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윤의 아시아 문화기행] '지상 유토피아' 실험 공동체 오로빌 마을 눈길

2009. 5. 2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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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국경·인종 구분 없는 세상 만들자"印 영성개혁가 오로빈도가 꿈꾼 이상향

◇벵골만으로 떨어지는 낙조.

꾸었던 꿈이 현실이 될 줄 알았을까? 날씨는 1월 초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더웠다. 그나마 이게 풀린 거라고 옆 좌석에 있는 인도인들이 이야기한다.

그랬다. 내가 머물던 타밀나두주는 때 아닌 겨울장마로 수십만채의 가옥이 침수되고 수백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터였다. 일주일의 장마 끝에 겨우 해가 꼬리를 보인 날이었지만 이방인인 나는 그래도 더웠다. 나는 지금 퐁디셰리(Pondicherry)라는 예쁜 이름의 도시를 향해 가고 있다. 타밀나두 주도인 첸나이에서 120㎞ 정도의 가까운 거리건만, 버스는 3시간30분째 달리고 있다. 지루해 하는 내게 기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게 2년 전에 깐 신작로라 빠른 거야! 그 전에는 5시간이 걸렸다고!"

영국령 인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인도 역사의 한 시기다. 그런데 같은 시기 프랑스령 인도가 있었다. 바로 퐁디셰리다. 여행작가가 직업인지라 아시아의 꽤 많은 도시들에 다녀봤는데, 영국령이었던 곳과 프랑스령이었던 곳은 느낌이 아예 다르다. 영국령이 웅장한 건축을 중심한 건물 위주라면, 프랑스령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충분한 녹지를 확보해 전원주택지 같은 느낌이 든다.

◇인도의 공동체마을 오로빌은 독립운동가이자 영성개혁가 스리 오로빈도의 뜻을 이어받아 생겨난 곳이다. 원형 구조체는 이곳의 상징인 마트리만디르이다.

사실 인도의 도시들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나무다. 이른바 '-바드'로 끝나는 이슬람 도시나 '-푸르', '-푸람'으로 끝나는 힌두 도시들은 아예 도시계획에 조경이라는 개념이 없다. 영국령 또한 마찬가지. 무작정 건물만 쌓아 올린 데다 우기가 있는 인도의 기후상 군데군데 이끼가 끼어 우중충하고, 때로는 기괴하기까지 하다.

반면 퐁디셰리의 첫인상은 너무 상큼했다. 야자수가 질릴 때쯤 보는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아늑했고, 풍성한 잎은 내리쬐는 태양을 가려주기에 충분했다. 해질녘 벵골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했고,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프랑스 요리의 풍부함은 '여기가 인도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했다.

퐁디셰리를 찾은 목적. 즉 스리 오로빈도의 아슈람과 오로빌을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은 방문 이틀째가 지나도록 새까맣게 지워져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왔다면 그저 이곳에서 편히 쉬다 갔을 터다. 사실, 예전부터 여행자들이 퐁디셰리를 찾는 이유는 단 하나라고 할 정도로 간단했다.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영성개혁가였던 스리 오로빈도의 발자취와 그가 꿈꿨던 이상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체 마을 오로빌의 방문이 그것이다.

오로빈도는 꽤 특이한 인물이다. 독립운동을 하다 감옥에서 명상을 배웠고, 이내 전향한다. 출소 이후 그의 머릿속에는 인간의 영성개혁만이 그려졌지만, 그를 감시했던 고등계 영국경찰은 그의 변심을 믿지 않았다. 오로빈도는 그가 꾸었던 꿈을 풀어내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1910년 프랑스령의 작은 도시 퐁디셰리로 향한다.

◇한적한 퐁디셰리 해변.

그는 퐁디셰리에서 미라 알파사라는 스위스 여인을 만나는데, 그의 말년은 모든 메시지를 미라 알파사를 통해 전달한다. 그의 사상을 풀어내자면 끝이 없겠지만, 승화된 결론으로 본다는 영적 진화주의라는 한마디로 풀어낼 수 있다. 당시 인도의 대사상가들이 뿜어낸 결론, 구별되는 종교·국경·인종이라는 걸 구속으로 보고 그걸 풀어내고자 했다.

오로빌이라는 공동체는 그렇게 생겨났다. 오로빈도의 유지를 이어받아 이상향을 만들겠다는 꿈 말이다.

경쟁과 속도, 합리적 사고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오로빌은 아직도 1960년대 말. 이상과 상상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믿음 아래 놓여있는 듯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 그 이상은 때로는 마약보다 더 강한 강렬함이 되곤 한다.

어쩌면 사람들이 상상하는 인도의 이미지가 가장 잘 구현된 곳이랄까? 꿈꿨던 인도를 여행하며 아이로니컬하게도 인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장기 여행자들은 물어물어 이곳으로 흘러든다.

누군가에게는 이곳이 삶의 마지막 샹그릴라가 되기도, 누군가에게는 그럼에도 여전히 답답하고 꽉 막힌 곳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사실 스리 오로빈도의 꿈도, 오로빌에서 사는 오로빌리언들의 꿈도 아직 이루어지진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들을 오로빌은 안고 있다. 많은 거주민이 오히려 이곳에서 각자의 경제력과, 인종, 종교의 차이를 절감한다. 그들도 사람인 탓이다. 환상을 품고 온 여행자들에게 거주민들이 오히려 냉정하게 말한다.

◇퐁디셰리 해변에 서 있는 모한다스 간디의 동상.

"여긴 원래 그랬다. 여기에 환상을 부여한 것은 너희 같은 글쟁이와 기자들이다."

"여기는 지금도 실험 중이다. 실험실에 와서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하지 마라."

'여행이 꿈이 아니었으면 좋으련만, 여행자들은 꿈 때문에 길을 나선 사람들이다. 나는 그저 여기서 잠시 낮잠 같은 꿈을 꾸고 싶을 뿐이다.'

허무해져 버린 나는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여행작가

〉〉여행 정보

퐁디셰리와 연결되는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은 버스로 3시간30분 거리인 첸나이에 있다. 인천과 첸나이까지 연결되는 직항편은 없다. 에어인디아, 싱가포르항공, 타이항공 등이 인천∼첸나이 경유편을 연결하고 있다.

퐁디셰리와 오로빌은 약 14㎞ 떨어져 있는데, 시내에 있는 퐁디셰리 주정부 관광청과 스리 오로빈도 아슈람에서 매일 일일 투어를 시행한다.

만약 오로빌만 여행의 목적이라면 퐁디셰리에 머물 필요 없이 바로 오로빌로 직행하면 된다. 오로빌에는 형편에 따라 머물 수 있는 다양한 등급의 게스트 하우스가 운영되고 있다.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며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대화를 나눠본다면 제법 뜻 깊은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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