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우시장'이 'U-market'?..시행앞둔 새주소 '좌충우돌'

김경호 2009. 10. 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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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유길용 기자 = 경기지역 번지명 주소체계를 대체하는 새주소(도로명주소) 제도가 엉터리 표기와 이용자를 고려하지 않은 도로명을 부여하는 바람에 시행해보기도 전에 뜯어 고쳐야 할 처지에 놓였다.

문법과 어법에도 맞지 않는 엉터리 표기는 물론이고 이미 사라지고 없는 업체 이름을 빌린 길이름 등 '백년대계'를 내다본다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새주소사업에 3400억원 가량이 이미 투입됐거나 투입될 예정이지만 정부와 지자체들의 전문성이 부족해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새주소 제도 도입'OO동 O번지'와 같은 지번주소의 대안으로 1996년 7월 대통령비서실의 '국가경쟁력 강화기획단'에서 도로명 방식의 새주소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급격한 도시화와 개발로 분할·합병을 반복한 지번으로는 정확한 위치 정보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1997년 경기도가 안양시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2006년 10월 '도로명 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새주소제도는 2012년부터 건축물대장과 우편주소 등 생활에 밀접한 각종 행정서식 등에서 기존 번지명 주소를 대체하게 된다.

행정안전부는 새주소 사업에 투입한 비용만 2238억 원에 이르고 앞으로 시설 정비사업에 1153억원을 더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 동네 골목길까지 새 도로명 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등 관련 인프라 구축이 마무리 단계에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엉터리 표기 일색이다.

◇'우시장'이 'U-market'(?) 정체불명의 영어표기올해 9월 개정된 행정안전부의 새주소 업무편람에 따르면 도로명판은 한글과 로마자를 병기해야 하며 영문 표기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수원시 곡반정동의 우시장 사거리의 도로명판상 영어표기는 'U-market Jct.'. 영문표기로는 뜻을 유추하기가 불가능하다.

영문 표기는 물론 외래어 표기법에도 맞지 않는다.수원시청 옆의 '시청옆길'도 'Sicheongyeop-gil'이 바른 표현이지만 표지판에는 'City Hall yeop-gil'이라고 엉뚱하게 적혀 있다.

수원시 권선구 농수산시장의 영문표기는 'Agro-Fishery Market'인 반면 '농수산시장사거리'는 'Produce-Fish Market 4Jct'로 돼 있다.

'연무중앞길(Yeonmujung ap gil)', '수성여중길(Suseong girl's Mdl school-gil)' 등 학교 주변 도로명 영문표기도 제각각이다.

'길'에 대한 영문 표현도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수원 영통 '느티나뭇길'의 영문 표현은 'Neutinamu-road', 월드컵경기장 주변의 '월드컵길'은 불과 50여m 간격을 둔 두 개의 표지판이 각각 'Worldcup-gil', 'Worldcup-street'으로 달리 표기하고 있다.

◇사라진 건물, 도로명은 '오리무중'행안부 지침에 따라 새주소가 전면 시행되는 2011년 7월 이후부터는 한 번 정한 도로명은 변동 사유가 있어도 3년 이내에 다시 바꿀 수 없다.

이에 따라 길 주변 주요 건물이나 기업체, 학교 등의 이름을 적용한 주변 도로명들은 건물이 사라지면서 어떤 이름을 가질지 주목되고 있다.

화성시 병점동 한국 3M 공장이 있던 자리의 주변 도로명은 '3M옆길'이지만 3M이 공장을 이전하면서 새 이름을 지어야 할 처지다.

화성시 진안동의 '용우빌라길', '농협샛길'도 마찬가지다.광교신도시로 이전하는 연무중학교 주변의 길이름과 사거리는 여전히 '연무중'을 빌려다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없어지거나 이전할 학교와 주요 건물 등의 이름을 딴 현재 주변 도로명은 '유령길'로 전락하고 있다.

