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이상민의 기억, 흔적, 그리고 Reverberant를 찾아서

2009. 8. 2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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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스테인레스 스틸. 38x30x6cm, 2009

이상민 작가의 기획초대전이 용산구 한강로 가갤러리에서 'Promenade,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전시는 27일까지 진행된다.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이번 전시를 통해 몸으로부터 화면에 이르는 다양한 움직임의 흔적을 남기는 작업들을 통해 흔적이 만들어지는 순간이 똑같이 재현될 수 없는 현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행위와 그 흔적이 쌓여가는 과정의 현재진행형인 작품들을 매개체로 관객들도 자기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썼다. 작가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본다. < 편집자 주 >

하얀 벽에 설치된 카메라 옵스큐라를 연상시키는 박스는 까만 천으로 둘러싸인 채 관객의 시선을 끈다. 가까이 다가가자 쇠구슬 모양의 작은 오브제가 기계적인 소리를 내면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 움직임에는 일정한 질서가 있는 듯 여기저기로 정연하게 흔적과 퇴적을 남기면서 나의 몸짓에 따라 움직이기를 계속하다 내가 멈추면 곧 정적을 남긴다. 가볍게 휘날리는 목탄가루는 쇠구슬의 움직임을 따라 계속 생성과 퇴적을 거듭한다. 그 작품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순간 내 몸과 마음의 센세이션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는 메롤로 퐁티가 설명했듯이 내가 어떠한 오브제의 영향을 받아 내 존재의 상태를 그 순간 경험하는 두 가지의 센세이션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순수한 센세이션이란 이상민의 작품에서 보이듯이 비차별적이면서도 한 순간에 일어나는 쇠구슬의 영향, 혹은 제스처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진. Mixed Media,가변설치, 2009

이 작품은 이상민이 < 드로잉 박스 V > 라 칭한 작품으로 시간이나 의식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표면을 물성화시킨 예다. 이미 2003년과 2004년에 벽면에 설치된 < 드로잉 박스 II > , < 드로잉 박스 III > < 드로잉 박스 IV > 에서 실험되었다. 후자의 작품들이 기계적으로 자체적으로 움직였다면, < 드로잉 박스 V > 는 참여자의 참여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성되는 퇴적층을 통해 관객의 경험, 행위, 기억이 축적된 마음의 장으로 변모하게 된다.

2004년 제작된 < 점프 > 라는 인터액티브 비디오 설치작품 또한 이러한 성격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규모가 상당히 큰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특히 관객이 작품을 시작하고, 또 마무리 짓는 과정에 있으며, 작가는 그 과정을 관조하고 돕는 객체의 위치에 서게 된다. 작가의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참여하는 이의 주체적인 입장이 최대한 고려되는 순간, 그 작품은 비로소 내러티브가 시작된다. 즉 관객이 트램폴린에 들어서고 5분이 경과하면 그 사람의 정면과 위 모습을 담은 무정형의 형체가 스크린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가 점점 높이 뛰면 뛸수록 스크린에 나타나는 영상은 더욱 극적인 톤을 더해가고, 트램폴린과 연결된 사운드 장치 때문에 관객이 어디를 밟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피치를 내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각기 다른 움직임은 소리의 템포를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우리는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이 내비쳐지는 스크린을 거울과 같은 대체물로 느끼게 된다. 자신의 형체가 비쳐진 거울을 보면서 아, 이게 내가 뛸 때 이렇게 보이는구나 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듯이, 스크린의 움직임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인터액티브한 작품들은 활발히 움직이는 동적인 순간과 어느 순간 멈춰버리는 정적인 순간이 어우러져 있다. 그것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반향하고 반사하는 계속 이어지는 흐름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가 쓰는 멈춤은 정말 정지한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숨을 내시기 위해서는 꼭 숨을 들이셔야 하는 원리에 비유될 수가 있겠다. 끊임없는 "작용"이 설치 오브제와 관객을 분리시키지 않고, 서로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이상민은 홍익대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회화와 인터액티브 미디어를 공부했다. 작가의 변에서 밝혔듯이, 그는 자신의 초기 작업 또한 제스처와 연관되어 동작에 따라 흔적이 생기는 과정에 대한 고찰이라고 설명한다.

작가에게는 끊임없이 변하는 오브제의 가변성, 관객의 예기치 않은 반응, 또 이 모든 것들이 작용하는 퍼포머티브(performative)한 성격, 그 과정이 이상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된 요소이다. 이상민은 애써 장소성을 설명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의 철학적인 근거나 자전적인 요소까지 유추해볼 수 있는 이러한 미적 요소들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큰 관심을 끄는 작가다.

글=정연심 미술비평가[ⓒ 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 세계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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