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12) 공화국의 관점에서 본 분단과 통일 上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2009. 7. 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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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없는 통일은 악..공존·배려가 출발점 돼야

김상봉 선생님. 평안하신지요. 짧고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다 갑자기 개곤 하는 아열대성 기후 같은 날씨입니다. 오늘 대담 주제는 '공화국의 관점에서 본 분단과 통일'인데, 이 문제야말로 요즈음 날씨만큼이나 혼돈스러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남북관계는 꽉 막혀 있고, 북한은 핵실험에 이어 계속 미사일을 발사하여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20세기 냉전 유물로서의 한국의 분단은 인류가 과연 냉전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를 보여줄, 21세기까지 남아있는 20세기 세계 최후의 유산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의 분단은 지극히 세계적이면서 반(反)세계적이지요. 동시에 통일 역시 세계사적 냉전종식과 전지구적 탈냉전의 완성이기도 하고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든 분단은 악'이며 '모든 통일은 선'이라는 이분법으로는 풀 수 있는 것이 없다. 통일의 출발은 분단의 인정과 분단국가의 수용에서 시작된다. '모든 통일은 선'이 아니라 '평화 없는 통일은 악', 즉 평화의 가치를 중심에 설정할 때 통일의 위치가 바로선다. 사진은 강원도 양구 비무장지대(DMZ) 부근에 설치된 지뢰 표지. 경향신문 자료사진

공화국의 관점에서 분단과 통일 문제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논의되어야 할 점은 아마도 남한과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 그럴 때 남한과 북한은 각각 두 개의 독립적인 근대국가로 이해됩니다. 일반적 기준에 비추어 둘은 국제사회를 구성하는 근대국가의 요소에서 결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즉 독립적 존재의 자기 근거를 갖추고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지금 둘은 모두 유엔 회원국입니다.

그러면서도 근대국가로서의 둘의 등장이 상대와의 생사존멸 투쟁을 거친 결과라는 점은 자기존재와 상대소멸의 논리가 일치하는 특수한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즉 부정적·배제적 국가형성입니다. 때문에 정당성의 공유는 둘의 출발부터 차단되어 자기존재와 상대배제의 근거·이유·정당성은 처음부터 일치했습니다. 자기존재의 증명을 타자배제·제거의 논리에서 찾는 부정적 조합을 형성했던 것이지요.

게다가 남과 북은 장구하게 하나의 민족과 국가로 존재해왔습니다. 말씀드렸던 일종의 '역사적 국가'입니다. 오랜 종족적·정치적·언어적·문화적 동질성은 한국민들의 단일 정체성을 강화하여 두 국가의 등장을 역사의 배반으로 인식하게 했습니다. 한민족의 역사에 비추어 분단은 매우 이질적·예외적인 것이지요. 민족 분단·이산이 아무리 일반적일지라도, 한국민들에게 통일이 절대이자 당위로 인식되었던 것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 유래합니다. 물론 분단으로 인해 치렀고, 또 치르고 있는 막대한 비용 역시 통일의 필요성을 불러오고요. 분단으로 인한 독재, 군사주의, 반인권의 상황을 돌아볼 때 통일은 이것들을 넘는 한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금 더 근본적 문제를 하나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가 또는 공화국 발전에 대한 이론·경로에 비추어 충격적인 것은 현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구성하고 있는 국민들, 시민들, 주민들은 역사적으로 하나의 민족인 적은 있지만, 하나의 근대국가를 구성하여 동일 국민·시민으로서 존재한 적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조선왕조를 시민들의 자발적 의지에 근거한 근대국가로 볼 수는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대한제국과 식민국가를 거쳐 두 국가와 두 국민으로 분립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한제국과 식민국가를 이들이 참여하고 동의하여 구성한 근대국가요 공화국으로는 결코 볼 수 없지요. 오늘날 남북의 통일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자각적이고 의식적인 시민의식과 시민참여로 구성되는 단일 근대국가를 가져보지 못한 이러한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실제로 이 문제는 구(舊)조선 국적 재일교포나 북한 출신 탈북자들의 국적 회복 또는 부여 문제를 포함하여 이미 심각한 현실 문제가 되어있습니다.) 그 결과 이 두 국민에게 분단극복은 재통일(reunification)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통일(unification)인 것이지요. 즉 남북의 시민들에게 통일은 전 한반도 차원의 새로운 국가형성이요 공화국 건설인 것입니다.

