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삼겹살

2009. 4. 2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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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느는데 공급은 줄어 가격 급등

[한겨레21] 미국·EU 등에 관세 철폐 땐 토종 입지 더 좁아져송영길 의원(이하 송): 삼겹살 1인분이 얼마인지 아나?강만수 전 장관(이하 강): 모른다.송: MB 물가에 포함돼 있는데 모르나?강: 돼지고기는 포함돼 있다.송: 삼겹살은 돼지고기가 아닌가?강: ….송: 모르면서 어떻게 물가를 관리하나?강: 직접 안 사봐서….송: 그럼 삼겹살 안 드시나?강: 잘 안 먹는다.송: 이런, 참….지난해 7월23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송영길 민주당 의원과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고받은 말들이다. 이 말을 들은 서민들은 허무했다. 서민들의 대표음식인 삼겹살을 안 먹는 분이 '대한민국 경제팀장'으로 있는데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있을까 싶어서다.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있은 지 한 달여 뒤 강 전 장관은 재래시장인 서울 중곡동 제일시장을 찾았다. 추석을 일주일여 앞둔 때였다. 그는 물가 체험을 한다며 장바구니를 끌고 정육점에 가서 돼지고기 가격을 물어봤다. 삼겹살을 구입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1년전보다 30%나 올라 '금겹살'

왜 흘러간 과거의 인물인 강 전 장관을 들고 나왔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검찰이 1년이나 지난 한 방송 프로그램에 집착하는 것도 지긋지긋한데 말이다. 하지만 삼겹살과 강 전 장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삼겹살은 '금겹살'이라 불릴 정도로 가격이 치솟았다. 삼겹살 폭등은 지난해 강 전 장관이 추진해온 고환율 정책과 관계가 있다. 고환율 정책으로 대기업의 휴대전화와 자동차는 해외에서 잘 팔리고 있지만 엉뚱하게 서민들의 식탁은 퍽퍽해지고 있는 것이다.

고소하고 쫄깃쫄깃한 삼겹살. 서민들은 퇴근길에 직장 동료와 '삼겹살에 소주 한잔'으로 그날의 피로를 푼다. 가족 외식 메뉴로도 '딱'인 게 삼겹살이다. 하지만 요즘 삼겹살은 서민들의 음식이라고 말하기 무서울 정도다. 삼겹살 600g(1근)의 소비자가격은 1만4280원으로, 1년 전에 견줘 30%가량 올랐다. 통계청이 지난 2월 발표한 전년 동월 대비 전국 평균 물가인상률(4.1%)의 8배에 이른다. 지난해 이맘때는 '가족 만찬'을 위해 삼겹살 2근(1200g)을 살 경우 1만7천원 정도면 거뜬했다. 요즘은 2만5천원은 있어야 한다. 일부 음식점에선 삼겹살 1인분(200g)이 1만원이다. 4인 가족이 2인분씩 고기를 먹고 밥에다 소주 또는 음료수까지 시키면 10만원가량이 든다.

삼겹살은 돼지의 배 부위다. 붉은 살코기와 지방이 삼겹의 층을 형성하고 있어 삼겹살이라고 불린다. 삽겹살은 돼지 한 마리(고기만 75~85kg)에서 약 10kg밖에 나오지 않는다. 지난해 우리 국민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19.6kg인데,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9kg이 삼겹살이다. 200g을 1인분으로 치면 1년에 삼겹살 45인분을 먹은 셈이다.

삼겹살의 경제학에 대해 한번 따져보자. 일단 수요와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삼겹살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경기가 불황이라 삼겹살을 많이 찾고 있다. 가격이 올라도 돼지고기 가격은 쇠고기의 3분의 1 수준이다. 삼겹살값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한우나 오스트레일리아산 쇠고기에 비해 싼 편이다. 쇠고기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체재를 찾으면서 수요 증가를 불러온 것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쇠고기의 대체재가 바로 돼지고기다. 1·2월 이마트의 돼지고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2% 늘어난 반면, 쇠고기는 4.9% 증가에 그쳤다. GS마트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돼지고기 매출이 21% 올랐다.

미국산 쇠고기와 멜라민 파동 등을 겪으면서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도 삼겹살이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유다. 환경문제도 삼겹살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 보통 3월 초부터 불어오던 황사는 올해 들어 2월 말부터 불었다. 삼겹살이 황사 먼지를 제거해준다는 속설 때문에 삼겹살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봄철 꽃가루와 황사 먼지 예방 음식으로 삼겹살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기 시작하면 야외 나들이 인구도 따라서 는다. 야유회가 많은 계절, 야외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삼겹살 수요로 이어진다.

