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년 장인정신..독일와인을 만나다

2009. 6. 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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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최대 포도원 `클로스터 에버바흐' 탐방기(독일 < 라인가우 > =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세계에서 와인의 산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프랑스지만,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유럽의 와인 생산지 중 하나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독일이다.

특히 독일의 리슬링(포도 품종) 와인은 그 독보적인 맛으로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국내에 수입된 제품은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독일 와인은 현재 아시아의 신흥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 시장을 두드릴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28일(현지 시각) 한국 기자단은 독일의 최대 와인 도메인(포도원)인 `클로스터 에버바흐'의 포도밭이 있는 라인가우 지역의 슈타인베르크(Steinberg)를 찾았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였지만, 와이너리 입구 한 편에 푸른 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입구에 마중을 나온 이 포도원 운영회사의 대표(President) 한스 랑게펠트 씨는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았다.

그를 따라 안 쪽으로 들어가자 광활한 포도밭이 눈 앞에 펼쳐졌다. 독일에 있는 7개 와인 경작 지역 중에서도 최고의 포도 경작지역으로 꼽히는 라인가우 지역에서 클로스터 에버바흐의 포도밭은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야트막한 돌담으로 구분지어진 이 포도밭은 돌담 둘레 길이만 3.5㎞, 전체 면적은 51㏊(51만㎡)라고 했다. 클로스터 에버바흐가 라인가우 지역 전체에서 경작하고 있는 면적은 196㏊(196만㎡)에 달한다.

일반적인 독일의 날씨는 전형적인 북대서양 해양성 기후로 이날처럼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연중 절반 가까이 이어진다. 일조량이 적고 연중 온화한 기온이 유지되기 때문에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남부 유럽이나 미국, 칠레 등 신대륙처럼 포도가 풍요롭게 생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근 라인강의 습기를 머금고, 석회 성분이 많은 토양의 미네랄을 빨아올려 화이트 와인 품종인 리슬링이 자라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생산된 리슬링 와인의 맛은 "light(가볍고), lively(신선하고), fruity(과일맛이 풍부)"한 특징을 지닌다고 라인펠트 씨는 자랑했다.

이 포도원의 역사는 중세 시대인 1136년부터 시작됐다.처음에는 프랑스인들이 이 지역에 이주해 레드 와인 품종인 피노누아를 심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리슬링이 가장 적당하다는 것을 알게 돼 주력 품종을 리슬링으로 바꿨다. 지금은 이 포도원에서 재배되는 포도의 77%가 리슬링, 15%가 피노누아이다.

일조량이 풍부하지 않은 만큼 나무 한 그루당 많은 포도가 열리지는 않는다. 나무마다 제각기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높은 품질의 포도는 한 그루당 와인 4-5병을 생산할 수 있는 양이, 일반적인 품질의 포도는 한 그루당 10병을 생산할 수 있는 양이 열린다. 포도원의 역사만큼 나무들의 나이도 많아 평균 45년 정도 된 나무들이 대부분이고, 50~60년 된 나무들도 있다.

게다가 포도가 열리기 전 솎아주기 작업, 햇볕을 잘 받게 하기 위해 나뭇잎을 잘라는 작업에서 포도가 열린 뒤 수확까지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와인 한 병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수확한 포도를 컨테이너로 운반해 한 곳에 모은 뒤 압착과 숙성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은 지난해 이 포도밭에 지어진 최신식 와인 창고(cellar)에서 이뤄진다.

지하 3층 규모로 지어진 창고의 지하 1층에 있는 압축기에서 자연기압에 가까운 압력으로 포도를 서서히 압축해 원래 분량의 70% 정도만 즙을 짜낸 뒤 아래층의 정제(精製)기로 보낸다. 와인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와인을 완전히 짜내지 않고 껍질에서 나올 수 있는 불순물 등을 포함한 나머지 30%는 버린다.

정제기에서는 다시 10시간 정도를 두고 불순물과 찌꺼기를 가라앉힌다. 변질을 막기 위해 기계의 온도는 항상 12.2도로 유지되고, 창고 전체의 온도 역시 늘 16.5도로 유지된다.

정제된 포도즙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숙성기에 담겨 1년 또는 1년 반 정도 보관, 숙성된다. 포도의 품질과 숙성 기간의 차이 등을 통해 60여가지 종류의 다른 와인이 연간 150만 병 가량 생산된다.

전통적으로 와인 숙성을 위해 쓰던 오크통은 최고 품질의 와인 소량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일반적으로는 더이상 쓰지 않는다. 코르크 마개 역시 제품 변질 우려로 인해 알루미늄 재질의 돌려따는 마개로 바꿨다.

시설의 노후함과 유지.관리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와인 창고와 설비를 완전히 현대화했지만, 와인을 만드는 기본 철학과 장인정신 만큼은 900여 년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라인펠트 씨는 자신했다.

이 포도원의 기원인 `Eberbach Monastery'(에버바흐 수도원)의 정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식 와인창고에서 100m 가량 떨어진 곳에 에버바흐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거장 장 자크 아노 감독의 1986년작 영화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됐을 정도로 유럽의 가장 유서깊은 수도원 중 하나다.

중세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이 수도원은 낮 시간 동안 말 한 마디 할 수도 없이 오직 기도와 일로 생애를 보낸 수도사들의 처절한 경건함과 엄숙함이 깃들어 있었다.

냉난방이 전혀 되지 않고 창문 하나 없었던 차가운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를 하고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신께 바칠 포도를 경작했다. 이런 혹독한 삶으로 인해 수도사들은 평균 35세에 생을 마감해야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1803년에 이르러 수도원은 한 공작에게 넘어가 세속화되고, 1866년에는 프러시아 왕가의 소유가 됐다가 1945년부터 독일의 주(州)인 헤세(Hesse) 주정부의 소유가 된다. 이에 따라 포도원 운영회사 역시 현재 헤세주가 최대 주주로 지분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수도원이 1706년부터 간직해온 `wine treasury(와인 보물창고)'에는 수백년 시간의 무게를 켜켜히 안은 최고급 와인들이 아직까지 보관돼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와인 경매가 열리는데, 1983년에 1만5천 달러에 판매된 와인이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라인펠트 씨는 전했다.

클로스터 에버바흐는 독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포도원으로서 독일의 정신을 대표하고, 최고의 기품있는 와인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이 남달랐다. 또 900년 전통이 최신식 창고 설비와 결합해 와인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낼 것이라고 자신하며, 다음과 같은 격언을 인용했다.

"전통은 타고 남은 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꽃을 계속 태워나가는 것을 의미한다(Tradition does not mean preserving ashes but rather keeping the flame burning)."

한편, ㈜신세계의 와인 전문회사 신세계L & B는 클로스터 에버바흐의 와인 일부를 곧 국내로 수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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