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잇는 사람들] 황칠공예 명인 구영국 씨

2009. 12. 1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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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보다 은은하게… '역사의 빛'을 칠하다

황금은 화려하지만 은은하지 못하다. 찬란한 광휘에 쉬 질려버린다. 금 위에 다시 황칠(黃漆)을 하는 연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황칠이 황금보다 더 값어치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황칠공예 명인 백사(白士) 구영국씨가 황칠에 몰두하고 있다. 통상 예닐곱 번 덧칠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가 근년 들어 붙들고 있는 한지로 만든 찻잔에는 20년에 걸쳐 600번 칠하는 게 목표다.

두릅나무과의 상록활엽교목인 황칠나무에 상처를 내면 나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유백색 액을 분비하는데, 바로 이 수액이 황칠이다. 처음에는 유백색이던 수액이 시간이 지나면 공기 중에서 서서히 황색으로 바뀐다. 진을 없애고 정제해낸 게 황칠이다. 서남해안 도서지역에 분포하는 황칠나무는 15년 이상 자라야 수액 체취가 가능하고, 채취량도 미미해 매우 귀하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조선 왕실에서조차 사용이 금지되고 중국 자금성의 천장이나 용상 등 황제의 명예를 높이는 데만 사용했다니 일반 백성들은 꿈도 꾸지 못할 '칠'이었다. 중국의 진상 요구 때문에 고통 받던 백성들이 황칠나무에 구멍을 뚫어 말라 죽게 하거나 몰래 도끼로 베어내기도 했다는 기록이 '목민심서'에 나올 정도다.

◇나무 탈에 황칠을 하는 구영국씨. 황칠은 도료뿐만 아니라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벽사의 기능도 수행했다.

황칠공예명인 구영국(50)씨는 오래전 맥이 끊긴 황칠에 20여년째 매진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경기 분당 수내동의 어둑한 자택 거실에서 기자 일행을 맞았다.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니 작업을 하다 만 그릇과 도자기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입구에는 MBC 드라마 '궁'을 찍을 때 소품으로 내놓았던 대형 황칠 도자기가 지키고 있다. 한 퀴즈 프로그램에 이 도자기의 가격을 맞히는 문제가 나왔다는데, 정답은 2억원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고민에 휩싸여 있었는데, 잠시 머리를 식히러 김제 금산사에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한 노스님이 신기하게도 제 고민을 간파하고 한지에 싼 조그만 호리병을 갖다 주었습니다. 바로 그게 황칠이었는데, 스님이 '이제야 이놈이 제 주인을 만났다'면서 '이 황칠을 평생 화두로 삼으라'고 말하더군요."

옻칠에다 나전칠기 작업과 전통공예 디자인까지 두루 섭렵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무언가 허전해 고민하던 그에게 200여년 전 맥이 끊긴 황칠공예라는 새로운 과업이 생긴 계기였다. 1985년의 그날 이후 구영국은 스스로 '눈물의 바다'라고 표현할 만큼 지난한 연구 과정을 지나왔다.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황칠이라는 이름뿐, 구체적인 기법이나 제작 과정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황칠은 도료용으로 쓰일 뿐 아니라 항암 효과가 있어 다양한 약용 기능으로도 각광받았고, 불가에서는 벽사(?邪)의 용도로도 쓰였다. 구영국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이제 황칠을 일상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골프채, 지갑, 식기, 지팡이, 만년필 등 생활용품으로까지 확대하는 중이다.

◇왼쪽부터 황칠 수액을 채취할 때 쓰는 도구와 다기, 인형, 찻잔 등 황칠을 한 생활 속 친근한 제품들.

그는 "전통공예의 본질은 예술이기 이전에 생활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된다"며 "당대에 가장 어울리는 일상의 예술이었을 때 후대에도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산 정약용은 황칠을 예찬하는 이런 시를 썼다.

"그대 아니 보았더냐 궁복(장보고의 호)산 가득한 황금빛 액/ 맑고 고와 반짝반짝 빛이 나네/ 껍질 벗겨 즙을 받기 옻칠 받듯 하네/ 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 잔 넘칠 정도/ 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없어지나니/ 잘 익은 치자나무 어찌 이와 견줄소냐"

글 조용호 선임기자, 사진 이제원 기자 jwlee@segye.com[Segye.com 인기뉴스] ◆ 한·미, 내년 '국방지침' 제정 추진◆ '골프 황제' 스캔들로 돈방석 앉는 '우즈의 여인들'◆ 재계 '오너 중심' 경영체제… 정기인사서 방점 찍어◆ 26세 '정본좌' 야동 2만6천편 업로드◆ "히딩크 북한 감독직 제의 거절"◆ "내가 권씨배후?" 방송인A, 'IRIS' 촬영장서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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