사료값 폭등으로 사육 두수 줄어

수요는 이처럼 느는데 공급은 달린다. 공급 문제는 환율과 상관관계가 있다. 일단 돼지고기 사육 두수가 줄었다. 국내 돼지 사육 두수는 지난해 51만9천 마리(960만6천 마리 → 908만7천 마리) 감소했다. 양돈 농가 9600곳 가운데 2100곳이 폐업했다. 지난해 곡물값 인상에 더해 환율이 뛰어올라 수입 사료 가격이 50% 가까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농가에서 6개월 정도 길러 출하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사육 두수 감소가 올해 출하량 감소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삼겹살 수입도 줄었다. 올 1월 수입량은 지난해 1월(2만3772t)보다 36.1%(1만5180t) 감소했다. 환율도 오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등으로 국내 수입업자들이 마진이 큰 쇠고기 수입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돼지고기 가격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수입업자들이 돼지고기 수입에 소극적이었다. 미국산 쇠고기는 한우의 대체재이기도 하지만, 가격 면에서 국산 돼지고기의 대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삼겹살 편식도 문제다. 이는 무역 문제로 번지고 농가 소득 저하를 불러일으킨다. 서양에선 '지방 덩어리'라고 홀대받는 게 삼겹살이다. 유럽과 미국에선 돼지고기 앞·뒷다리 살과 사태 같은 푸석한 부위를 즐긴다. 서양 사람들은 퍽퍽한 살코기를 주로 먹기 때문에 삼겹살이나 목살은 남아돈다. 삼겹살은 베이컨이나 햄 제조용 정도로만 쓴다. 일본은 돈가스 재료인 등심과 안심을 선호한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고기 부위 중에서 유독 삼겹살과 목살을 좋아한다. 지난해 농협 하나로마트 9곳의 연간 판매량을 보면 삼겹살이 차지하는 비중이 38.3%, 목살은 17.1%였다. 안심과 등심은 두 부위를 합쳐도 4.8%에 그쳤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별난 삼겹살 사랑이다.

그 이유는 음식문화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고기를 구워먹거나 채소에 쌈 싸먹는 것을 즐긴다. 구워먹기 좋은 부위는 기름이 약간 끼어야 맛있다. 고소하고 쫄깃해지기 때문이다. 삼겹살과 목살이 그런 부위다. 쌈 음식에도 안심이나 등심은 퍽퍽해 적절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지방이 많은 삼겹살이나 목살은 부드러워 쌈용으로 적합하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의 삼겹살 편식은 결국 소비자한테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수요를 못 맞추다 보니 '짝퉁 삼겹살'이 판을 친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고기 100만t을 먹어치웠다. 이 가운데 절반인 50만t이 삼겹살이다. 하지만 국내산 돼지고기 공급량은 80만t가량이다. 수입산이 21만t이다. 국내산 돼지고기 80만t 가운데 13만t만 진짜 국산 삼겹살과 목살이다. 수입 삼겹살은 11만t이다. 삼겹살 공급량은 국내산과 수입산을 합쳐 24만t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나머지는 살코기와 비계를 식용접착제로 붙여 만든 짝퉁 삼겹살이라는 얘기다.

공급 딸려 '짝퉁 삼겹살' 활개

그러나 삼겹살 가격이 치솟아도 정작 양돈 농가의 소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삼겹살이 돼지고기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아서다. 삼겹살을 뺀 돼지고기는 찌개용이 아니면 거의 외면한다. 삼겹살 가격이 폭등하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수입하는 양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이다.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비싸게만 사먹고 있다.

박종갑 농협 양돈팀 차장은 "삼겹살뿐만 아니라 돼지고기의 다른 부위를 많이 소비하는 것이 농가 소득에 도움이 된다. 돼지고기의 안심·등심 등은 지방이 없어 '웰빙 부위'라고 불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균형 있게 소비를 해주면 양돈 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돼지고기 시장은 저가의 '다국적 삼겹살' 춘추전국시대다. 한우에 이은 국산 삼겹살 수난 시대다. 수입 지역도 캐나다·미국·프랑스·네덜란드·폴란드·헝가리·칠레 등으로 점차 다양화되는 추세다. 외국산 삼겹살은 물량 공세뿐 아니라 저가 공세도 펼치고 있다. 이미 삼겹살 시장은 수입산이 45%에 이른다. 이같은 추세라면 조만간 60%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대한양돈협회 자료를 보면, 돼지고기 수입 물량 중 절반가량이 삼겹살이다.

삼겹살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집착은 무역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쟁점으로 떠올랐던 것도 삼겹살이다. 협상에선 삼겹살 대신 '냉동 돼지고기'라는 딱딱한 용어가 사용됐다.

EU 쪽은 우리나라에 유럽산 삼겹살에 부과한 관세를 2014년에 철폐해줄 것을 요구했다. 칠레와 미국도 우리나라와 FTA 협상을 했을 때 삼겹살의 관세 철폐를 요구했다. 우리나라는 두 나라에 대해 2014년 관세를 완전히 없애주기로 했다. EU는 칠레·미국에 준하는 기준을 요구했다. EU는 거의 버리다시피 하는 삼겹살과 목살을 한국에 대해 '효자 수출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수입 삼겹살은 미국산이다. 미국산은 가격 경쟁력이 높다. 2014년 관세마저 없어지면 현재 가격에서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EU가 2014년까지 관세 철폐를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산이 한국 시장을 선점해버리면 따라가기 쉽지 않아서다.

