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27> 가요 작곡가 정풍송

2009. 6. 2.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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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곡 히트 원로작곡가 저작권료 상상이하, 병원비도 못 내는 상황 바로잡고 싶다"

30년 묵은 마란츠 앰프는 곡을 쓰느라 밤을 지새우던 그를 똑똑히 지켜봤다. JBL 스피커를 통해 '웨딩 드레스' '아마도 빗물이겠지' '허공' 등 무수한 히트곡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작곡ㆍ작사ㆍ편곡가 정풍송(68)씨에게 오면 김수환 추기경도 뽕짝이나 발라드의 소재가 된다.

그러나 잠시 모두 접고 일어나, 그 시간에 대한 정당한 처우를 바란다. 그것이 가요계 어른된 자의 도리이며, 후배로서의 의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씨가 지난 4월 30일 중견 작곡가 50여명과 함께 가요 저작권료에 대한 '분배 악법 개선 비상대책위원회'의 첫 시위에 나선 이래 일련의 활동을 잇고 있는 연유다. 무엇보다 위원장으로서의 이름값은 물론 뒤늦게 밝힌 본명에 책임져야 함을 안다.

- 돋보기 안경이 어지러워 보인다.

"1970년대 초 KBS 근무 당시, 박봉에 지휘에다 편곡 작업까지 해야 했다. 곡당 편곡료 800원, 지휘료는 400원이었다. 방송을 2~3일 앞두고 열댓곡은 해치워야 했다. 영화음악의 작ㆍ편곡 작업까지 하다 보니 1주일에 2~3일은 밤샘해야 했다. 38세부터 돋보기를 썼는데, 지금은 고도 원시가 됐다."

- 본명을 밝힌 데 특별한 이유라도.

"내가 한창 활동하던 때의 가요 음반은 '박춘석 작곡집'처럼 작곡가 위주였다. 나는 작곡은 물론 작사, 편곡, 지휘까지 혼자 다 했으니, '다 해 먹어라'는 볼멘소리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저작권 문제에서는 본명을 밝혀야 하므로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가명(정욱)으로 작사자를 밝힌 이유다.

'저작권 선진국에서는 가명 쓰면 손해 보는 일도 생기니 이제는 본명을 밝히라'는 충고도 여러 번 듣던 터였다. 앞으로는 작ㆍ편곡, 작사 모두 '정풍송'이라 밝히겠다. 지금도 정욱이 나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라디오 프로에서 나의 앨범 소개하던 아나운서가 '정풍송-정욱 명콤비죠'라고 하더라."

- 커밍아웃한 셈인가.

"(웃음) 이름만 찾은 게 아니다. 3년 전부터 저작권협회의 평회원으로 분배제도 문제에 관심 가지게 됐다. 한 일년쯤 있으니 후배들에게서 협회를 이끌어 달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당시 협회의 집행부가 부정을 저질러 물의를 빚던 때였다.

사실 큰 이권이 걸려있는 자리였다. 그동안 그 자리에 선출되려고 막대한 선거자금이 동원된 게 그런 이유였다. 추문 없고 양심적인 선배 찾다 보니 나한테까지 왔다고 했지만, 내 일은 아니 것 같아 물리쳤다."

- 그런데 왜 맡았나.

"지난해 6월 저작료가 2분의 1 내지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가요계의 대선배이면서 수백곡의 히트곡이 여전히 살아있는 손석우, 반야월, 박시춘, 이제호 등 1세대 작곡가들에게 돌아가는 한 달 저작료가 300만원을 밑도니 팔순, 구순 나이에 병원료도 제대로 못 내는 딱한 처지다.

2세대가 박춘석, 길옥윤, 이봉조, 김인배라면, 나를 비롯해 김영광, 김희갑, 정남섭, 남국인 등은 3세대라 볼 수 있다. 작곡 생활 40년의 시기 구분을 하라면 그렇다.

그런데 요즘 잘나가는 젊은 작곡가들은 방송, 온라인, 단란주점, 노래방 등 해서 저작료만 한 달에 1억은 된다. 반면에 선배들은 저작권협회의 연간 1인당 관리비인 70만원도 못 버는 사람이 적지않다.

후배된 도리로 그 분들의 고생을 더 이상 헛되게 할 수 없다는 마음이다. 문제는 그뿐 아니다. 유흥 단란주점은 법적으로 청소년 출입금지구역으로 돼 있는데 바로 그들을 대상으로 한 노래들이 1, 2위라며 버젓이 공개돼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일차적으로는 그 점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는 것이다."

- 저작권협회 집행부라는 데가 대단한 권력인가 보다.

"곡 만드는 사람들은 수십년 간 프리미엄을 독점해 온 그들의 눈에 들도록 작품을 쓰게 된다. 그들은 또 연주자 사용은 물론 방송 여부도 충분히 조작 가능하다.

나는 노래방 회사, 업소, 여론기관 등지의 자료를 검토해서 6월말까지는 새 분배제도 계획을 마무리지을 생각이다. 지방 중소 도시의 현황은 물론 서울의 경우 명동, 강남, 대학로 등지로 세분해 확실한 기초자료를 만들겠다."

- 어떻게 하자는 건가.

"일본은 통신 가라오케이므로 100% 관리되는 셈이다. 한국의 노래방도 (잡음을 없애려면) 은행의 온라인 시스템처럼 전국적 관리망을 구성하자는 것인데, 수억대의 경비가 필요한 일이라며 난색이다.