근대국가에 관한 보편성과 한국의 특수성을 유념할 때 결국 남과 북은 각각 전체, 부분, 관계라는 세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둘은 독립된 근대국가로서는 각각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지만, 동시에 전체 분단질서를 구성하는 한 부분인 것이지요. 둘의 관계 역시 적대와 공존의 특수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즉 동일 민족성에서 오는 강력한 통일·연대·통합의 희구와 대립관계에서 오는 강력한 배제·적대·증오가 병존해왔던 것이지요. 제 식으로 말씀드리면 적대하면서도 의존하고 의존하면서도 적대하는 일종의 적대적 의존 관계, 공생적 적대 관계라고나 할까요.

민족주의 이론들의 언명처럼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상대의 존재야말로 자기의 오랜 단일 정체성을 해체한 제일 요소이기에 동질성·통일성·순수성이 높을수록 파괴 요소에 대한 제거와 타도를 통한 과거의 이상적 단일 유기체에 대한 회귀의 본능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일종의 시원적 순수, 원초적 패러다이스에 대한 동경이지요. 오랜 단일 민족의 역사를 강조하는 사람들일수록 민족주의에 불타고, 또 남과 북에서 통일의지에 불타는 사람들일수록 자기로부터 갈라져 나간 절반에 대한 타도 의지가 강했던 연유는 여기에 있었지요.

통일지상주의 되레 분단 강화과정·수단의 중요성 깨달아야

그러나 기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든 분단은 악'이며 '모든 통일은 선'이라는 이분법으로는 풀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한국은 물론 다른 분단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이나 사실에도 맞지 않고요. 강한 통일주의가 강한 분단주의와 만날 수 있다는 역설은 여기로부터 나옵니다. 통일의 출발은 분단의 인정, 즉 분단국가의 수용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공존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증오처럼 강력한 분단 의지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큰 역설입니다. 반(半)항구적인 분단고착에 기여한 한국전쟁이 보여주었듯,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통일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통일지상주의는 결국 분단강화에 기여하고 맙니다. 만약 폭력적 물리적 통일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통일 이후 궁극적인 사회통합과 통일에는 해악이 될 뿐이지요.

그 때문에 분단해소, 통일추구에서 필수적인 점은 바로 과정·수단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목적이 옳더라도 반드시 바른 수단을 통해 도달하겠다는 의식이지요. 수단은 항상 선택되는 순간 목적을 규정합니다. 즉 나쁜 수단을 통해 좋은 목적을 달성할 수는 결코 없지요. '모든 통일은 선'이 아니라, '평화 없는 통일은 악'입니다. 게다가 전쟁은 선악 사이의 투쟁의 산물이 아니라 서로 선이라고 주장하는 하나의 선과 다른 선 사이의 대결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저는 통일에 대한 바른 출발은 목적으로서의 통일과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분리하여 후자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다른 가치와 이익을 추구하는 상대가 존재하는 목적의 추구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공존과 배려의 의식에서 나오는 평화에 대한 인정과 수용처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통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평화라고 봅니다. 평화적 수단과 절차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통일은 추구되어서는 안됩니다. 평화는 곧 생명과 인간의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겠다는 인간존중의 논리와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에 때로는 자주 반통일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즉 폭력적 반생명적 통일추구에 대한 반대, 관용과 배려의 연장으로서의 평화를 의미하지요.