한-EU FTA 협상이 타결될 경우 토종 삼겹살은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산 삼겹살이 관세 철폐를 무기로 무차별적인 저가 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한양돈협회와 양돈 농가들은 한-EU FTA가 국내 양돈산업을 초토화시킬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관세가 철폐되지 않은 현재도 유럽산 삼겹살이 전체 삼겹살 소비량의 20%를 점유하고 있다. 관세가 없어지면 삼겹살은 국내산의 절반 가격으로 공급이 가능하다. 이 경우 토종 삼겹살은 미국과 유럽산에 밀려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높다.

미국산 이어 유럽산도 저가 공세 가능성

정선현 대한양돈협회 전무는 "유럽이나 미국은 돼지 사육 시설이 고급화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농가 사육 시설의 현대화가 시급하다. 또 가축 분뇨 처리 시설도 저비용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하듯 이런 것들을 개선함으로써 양돈업 경쟁력을 높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시인 안도현은 최근 <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라는 책을 냈다. 이 책에서 그는 '제발 삼겹살 좀 뒤집어라'라고 썼다. "기억은 시의 중요한 질료가 된다. 삼겹살을 구울 때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젓가락만 들고 있는 사람은 삼겹살의 맛과 냄새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기를 불판 위에 얹고, 타지 않게 뒤집고,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더 많은 기억을 소유하게 된다. 그런 사람이 시인이다." 하지만 갈수록 삼겹살 뒤집을 기회가 줄어든다. 서민 음식으로 불리는 삼겹살을 서민들이 먹기 힘든 팍팍한 시대다.

한-EU FTA 손익계산서는공산품 유리, 농축산물 극히 불리

한국-EU 자유무역협정(FTA)이 성사 단계까지 갔다 결렬됐다. 한국과 EU 통상 장관들은 지난 4월2일 영국 런던에서 막판 타결을 시도했으나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채 서로의 갈 길을 갔다. 양쪽은 실무급 협의를 거쳐 통상장관 회담을 다시 개최할 예정이다. 협상 재개 시점은 EU 쪽의 내부 조율이 끝나는 5월 말 이후가 유력하다.

협상 결렬의 가장 큰 원인은 관세환급 문제였다. 관세환급이란 외국에서 부품이나 원자재를 수입해 이를 완제품으로 수출할 경우 관세를 돌려받는 제도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휴대전화를 만들 때 퀄컴의 반도체를 장착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퀄컴 칩을 수입할 경우 수입관세를 낸다. 이 휴대전화를 외국으로 수출할 경우 정부는 퀄컴 칩 수입에 매겼던 관세를 기업에 다시 돌려주는 것이다. 부품이나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의 무역 구조상 관세환급은 제품의 생산원가를 낮춰 수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한-미 FTA 등 이미 체결한 FTA에서도 이 문제를 양보한 적이 없다고 강조해왔다. 반면 EU 쪽은 주요국과의 FTA에서 관세환급을 허용하지 않았다며 반대했다.

한-EU FTA의 손익계산서는 어떻게 될까? 공산품의 경우 우리나라가 유리하다. 하지만 돼지고기 등 농축산물은 우리나라가 극히 불리하다.

지금까지 협상 결과를 보면, EU는 공산품 전 품목에 대해 5년 안에, 우리나라는 일부 민감 품목은 7년 안에 관세를 철폐하는 조건을 달았지만 나머지 품목에 대해 5년 안에 관세를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EU에 △선박(100억달러) △무선전화기(75억달러) △승용차(52억달러) △평판 디스플레이(39억달러) △자동차 부품(24억달러) 등을 주로 수출했다. 한-EU FTA가 체결되면 이 제품들의 EU 수출은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EU는 우리나라에 △의약품(16억달러) △반도체 장비(16억달러) △자동차 부품(15억달러) △승용차(15억달러) △정밀화학 원료(12억달러) 등을 수출했다. 반대로 이 제품들의 현행 관세가 없어지면 수입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한-EU FTA가 체결되면 우리나라 농업은 큰 타격을 받는다. EU 27개 회원국 상당수가 농축산물 수출국이다. 쇠고기와 곡물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미국 이상으로 위협적이다. EU와의 FTA로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는 품목은 돼지고기와 닭고기·낙농제품 등 축산물과 감귤·포도·사과·복숭아·토마토·감자 등 농산품이다. 농가 피해 규모는 예측하기 힘들 정도다. 연간 3천억원이라는 자료가 나와 있는가 하면 양돈 한 품목에서만 4천억원 이상의 피해를 예측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 한겨레 > [ 한겨레21 구독|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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