서류들이었는데 모두가 누르스름한 행정봉투에 담겨 있었다. 어머니의 똑딱이 지갑을 부풀려 놓은 것처럼 생긴 우편가방을 자전거 앞에 싣고 우체부는 언제나 점심이 되기 전에 도착했다. 나는 배달된 편지봉투에 내 이름을 쓰고 그걸 영미에게 전했다. 그 편지를 받는 영미의 미소는 눈부셨고 난 가슴 한 켠이 뿌듯해졌다. 편지는 다음날 영미네 변소에 적당한 크기로 잘린 채 걸려졌지만 나의 편지질은 계속됐다.

"수영빤스가 죽었다.""뭐? 어째서?""몰라. 아부지가 그러는데 고쿠락에서 자다가 타 죽었댄다."며칠째 우체부가 오지 않아 영미에게 줄 편지가 없어 우울했던 어느 날이었다. 영미의 속눈썹에 아슬아슬하게 걸렸던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 바람에 난 수영빤스가 이젠 더이상 춥지는 않겠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한여름에도 부들부들 떠는 게 털이 없기 때문이라고 믿었던 나는 털이라곤 얼굴에 몇 가닥 붙어있는 게 전부였던 수영빤스에게 불이 붙었다는 것이 영 믿겨지지 않았다. 나는 부리나케 우리 집 삽짝 기둥 못에 걸려 있는 편지를 가져다 영미에게 전했다. 불길한 소식을 집안에 들이면 안 된다는 말과 저걸 걸어 놔야 부정이 피해간다는 아버지의 말에서 느껴지는 으스스한 이율배반으로 오랫동안 걸려 있던 편지였다. 편지를 받고서도 영미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커서야 그 편지가 부음이란 걸 알게 됐지만 오랫동안 혹, 그 일이 수영빤스의 죽음과 어떤 연관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이 들곤 했다.

5.비는 밤새 내리다가 새벽에야 그쳤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 햇살이 뜨거웠다. 정오 무렵, 제안서의 마지막 출력과 교정으로 정신이 없을 때 심마니 노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개가 나타났소. 헌데…… 여튼, 오시겄소?"확률상 가장 그럴 듯해 보인 것은 덫에 걸렸을 가능성이었다. 짖지 못하니 덫에 걸렸어도 찾기가 수월치 않을 것이란 짐작에 일일이 우거진 잡목과 수풀을 헤집으며 인근을 샅샅이 뒤졌지만 올무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길을 잃거나 산짐승에게 당했을 리는 없었다. 누군가 개를 숨겼을 가능성도 있었다. 차라리 그렇다면 마음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가장 머리 좋은 개로 주저없이 보더 콜리를 꼽듯 소리는 영리한 개였다. 낯선 곳에 도착하는 즉시 예민한 후각과 날렵한 몸짓으로 2㎞ 안팎의 영토를 확보한 다음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적과 아군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양몰이로 유명한 종의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던 소리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버릇이 있었다. 짖지 못하는 결점을 목측으로 보충하는 것처럼 보였다. 최소한 시간과 임무를 잊고 무엇엔가 홀려 돌아다닐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점에서 소리가 사라질 이유는 없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도 그 개는 산신이 데려갔는갑소."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틈만 나면 마을을 찾아가 헤매는 꼴이 안쓰러웠던지 어느날 심마니 노인이 들려준 말이었다.

"내 살매 두 번을 보았소. 산에 사는 개 말이요. 영물입지요."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 속에서 만난 개를 따라가 산삼을 캤다는 이야기였다. 돌을 던져도 달아나지 않고 심마니 주위를 돌며 자꾸 그의 바짓가랑이를 물어 끄는 것이 꼭 어디론가 데려가려는 것 같아 능선을 몇 개 넘도록 따라갔더니 그곳이 산삼밭이었다는 말이었다. 젊어 한 번, 십 년 전쯤 한 번 개를 만나 횡재를 했다는 노인은 그 개들을 소백산신과 태백산신이 데리고 있는 개라고 믿고 있었다.

"행여 산에라도 가면 또 만나려나 몰라도 이젠 근력이 없으니……."노인이 위로 삼아 해준 이야기다 싶었는지 아들마저 믿지 않는 눈치였다.개는 간밤 내린 비로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 마을 앞 개울에서 발견됐다. 복개된 농수로가 끝나는 지점이었다. 뼈와 가죽만 남은 것으로 보아 실종된 후 바로 죽은 것 같았다. 털의 생김만 봐도 한 번에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리의 주검을 확인하는 순간 아내의 첫 기일이 내일이라는 생각이 새삼 떠올랐다. 엊저녁 차로 꿩을 들이받았을 때처럼 다시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내려앉았다. 로드킬의 예감은 결국 기우였지만 통증은 그 기우 때문이 아니었다.

