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모기 박멸 프로젝트](2)정화조 집단서식 모기·유충 '씨 말린다'
"여기, 여기 모기네…. 모기야 모기." 서울 송파구 삼전동 한 다세대 주택가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궁금증이 생긴다. 모기가 반가울 리 없건만, 이들의 목소리는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 듯하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보니 '모기제로'라고 쓰여 있는 빨간색 조끼를 입은 남성 3명이 정화조에 모여 앉아 약을 뿌리고, 열심히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다.
"여기 보세요. 모기나 유충이 나온 집 정화조는 이렇게 빨간색을 칠하는 겁니다. 모기도 주로 자신이 알을 낳던 곳을 찾아 안전하게 알을 낳으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곳을 파악해 더 집중적으로 방역 활동을 해 주면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김승권 팀원(50·석촌동)은 마치 모기박사 같다.
이들은 송파구보건소가 6월부터 시작한 '모기박멸 바로바로 정화조출동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정화조 출동팀원들이다. 송파구보건소는 우리 생활에 여러 불편함을 안겨주고 전염병의 원인이 되고 있는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오는 11월까지 모기박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각 동별로 3명씩 배치된 정화조 출동팀원들은 집집마다 정화조를 열어 모기가 있는지, 모기 유충이 있는지 살피고, 적절하게 약을 뿌려 방역하는 활동을 한다. 초여름 햇살이 따갑고 더운 날씨인데도 마스크에 장갑, 모자까지 착용해야 힌다. "위생 문제도 있고, 정화조를 열었을 때 나오는 벌레들이 눈, 입, 코에 들어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더워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정화조를 여니 날파리들이 수도 없다. 이 중에 어떻게 모기를 구별할까 의문이다. 무차별하게 약을 뿌렸다가는 오히려 환경을 해칠 수 있어 모기만을 죽이기로 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호중 팀원(58·석촌동)은 "모기 없네"라며 뚜껑을 닫는다. 어떻게 알았는지 의아해하자 "약을 먼저 살짝 뿌렸을 때 날파리들은 그대로 윙윙대며 정화조를 맴도는데 모기들은 위로 튀어 올라온다"고 노하우를 전한다. 정화조 벽에 붙어있는 아주 작은 모기도 신기할 정도로 잘 찾아낸다. 방역활동 전문가인 송파구보건소 전염병예방팀 정기범 주임이 "이제 시작한 지 보름 남짓 됐는데 벌써 모든 팀원들이 전문가가 됐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한다.
하지만 전문가는 역시 남다른 점도 있었다. 모두 그냥 지나치는데 정기범 주임은 물이 고여 있는 하수구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박토섹'이라는 약을 가져와 뿌린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안에는 꿈틀꿈틀 거리는 아주 작은 모기유충들이 있었다. 국자 모양의 디퍼로 떠서 세심히 살펴보니 7마리 정도의 유충이 나온다. 유충이 10마리 이상인 곳에는 메탄가스가 배출되는 외부 관에 '성충출입 방지팬'도 설치한다고 한다. 이미 알을 낳은 모기가 나가지 못하게, 알을 낳으려는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의 유충은 100~150개의 알을 산란하고, 이들의 50%가 다시 알을 산란할 수 있는 암컷모기일 테니 유충 몇 마리를 퇴치하는 것은 엄청난 모기발생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방역활동을 한 집에는 마지막으로 방역한 일자를 기록한 스티커를 붙인다.
그런데 카펫이 깔려있어 정화조를 찾기 힘든 어린이집에 유난히 더욱 마음을 쓰는 출동팀원이 있어 눈길을 잡는다. 박명식 팀원(62·석촌동)은 약을 가져다가 어린이집 교사에게 전해주며 "꼭 변기에 넣어 물을 내리세요. 그러면 정화조 소독이 어느 정도는 될 겁니다"라고 강조한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7살짜리 손자 생각이 났던 것이었다. "모기 물려도 어른처럼 파스를 막 바를 수도 없고, 간지러워 괴로워하는 손자 녀석 생각이 났다"고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하루에 30가구(정화조출동팀원 1명당 10집)의 정화조를 소독한다. 한 정화조 당 평균 한 달 반에 한 번꼴로 소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송파구보건소 전염병관리팀 직원들은 사후관리도 잊지 않는다. 방역과정에서 주민들의 불편함은 없었는지, 문제점이나 부족함은 없었는지 등을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애쓴다.
이제 시작 단계인 이 프로젝트에 대한 송파구민들의 기대감도 매우 크다. 김순덕씨(39·잠실본동)는 "처음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해줄까 싶었는데, 진짜 우리집 정화조에도 스티커가 붙더라"며 "항상 7~8월에는 모기 때문에 잠도 못자고 많이 힘들었는데, 올 여름에는 모기 걱정이 없겠다"고 기대감을 표시한다. 최선영씨(42·가락2동)도 "초등학교 1학년 딸이 모기만 물리면 물집이 나올 정도로 피부가 약해서 매번 피부과에 가야 할 정도"라며 "여름에 항상 문을 꼭 닫고, 밖에 나가서 놀지도 못하게 했었는데, 올 여름에는 집 앞 놀이터에서 늦게까지 아이를 놀게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고 반가워한다.
"쉽지 않은 일인데 보람을 갖고 일하는 모든 직원, 정화조 출동팀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자부심을 갖도록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게 된다"는 송파구보건소 전염병관리팀 한기옥 팀장은 "너무 더운 시간대에는 일하지 마시고요, 식사 많이 챙겨 드세요", "무거운 정화조 뚜껑은 무리해서 열지 마세요. 허리 다칠 수도 있어요", "안전, 안전이 최고입니다"라고 계속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쏟아낸다.
< 이준규 의학전문기자·보건학박사 jklee@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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