평화의 가치를 중심에 설정할 때 통일은 비로소 그 위치가 바로설 것 같습니다. 즉 통일은 무엇보다도 평화를 전제한 생명, 인권, 자유, 평등, 민주주의, 복지와 같은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과정과 절차로서의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그 보편은 곧 한반도의 한 생명, 한 생명들에게는 매우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것이지요. 한반도 통일보다 중요한 가치가 한반도 평화이듯, 한반도 생명과 한반도 인권·평등·민주주의·자유·복지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렇듯 '평화적인 보편가치의 실현으로서 통일'을 설정할 때 비로소 특수성과 보편성의 충돌을 극복할 수 있음은 물론 남한과 북한, 그리고 전 한반도 차원의 이념대립을 넘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과정의 산물로서 목적실현을 말할 때는 이런 의미 연관을 갖는다고 봅니다. 즉 인간적 가치의 실현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말합니다.

생명·인권·자유·민주주의·복지…통일은 평화적 보편가치의 실현

특수문제와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민족주의는 자주 유용한 것이지만, 상대에 대한 적의와 타도에 불타는, 그리하여 폭력도 불사하는 민족주의는 반민족적 결과를 초래하곤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민족주의에 대한 해독제는 또 다른 유형의 민족주의가 결코 아니라 보편적 가치와 이상이기 때문에 분단과 통일 문제를 볼 때에도 생명·인권·자유·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주의적 관점과 열망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거기에서 출발할 때 우리는 비로소 평화와 관용을 통해 민족적 상황과 논리, 그리고 보편가치의 한반도적 실현을 결합하는 혜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때문에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넘어 민주주의와 인권과 자유의 보편가치에 반하는 북한에 대한 엄한 비판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요. 자유, 민주주의, 인권, 평화의 관점에서 북한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엄정한 비판적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북한이 만약 사회주의체제로서 인민민주주의 독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천명했다면 그들은 이념과 원리를 넘어 실제 현실에서는 수령유일지배체제를 거쳐 유사 전시독재체제로 전이했습니다. 일관된 독재체제였지요.

北은 공화가치서 가장 먼 체제진보·보수 넘어 엄한 비판 필요

오늘날 북한은 인간적 인류적인 보편적 기준에 비추어 공화국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습니다. 어쩌면 처음 공화국에 대한 저희들의 논의처럼 '공화국을 통한 자유' '자유로서의 공화국 건설'을 전제했던 출발에 비추어 보면 여기에서 가장 멀어져 있는 체제의 하나일지 모릅니다. 북한에서 국가주권과 인민주권은 극적으로 충돌하고 있으며, 이념을 넘어 이토록 오랫동안 국민의 일부가 계속 탈출하고 있는 체제는 지구상에서 북한이 유일합니다. 또 국가안보, 정권안보를 위해 인간안보, 인민주권이 가장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사례의 하나라는 점에서도 21세기의 비극입니다. 바로 이런 북한의 현실 때문에 '평화적인 보편가치의 실현으로서 통일'이 중요하고 그것을 향한 가치와 원리로서의 자유와 책임, 정의와 관용이 동시에 필요하고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반생명, 반평화적 현실'과 '평화적 가치 실현'의 결합처럼 필수적인 평화와 통일의 전제 조건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남과 북은 공화국 원리를 부정하기 위해 상대와의 대결을 활용하여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거꾸로 내부로부터 발원하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 평등을 향한 변화를 통해 보편적 공화의 가치와 원리가 한반도 전체 및 개별 시민들에게 넘쳐흐르는 역의 과정을 희망해봅니다. 왜냐하면 분단과 통일 문제를 고려할 때 남한과 북한, 한반도의 객관적 현실에 대한 엄정한 비판적 문제 의식과,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상정한 평화와 관용의 원리, 이 둘을 결합하는 지혜와 방법의 개발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함께 근대국가를 건설한 경험이 없는 전체 한국 민족으로서는, '다르면서도 통합적인' 공동체적 공화적 비전과 원리를 향해 함께 미래로 나아가려할 때 요구되는 가장 무거운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워낙 뜨거운 주제라서 몇몇 부분에서 선생님의 다른 견해를 예견하며 여기에서 오늘의 편지를 맺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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