영미를 다시 만난 것은 마을이 수몰되고 뿔뿔이 흩어졌던 동네 사람들이 이십년 만에 모인 자리에서였다. 말이 없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체구였던 영미는 여전히 말이 적었다. 영미는 수영빤스를 기억하진 못했지만 내가 전해준 편지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편지가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도 몰라."또렷한 눈매, 무엇인가 확신을 담고 있던 입술, 사고의 깊이를 짐작케 하는 언어의 선택과 상대를 집중하게 만들던 신중한 말투. 진지한 미간의 근육과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피어나는 웃음 같은 것들이 영미를 만나고 돌아온 이후 떠나지 않았다. 그런 아름다움이 성장하며 덧입혀진 것인지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것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여전히 간직하고 있던 영미의 눈부신 미소 속에 실연과 절망으로 굳어진 내 몇 개의 옹이를 떼어 버리고 싶었다. 혹은 미련함과 어리석음으로 마감되던 젊음의 끝이 그 미소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당신은 내게, 오래도록 헤매었지만 도달하지 못했던 푸르스름한 이데아의 그림자, 도달하는 순간 보이지 않거나 더 멀리 달아난 무지개였는지도 모른다고 편지에 썼다. 추억이 현재에 대한 미망이라 할 때 향수는 사랑의 좋은 질료일 것이고 그 질료를 태워 당신을 향해 가고 싶다고도 썼다.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던 마지막 세대의 연인이었고 그 이듬해 결혼했다. 강원도 오지의 한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영미는 그렇게 나의 아내가 되었다. 불과 10년 만에, 밤을 새워 달리느라 졸음을 참지 못한 화물트럭 운전수의 부주의가 다시 아내를 데려가 버렸지만.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작년 아침 출근길이었다.

아들과 함께 뛰어가던 눈부신 공지선 위의 들판에 소리를 묻었다. 베개 높이의 봉분 앞에서 노인들이 혀를 찼다.

6."이제 오십니까?"기획팀장만 남아 있을 뿐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기획팀장. 저녁은 먹었어?""아직요. 이제 막 들어 가려던 참이었습니다."미처 끄지 못하고 퇴근한 직원들의 모니터엔 수십 개의 폴더가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었다. 분주하고 다급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몰려갔을 오후가 그려졌다. 야근으로 며칠 전 아내와의 첫 결혼기념일을 놓친 이 대리, 남자친구의 기다림을 내색하지 않고 디자인을 마무리한 윤 실장, 수십 장의 도면과 투시도를 그려낸 정 과장, 공학적 시스템을 완성해준 조 과장, 새벽에 먹을것을 사들고 찾아온 박 건축사의 얼굴이 지나갔다. 모든 작업을 지휘한 설계팀장이 직원들을 데리고 회식을 하러 떠난 뒤였다. 기획팀장이 깨끗하게 제본된 최종 제안서와 도판, 회계장부를 가져왔다.

"제안서는 다섯 개 업체가 접수했습니다. 설계팀장이 뒤쪽을 손보느라 필요한 돈을 좀 뺐습니다."

상당한 액수의 영업비가 빠져나간 장부엔 한 달을 버티기 어려운 금액이 남아 있었다. 회계과장이 떠나고 회계까지 떠맡은 기획팀장은 이번 공모가 사운이 걸린 중요한 일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쉬고 싶습니다."기획팀장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쌍꺼풀은 없었지만 유순한 눈빛이 아내를 닮아 있었다. 어금니에 힘을 주었다. 치료 시기를 놓친 어금니가 욱신거렸다. 무엇인가 질긴 것을 씹고 싶었다. 방으로 들어와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리를 잘 묻어 주었다."아들은 대답하지 않았다."오늘, 좀 늦는다. 괜찮지?""예."아들의 목소리는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잡음 같았다.소주나 한 잔 하자며 기획팀장을 끌고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평소보다 종로가 붐비고 있었다. 종각에서 탑골공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젠 제가 억지스러웠죠? 운종가의 개라니요. 불온하게스리."기획팀장이 허허롭게 웃었다. 운종가의 개와 불온이 잘 연결되지 않아 내 웃음은 조금 더 어색했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연암 일파가 술에 취해 오와 함께 노닐던 곳이 어디였을까 생각했어요."

기획팀장이 눈길을 던지고 있는 길가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차량은 뒤엉켜 움직이지 않았고 경찰병력이 중대 단위로 도열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피켓과 현수막에는 '미디어법 원천무효!', '방송장악 웬말이냐?'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미디어법이 통과되면서 이를 규탄하는 시민들이 몰려나온 모양이었다.

"미디어법이 뭡니까? 시장경제의 사료로 살이 오른 정권의 개를 대량 복제하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개들이 너무 이상하게 짖기 때문에 새로운 견종을 보급해서 개 유통을 통한 일자리도 창출하고, 국민들에게 다양한 개소리를 들려줘서 균형감각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정말 국민을 뭘로 보는 겁니까?"

두건을 두른 사람이 마이크에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들이 와- 하고 웃었다."현 정권도 대한민국의 견종에 대해 관심이 많은가 봐요."시위대를 바라보며 기획팀장이 들으라는지 말라는지 모를 소리로 중얼거렸다. 연일 미디어법 통과의 불법성과 방송장악 음모를 성토하는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연암의 글 말이에요. 그 일화 끝에 그런 장면이 있잖아요. 이덕무가 흰오랑캐라는 뜻의 호백을 비틀어 호쾌한 으뜸이라는 뜻으로 호를 지어주고 오가 사라진 쪽을 향해 '호백! 호백! 호백!' 하고 부르는 장면. 요즘 그게 꼭 나를 부르는 것 같더라니까요."

회사를 떠날 결심 때문인지, 개가 주제가 되어서인지 기획팀장은 짐짓 쾌활함을 가장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처남. 내일, 오는 거지? 누나 기일이잖아."기획팀장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회사에는 기획팀장이 처남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기획팀장에게 임시로 회계일을 맡겼을 때 설계팀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 웃음이 적은 기획팀장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내처럼 눈부신 미소였다.

"참, 그 개, 소린가요? 찾았습니까?"나는 대답 대신 기획팀장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피맛골 보신탕 어때? 여름이잖아."후텁지근한 골목길로 접어 들었을 때 몸 속 깊은 골짜기에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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