정부와 저작권협회가 함께 나설 일이다. 현재 금영(65%), 태진(35%)으로 나뉘어져 있는 노래방 기기들에 대해 실시간으로 정확히 체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용 중인 모든 노래들을 저작권협회의 데이터화해서 정확히 분배해야 한다.

또 국민이 애창하는 뽕짝의 명곡이 방금 나온 곡과 같은 대접을 받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 때문에 옛곡과 신곡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안 등 구체적 대안?검토하고 있다. 원로 작곡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침이 심한 현재 우리 가요계에서는 곡을 낸 지 2년만 되면 잊혀진 작곡가 신세가 된다. 수입이 급격히 저하한다는 말이다."

- 동지는 있나.

"신상호, 박성훈, 손석우, 반야월, 임종수, 원희명 등 작곡가와 김동찬, 김병걸 등 작사가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고 그 밖에 60여명이 함께 가기로 서명했다. 4월 30일 문화체육관광부 앞 집회가 신호탄이었다. 5월 초 저작권협회 지명길 회장과 논의, 수익이 작사ㆍ작곡ㆍ편곡자에게 골고루 분배되도록 잠정 합의해둔 상태다. 6월 중으로 구체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 현 정부와 말은 잘 통하나.

"참여정부 때의 분배제도 개선책은 386세대, 즉 젊은 가수와 작곡자들의 입맛에 맞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있다. 그런데 이 정권은 대화의 자세가 엿보인다."

- 대중예술가로서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나.

"나는 작사와 작곡을 동시에 하므로 노랫말과 선율의 클라이맥스를 일치시킬 수 있다는 덕을 많이 본다. 더러 타인의 가사를 받을 때도 있지만 한 줄만 인용해도 그 사람 이름을 꼭 달아준다. 편곡은 악단 구성에 따라 영화방송ㆍ녹음용 등으로 나뉘는데, 곡 당 평균 3~4시간 걸린다.

적어도 '허공' 같은 곡 한번 더 나온 다음이라야 히트곡집 같은 것 생각하겠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은 예술의 기본이다. 나는 미국의 민요 작곡가 포스터처럼 누구에게나 쉽고 편한 음악이 좋다. 그러면서 품위있고 정서를 고양시키는 음악이다. 예를 들라면 한상일의 '웨딩 드레스', 홍민의 '석별' 등이 있겠다."

- 숨은 걸작이라 할 만한 작품이라면.

"'허공'이 나온 직후 윤수일ㆍ최진희가 부른 '찻잔의 이별'(1987년)이다. 윤수일에게 듀엣으로 불러야 한다는 조건으로 준 곡이다. 때마침 나하고 연습 중이던 최진희와 녹음을 함께 하게 됐는데, 문제는 서로 소속사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소속사 간에 그 곡을 양쪽의 작품에 각각 싣는 것까지는 타협 보았으나, 돌아서서 주판을 굴린 각 회사가 히트를 쳐도 자기네들은 돈 못 번다는 판단에 엉뚱한 방해공작을 놓았다. 그 사람들이 방송국 PD들한테 가서 '그 곡은 틀지 말아달라'고 로비하는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스물세 살 때 지은 '나그네'(1964년)도 아깝다. 작곡 공부할 때 심혈을 기울여 쓴 곡으로, 좋은 가수가 나올 때까지 아끼고 있었다. 마침 내 팬을 자처하던 테너 임웅균에게 그 곡을 포함해 12곡을 줬다.

그런데 임웅균이 자살 충동을 불러일으킨다는 옛 팝송 '글루미 선데이'처럼 너무 무거워 진짜 자살자가 생길지 모르겠다고 해 발표는 안 했던 거다. 열린음악회에서 한번 소개한 적 있는데, 임자 만나면 꼭 부르게 하고 싶다. 노래방 기계에는 들어있는데, 노래방 갈 때 있으면 가끔 부른다."

- 꽤 심각한 젊은이였나 보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설에 빠져 있었던 게 큰 이유 같다. 책 좋아하던 사촌누나가 박계주의 '순애보',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소설을 많이 빌려줬다. 6ㆍ25 때 밀양 육군병원에서 처참한 광경을 많이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추기경 정치공세 받자 너무 화나 음반 만들어

●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

정풍송씨가 2004년 발표한 '김수환 추기경님께-정의파의 편지'는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말해준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코드론을 내세우며 추기경을 폄훼 발언했을 때, 나는 천주교도도 아니지만 추기경의 평소 모습 그대로를 담아 노래를 작사ㆍ작곡하고 위로 편지 낭독까지 했어요."

주위에서는 다친다며 말렸고, 가수들마저 물러서는 바람에 본인이 녹음까지 했다. 그러나 첩첩산중, 이번에는 음반사들이 지레 겁먹고 "세무조사 받는다"며 꼬리를 뺐다. 결국 수천만원 자비를 들여 직접 제작해야 했다. "순전히 내 화풀이로 탄생한 음반이죠." 중후한 바리톤 음색의 못 보던 60대 신인 가수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음반 제작 소식에 김수환 추기경 측에서 연락, 추기경과 1시간 대화를 가졌다. 다음은 그 요약. "이상한 전화 없었나?"(추기경) "공갈과 협박 충분히 예상한다. 정당하게, 싸움도 준비중이다."(정풍송)

"방송국 일도 많은데, 그 쪽 일에 지장 많겠다."(추기경) "히트곡 많으니 방송 출연 안 해도 살아간다."(정풍송). 고고하면서도 유치원생처럼 순수하고 순진한 분이었다고 정씨는 추기경을 돌이켰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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