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의 매력에 빠지다] '낯선 악기' 리코더 염은초

2009. 6. 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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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로의 여행 영원한 동반자"

◇리코더 연주자 염은초는 "리코더의 소리가 자연을 닮았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도 리코더 불면 뱀이 나온다고 장난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새소리와 비슷하다"는 그는 "연습할 때면 창문에 새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며 웃었다.송원영 기자

초등학교 3학년 음악시간, 처음으로 플라스틱 리코더를 부는 순간 홀렸다. 리코더 연주자 염은초(18)에게 리코더가 '운명처럼' 찾아온 순간이었다. 5000원짜리 리코더가 내는 소리는 신기했다. 아이들마다 내는 소리가 제각각이었을 뿐더러 호흡의 기분까지 '척' 알아냈다. 기분이 좋을 때, 나쁠 때,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사랑에 빠질 때 리코더가 빚어내는 소리는 다르다.

2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염은초를 만났다. 일상에선 친숙한 악기지만, 무대에 올라가면 낯선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는 어떨까 궁금했다.

그는 일상복 대신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사람들의 당황한 시선에 그도 살짝 놀란 눈치다. "연주회가 잡히면 한 달 전부터 무대의상을 입고 다니면서 익숙해지려고 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주말부터 시작되는 일본 연주회 일정을 위해 스위스에서 직접 구입했다. "(스위스 취리히 음악대학) 학교에선 이런 게 일상인데 한국에 오니 사람들이 쳐다본다"며 웃었다.

빨간색 여행용 가방도 눈에 띄었다. 가방을 열자 리코더가 한가득이다.

"세어 보지는 않았는데 열 개 넘게 있어요. 다 합치면 10㎏은 돼서 늘 이렇게 가지고 다녀요. 소프라니노 악기가 가장 작고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소리가 낮아질수록 리코더 크기가 커져요."

국내에서 '낯선' 연주자가 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리코더 전공 중·고등 학교가 없어 중학교는 검정고시를 치렀다. 스승을 찾아다녔다. 리코더의 대가인 네덜란드 출신 케스 뵈케에게 녹음한 연주곡을 보냈지만, 답변은 없었다. 기회는 3년 전 일본 국제 야마나시 고음악 콩쿠르에서 왔다. 특별상을 수상했고, 심사위원으로 온 케스 뵈케를 만날 수 있었던 것. 만 16세가 돼야만 스위스 취리히 음악대학에 들어갈 수 있어 "(당시 만 14세였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언어를 공부하겠다"고 당찬 답변을 했다. 그리고 지난해 케스 뵈케의 5명의 제자 중 한 명이 됐다.

"리코더 연주자로 살아남으려면 (리코더의 전성기인) 바로크음악을 다 알아야 해요. 비올라 다 감바, 쳄발로, 바로크플루트도 배우고 있어요. 리코더로 연주여행하면서 사는 게 꿈이에요."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No=나무로 만든 리코더는 예민하다. 추워도 더워도 안 된다. 습도 조절은 필수다.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후에 따라 민감해 연주하는 나라의 날씨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연주할 때 비가 오면 곰팡이 핀 소리가 나요. 하하. 그래서 날씨가 좋기를 기도해요. 바람에 따라서도 소리가 달라져 야외에서는 연습도 하지 않아요. 연주, 연습 모두 실내에서 하죠. 습도와 온도가 굉장히 잘 맞춰진 곳에서요."

리코더를 새로 구입하면 길들이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를테면 처음엔 하루에 5분씩 불다가 일주일이면 10분, 낮은 음부터 높은 음으로 조심스럽게 이어가다 한 달이면 한 시간으로 늘리는 식이다. 길을 잘 들여야 마음에 드는 소리를 얻을 수 있다. 프로연주자가 쓰는 리코더는 평균 350만원선. 같은 알토 리코더라도 스타일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로텐부르크 모델은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 반면에 데너 모델은 뭉실뭉실한 소리가 나요. 플라스틱 리코더인 경우는 음이 일정해서 스타일이 생기지는 않아요. 소프라니노 같은 경우나 현대곡으로 가면 플라스틱을 주로 쓰죠."

호흡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연습하는 것도 벅차지 않을까. "하루 세시간만 해도 어질어질했는데 단련이 되니 이젠 하루 6∼7시간 해도 거뜬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신 위가 꽉 차 있으면 불편하기 때문에 연습시간은 물론 연주 당일엔 되도록이면 먹지 않는다.

◆리코더의 재발견=오케스트라가 발전하면서 음량이 작은 리코더는 플루트에 자리를 내주면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 실내악이 주목을 받으면서 유럽은 바로크음악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자연스레 리코더가 올라갈 무대도 늘어났다. 다음달 18일 금호아트홀에서 갖는 독주회에선 시대별 리코더 음악을 선보일 계획이다.

"중세음악 중 기욤 드 바쇼의 '불평'을 들려드릴 생각이에요. 짧은 곡을 36번 반복해요. 가사도 있는데 세상을 비판하는 내용이에요. 얼마나 마음에 안 들었으면 제목도 '불평'에 그걸 계속 반복하겠어요. 당시 사람들은 굉장히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에 음악도 그랬고, 색깔 자체도 굉장히 깨끗해요. 당대 느낌을 살리기 위해 객석을 돌아다니면서 연주하려고요."

현대곡도 선보인다. 마키 이시의 '솔로 리코더를 위한 블렉 인텐션'. 리코더 두 대를 동시에 불면서 소리도 지르고, 나중엔 징도 두드린다. 연주자 사이에선 기피곡이지만 리코더의 새로움을 보여주기 위해 프로그램에 넣었다. 객석을 위해 비발디의 '리코더를 위한 콘체르토' '두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콘체르토' 등도 연주한다.

리코더의 음역은 2옥타브 반. 폭이 넓지 않다. 최근엔 키를 달아 음역을 확대하기도 한다.

"종종 연주할 때 연주자가 무릎으로 리코더 구멍을 막는 경우가 있어요. 관객이 궁금해하는데 알토로 파샵을 연주할 때 그렇게 해요. 요즘엔 투명 리코더도 나오고 즉흥연주를 펼치기도 해요. 한계를 넘어선 연주예요. 아직까지 없지만 언젠가는 일렉트릭 리코더를 연주하고 싶어요."

윤성정 기자 ys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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