한 지자체 새주소사업 담당자는 "잦은 변동 가능성 때문에 기업이나 단체, 건물명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도록 행안부에서 권장하고 있다"며 "하지만 도로는 많은데 길이름으로 사용할 유례 등 소재가 충분치 않아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자보다 행정편의가 우선(?)이용자들이 더 쉽게 주소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배려도 부족하다.안양시 국도 1호선(경수대로)으로부터 수십m 간격으로 생선가시처럼 뻗은 '경수대로 OO번길'은 동안구 호계동부터 만안구 석수동까지 387개의 길에 무려 1~1023번까지 일련번호로 구분돼 있다.

지역을 순찰하는 경찰 지구대에서조차 길이름만으로 위치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안양경찰서 A지구대의 한 경찰관은 "아직까진 지번이 익숙해 길이름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며 "새주소가 전면 시행되더라도 일선 치안현장에서는 당분간 정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시도 성남대로 주변 길이름을 이처럼 일련번호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성남시 관계자는 "기준점으로부터의 거리를 번호화해 이를 길이름으로 정하는 방식으로, 원리를 이해하면 오히려 위치를 가늠하기가 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성남대로 옆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김세호씨(43)는 "공무원들이나 찾기 편하지 일반인들이 그런 깊은 뜻을 이해나 할 수 있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길'과 '로' 표기 기준도 '제각각'도로에도 급이 있지만 지역마다 적용 기준이 천차만별이다.도로의 폭이 40m 또는 왕복 8차로 이상이면 '대로', 폭 12m~39m 또는 왕복 2차로 이상 8차로 미만은 '로'란 명칭을 사용한다.

그보다 작은 도로는 '길'이란 명칭을 쓰도록 돼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로'와 '길'의 구분이 모호하다.

화성시 화산동사무소 앞을 교차하는 두 개의 도로는 모두 왕복 2차로의 '길'에 해당하지만 각각 '정조길', '송산로'란 명칭을 갖고 있다.

병점역 인근의 한 골목길은 2차로에도 해당하지 않는 엄연한 '길'급 도로이지만 '병점2로'란 이름을 부여했다.

안성시 대덕면의 '만세로', '신령로'는 모두 왕복 2차로에 불과하지만 '로'급 도로명을 가졌다.

반면 수원시 영통구의 '영통중앙길'은 왕복 4차로의 '로'급 도로이지만 '길'로 구분되는 등 지역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예산의 여유가 있는 일부 시·군은 '길'급 도로를 '로'급으로 격상하는 경우도 있다"며 "'길'보다 '로'급 도로의 명판이 더 크고 눈에 잘 띄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새주소 심의위 역할·전문성 강화해야정부와 광역단체, 기초단체에 도로명을 심의, 결정하도록 설치한 도로명주소위원회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자체의 부단체장을 비롯한 관련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를 절반씩 위원으로 구성하는 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할 경우 혼란만 가중될 수밖에 없다.

2002년 도로명을 정하는 1차 사업이 마무리된 뒤 도로명주소위원회의 활동은 거의 전무했고, 2011년 12월 말까지 도로명 정비를 마무리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 때문에 뒤늦게 위원회가 심의해야 할 도로명이 수천, 수만 건에 이르다보니 일일이 유래와 지역성 등을 심의해야 할 시간이 부족한 실정이어서 전문성이나 원칙과 기준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도로명 표기에는 행안부 지침에 따른 원칙과 기준이 있다.하지만 광역지자체가 2개 시·군 이상에 걸쳐 있는 도로를 놓고 각 지자체에 대한 배려와 지역적 안배 등 형평성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자의적 판단 때문에 오히려 전문성이나 기준과 원칙이 무시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하나의 대로에서 가지를 뻗는 길들을 단지 길의 규모만으로 '길' 또는 '로'급으로 나눈다면 지자체간 형평성 문제가 벌어질 수 있어서 도로명을 결정할 때 지역 안배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정부로부터 올해 도로명을 정비하기 위한 예산 144억원을 지원받아 내년 상반기 중 잘못된 도로명을 바로잡을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시범운영한 지 10년이 넘도록 도로명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정비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많은 문제를 노출해왔다"며 "2012년부터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잘못된 도로명을 바로잡아 혼란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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