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자락에 문화 캐러 가보세

2009. 12. 1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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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산신·약초…골짜기마다 터줏대감 이야기

〈백두대간 민속기행 1, 2〉

최상일 지음/MBC프로덕션·각 권 1만8000원

"도신이라고 있었어. 가실에 추수해서 술하고 떡 해서 갈라묵고…. 떡은 시루떡. 솥에 쪄갖고 웃묵에 손 비비고, 여기저기 손 비비고. 조상한테 절하는 것이지. 도신도 하는 집이나 하지. 노인 잘되고 아이들 잘되고 재수대통하라고 그러지 뭐."

지리산 형제봉 아래 북쪽 골짜기에 있는 양정 마을에서 한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다. 동네에 우환을 없애 달라고 온 동네 사람이 나와서 빌고 놀았던 잔치가 산제와 당산제였다면, 집집마다 우환 없게 해 달라고 떡해놓고 조상님께 비는 의식이 '도신'이다.

백두대간은 자연으로서의 산맥인 동시에 오래전부터 그 안에서 땅을 일구고 문화를 일구어온 사람들의 터전이다. 백두대간의 산촌에서 토박이 어르신들이 들려주신 옛이야기들은 그대로 '산촌 생활사'다. 그 속에는 산촌의 옛 생업관행과 생활문화, 그리고 민간신앙에 관한 증언이 온전히 담겨져 있다.

<백두대간 민속기행-사라져가는 옛 삶의 기록, 최상일 피디의 산간민속 답사기>는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한반도의 등줄기를 타고 전해오는 '산간 민속'을 고스란히 기록했다.

사라져 가는 우리 민요를 집대성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의 지은이 최상일 피디는 사라져 가는 옛 삶을 기록하기 위해 산간 벽촌을 무수히 누볐다. 백두대간 자락의 300여 마을을 답사했고, 110여 마을 어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했다. 대략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말까지 약 25년에 걸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두 권으로 된 책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더덕도 캐고, 도라지도 캐고, 가을 되면 능이라 하는 버섯 그것도 하지, 또 송이 따지, 찬바람 나면 굽더더기 따지, 또 인자 여기 도토리, 가을이 되면 또 그기 많이 나면 도토리 줍지. 매일 여여 산에 뭐, 이 산이 부자산이라요, 부자산. 나만 부지런하면요, 남한테 참 돈 꾸러 안 갑니다."

대야산 아래에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벌바우마을이 있다. 75살 손한순 할머니와 남편 원종팔 할아버지는 댓골에서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 할머니는 덩치는 작지만 참으로 옹골차게 생활을 개척해 왔다. 옛날부터 나물 뜯으러 다니던 경험을 살려 지금도 나물, 버섯, 약초를 뜯고 따고 캐서 팔아 자식들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산다.

책에는 산촌의 역사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맛이 담겨 있다. 백두대간 자락은 일찍이 난리를 피해 찾아온 비결파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고, 땅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생존을 꾀하는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산비탈 곳곳에 화전을 일구고, 나무를 잘라 숯을 굽거나 목기를 만들어 팔고, 산에서 나물을 뜯거나 약초를 캐어 생계를 유지했다. 수많은 골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살았던 만큼, 백두대간에는 무척 다양한 생활방식과 문화가 생겨났다. 그렇게 산촌 사람들의 삶이 체온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최상일 피디가 10년 만에 백두대간을 다시 찾았을 때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도로가 새로 뚫리면서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 봄가을에 성대하게 치르던 장수군 장안산 산신제도 없어졌다. 삼도봉 골짜기의 하나 남았던 억새집은 집터조차 찾기 힘들게 됐다. 그는 "찾는 것들은 늘 쉽게 사라져 버린다"며 "무형의 문화를 대하는 안목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대책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아쉬워한다.

"또 어떤 새는, '께끼 최서방, 께끼 최서방, 술값 닷 돈 주쇼!' 그랴. 하하하…. 옛날에 최서방이 술값을 안 갚고 죽었디야. 새가 '술값 닷 돈 주쇼!' 할 때는 아주 볼통시럽게 하드라고."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 텃골. 백운산과 그 서쪽 장안산 사이에 지지골 계곡이 있고, 골짜기 가운데쯤에 텃골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말 의병전쟁이 한창일 때 난리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새들은 여전히 '술값 달라'고 울어대고 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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