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자박물관서 발견한 '한글의 신통력'

2009. 12. 1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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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6개 전시실에 한자 역사 빼곡하지만타자기조차 못 만들어 허전한 미래상"한글은 정보화에 적합한 진행형 문자"

중국문자박물관에는 3600년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있었다. 중국문자, 즉 한자는 갑골문 이래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담지해온 미디어였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게 있었다. 타자기였다. 그게 세계 최초의 문자박물관으로 알려진 중국문자박물관의 실체였다.

지난 13일 한글문화관 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이상보) 이대로 운영위원장 등 관계자 일행은 벤치마킹을 위해 중국 허난성 안양시에 있는 중국문자박물관을 찾아갔다. 박물관이 안양시에 건립된 것은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이 이곳에서 출토됐기 때문. 갑골문의 자(字)에서 따온 대형 조형물을 시작으로 30여m의 긴 참도를 따라 이르게 되는 박물관은 원형의 해자를 두른 정사각형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사각형이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세계관을 땄다. 4개 층에는 전시실 6개를 두어, 기획전 전시실을 제외한 1~5전시실에다 한자의 모든 것을 빼곡하게 전시했다.

갑골 청동 도기 대나무 비단 종이 등 매질의 발전, 상형 지사 회의 형성 전주 가차 등 한자의 형성 과정, 전서 예서 행서 초서 등 서체의 변화, 창힐(한자) 채륜(종이) 필승(활자) 왕영민(한자 입력 방식) 등의 한자 관련 발명자들, 나무 구리 납 오프셋 등 인쇄술 변화, 간자체 제정, 최근 정보화에 따른 한자 전산화 등등. 유리창 속 '유물과 설명'이 반복되는 사이사이로 상황의 실물대 재현, 터치스크린 식 도우미 컴퓨터가 들어선 전형적인 전시방식을 취하고 있다.

특기할 것은 인쇄 방식의 발전 과정에 타자기가 없다는 것. 많게는 2만자, 적어도 4000여개의 한자를 자판에 심을 수 없었기 때문. 덩샤오핑이 생전에 문자 정보화 사업에 3000억위안을 책정한 것도 그런 연유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하지 않았다. 한자의 발음을 알파벳으로 쳐넣으면 많게는 동음자 30여개가 뜨는데 이 가운데서 원하는 글자를 골라 입력을 하는 방식이다. 박물관 체험실에서 중국 어린이들은 자판을 이용해 느릿느릿 한자를 입력하고 있었고 터치스크린 식 컴퓨터로 서체, 획순, 붓글씨 등을 익히고 있었다.

한재준 교수(서울여대 디자인학과)는 "문자박물관은 한자에 반영된 중국의 화려한 과거를 반영할 뿐, 한자의 현재와 미래가 꽉 막혀 있음을 보여준다"며 "인간-기계의 인터페이스를 기본으로 하는 정보화 사회에서 최소주의 원칙 아래 만들어진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글은 현재진행형 문자"라며 "코드, 자법, 각종 입력 자판 등의 통일을 위한 제2의 집현전 사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전날 베이징~안성 차중에서 벌어진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한글문화관(가칭) 건립 계획이 공개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김준 문화정책국 사무관은 "352억원의 예산을 들여 2012년께 용산 국립박물관 동편 3000여평 부지에 들어서게 된다"고 밝혔다. 계획을 보면 내부는 세계문자역사실, 한글실 등 상설관과 세종대왕실·한글인물실·미래한글실 등의 특별전시관, 글꼴관·체험관 등의 부속실로 구성돼 있다. 김봉렬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는 "중국문자박물관의 구조가 한자의 상형성을 살렸다면 한글역사문화관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딴 한글의 추상성을 살려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국립국어원의 이현주 학예연구사도 "한글의 우수성과 아울러 다른 문자와 한글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전시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허난성 안양/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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