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주)남이섬 강우현 대표 - 상상으로 그려낸 문화예술 관광지

2009. 12. 1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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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캐릭터 만들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CEO로 변신했다. 경영서적을 탐독해 왔던 것도 아니고, 회사를 차려 이익을 냈던 경험도 없었다. 대신 자연을 캔버스 삼아 상상을 풀어냈다. 그곳이 바로 남이섬이다.

"전 원래 그림 그리고 디자인 하던 사람입니다. '상상'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란 뜻이죠. 상상, 역발상, 창조, 디자인…. 이런 말 뒤에 '경영'을 붙이니, 역발상 경영, 상상 경영이란 말들이 나오는 거예요."

(주)남이섬(www.namisum.com) CEO인 강우현 대표의 말이다. 1960년대 중반 '경춘관광개발주식회사'를 모태로 시작된 남이섬의 역사는 90년대까지만 해도 행락객들의 유원지와 대학생들의 MT촌이 고작이었다. '남이섬에 뭐 볼 게 있나'라고 묻는 사람은 대개 이때의 남이섬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다. IMF 금융위기 이후 2000년대 들어 제2의 창업을 선언한 남이섬은 향락지, 유원지가 아닌 문화와 예술, 환경이 어우러진 관광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개벽에 비유될 만한 변화의 중심에는 경영에는 통 관계가 없었던 이가 서 있다. 캐릭터·CI 디자이너, 그림 동화책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 환경운동 및 문화교류 활동가 등으로 불리는 강우현 대표다.

난 상상으로 먹고 사는 사람강 대표의 손을 거쳐 탄생한 국내 유수 기업과 지자체의 CI는 그를 디자이너로, 캐릭터와 CI 전문가로 인정받게 했다. 포스터나 잡지 등에 일러스트레이션 일을 하면서는 관련 국제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고, 국내와 국외의 여러 출판문화상, 한국디자이너대상, 심지어 프랑스 칸영화제 포스터 지명작가이기도 하다. 여러 미술대에서 강의를 하니 교수님이기도 하고 '좋은 아버지 되기'를 주도하기 위해 월간지를 펴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잘 나가던 디자이너였던 그가 남이섬에 정착한 건 2000년 12월 31일, 새 밀레니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아들과 함께 하루를 묵었는데, 아들놈은 심심하다며 다음 날 바로 떠났죠. 이튿날부터 닷새 동안 방 두 개에 거실 하나인 30평짜리 너른 별장에서 혼자 지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림 그리고, 글씨를 쓰는 일이었다. 버려진 나무에 장군상을 그리고 새긴 것이 지금의 100인 장군상이다. 7~8개월을 혼자 남이섬에 다니며 자연을 캔버스 삼아 강우현 식대로 섬을 꾸몄다. IMF로 문을 닫을 지경이었던 회사 관계자들과 주주들이 찾아와 사장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고, 월급을 100원만 받겠다고 했다. 대신 1년 동안 아무런 간섭이 없어야 하고, 경영실적이 두 배가 넘으면 모두 그가 갖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남이섬의 변화는 이내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먹고 마시는 유원지가 아니라, 문화와 자연이 있고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이 있는 관광지로 변신한 것이다. 취임 일성으로 뱉었던 '유원지에서 관광지로'라는 말이 현실이 됐다.

유원지에서 관광지로예술가가 대접받는 곳, 섬사람이 주인이 되는 곳, 문화와 고요가 섬의 주인인 곳. 남이섬의 지금이 있기까지 마냥 쉬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유원지를 관광지로 바꾸는 과정에는 섬 밖으로 나간 기존 상인들의 원성과 반발이 이어졌다. 깜깜한 강물에 떨어져 죽을 뻔한 일도 있었고, 각종 공갈 위협에다 이해 당사자들의 고발로 경찰과 검찰, 법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상상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살자는 그의 상상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강 대표는 상상의 원천을 묻는 질문에 단호한 어조로 '경험'을 꼽는다.

"목적 없는 경험이에요. 땅 파고, 나무 심고, 사람 만나고. 부자부터 가난뱅이까지. 다양한 경험은 상상의 단어장이 됩니다. 커튼이 답답해 유리커튼을 만들자. 버려진 소주병을 납작하게 만들어 붙이는 겁니다. 생각대로 하고,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문제점부터 생각하지만, 저는 답부터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출발하는 거죠."

남이섬의 성공에 드라마 '겨울연가'를 빼놓을 수 없다. 남이섬을 알리고 사람들, 특히 일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기폭제가 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 대표는 여기서도 평범함을 거부했다.

"겨울연가가 히트치고 3년이 지난 후 의식적으로 드라마의 흔적을 지워버렸습니다. 드라마를 유치해 3년 이상 가는 예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왜 아직도 겨울연가의 흔적이 남이섬에만 남아 있을까요? 겨울연가를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대로경영난에 허덕이던 남이섬은 이제 매년 200만 명이 찾는 문화관광지로 바뀌었다. 제주도가 500만 명 수준인 걸 감안하면, 여의도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가랑잎 같은 섬이 거둔 실적으로는 대단한 성과다. 매출액도 150억 원 남짓 올렸다. 그러나 강 대표에게 매출액은 별 의미가 없다.

"이제껏 매출 목표를 세운 적이 없어요. 대신 세상의 유산으로 남고 싶다는 얘긴 하죠. 올해는 남이섬을 놔두고 해외를 많이 다녔습니다. 남이섬의 목표가 국제화이기 때문이에요. 외국인 관광객 수가 이렇게 많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나미나라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선포하고 남이섬을 문화·예술·자연의 공화국으로 만든 것을 유치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남이섬이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데 사소하고 유치한 상상만큼 큰 역할을 한 것도 없다.

이달 12월 3일에는 예술의전당에서 '나미나라공화국 국가 브랜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국가 브랜드라는 것은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한국관광의 미래와 브랜드화의 해답을 남이섬에서 찾아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강 대표는 꿈을 묻는 질문에 '꿈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단순한 게 어디 있느냐"는 것. 선생님이 되고 싶고, 의사가 되고 싶은 건 초등학생이나 꾸는 꿈이란다. 매일 발전하고 바뀌고, 상상한 것을 조립시켜 나아가는 것이 바로 그의 꿈이다.

"계속 망설이면 계속 그렇게 사는 겁니다. 하고 싶은 일 하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세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채워줘야 내일 더 좋은 일이 생깁니다. 돈이 없다고요? 그럼 돈 안 드는 일을 생각하세요. 되는 일만 생각하면 되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니까요."

글 장진원 기자Ⅰ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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