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의 와인야담]나에겐 2% 부족했던 2008년産 보르도..

2009. 4. 1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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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냉해ㆍ수확기 기상악화 탓 풍성함ㆍ조밀함 예년에 못미쳐…카베르네 품종많은 생 테밀리옹 풍미에 그나마 위안

매년 4월 첫째 주 프랑스 보르도는 세계 곳곳에서 온 와인 상인들과 취재진으로 북적인다.시음 행사의 주체는 지난 1973년에 창설된 보르도 최대 협회인 '유니온 데 그랑 크뤼 드 보르도'(L`Union des Grands Crus de Bordeauxㆍ일명 UGCB)와 각 지역 협회. 보르도 전역에는 1만개의 샤토와 57개 A.O.C(원산지 명칭)가 있는데, 이 중 UGCB협회에 가입한 7곳 132개 샤토와 그외 대부분의 협회가 행사에 참여한다.

그러나 올해는 세계 경기침체로 분위기가 침체돼 작년보다 방문객이 3% 정도 줄었다. 사실 매년 방문객 수가 1만6000여명에 달하는 것을 감안할 때 3%는 미미한 수치지만, 보르도시장의 '큰손'인 영국 및 미국 와인상이 이에 속해 있어 적잖은 우려를 낳았다.

이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지난 2005년부터 고공행진하는 가격에 부담을 느껴오다가 결국 그동안 참았던 것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취재진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매년 100여명씩 와서 시음하던 예년에 비해 부쩍 차분해진 느낌이랄까. 물론 취재진 규모도 줄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 선물시장 시음회에 1998년부터 매해 참석하는데 지난 10년간 보르도의 품질은 여러 변화를 보여줬다.

신흥시장에 대항하는 전통의 보르도 명산지들은 2008년 빈티지를 위해 어떻게 자연에 순응해 품질을 유지했고, 이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5일 동안 300여 와인을 시음하며 답을 찾아봤다.

▶2008년 보르도 와인의 전반적 품질

2008년 빈티지는 그해 말 수확한 포도를 와인으로 만드는 오크통에 샘플을 병입, 시음주로 선보인다. 때문에 아직 마시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그해 특성을 잘 보여줘 나중에 어떤 와인으로 숙성될지 가늠해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예측하려면 수년간의 경험이 중요하다.

보르도 와인의 품질은 날씨와 토양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지난해 초부터 날씨 관련 우울한 소식들이 전해지면서 이미 2008년도 품질의 빈곤함은 예견돼 왔다.

공항에 도착, 마중나온 이에게 올해 보르도 분위기를 묻자 무척 말을 아꼈다.시음행사는 달콤한 와인으로 유명한 소테른 및 바르삭을 시작으로 페삭 레오냥, 메독 전 지역(마고, 리스트락 물리스, 생 줄리앙, 포이악, 생 테스테프), 그리고 생 테밀리옹과 포므롤 지역의 와인 200여병으로 진행됐다.

소테른과 바르삭 와인의 품질은 작년 수준으로 유지됐으나 냉해로 인해 생산량이 작년보다 50% 정도 줄어들었다. 페삭 레오냥 지역은 화이트와인이 레드와인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생산됐다. 9월 들어 낮엔 덥고, 밤엔 서늘한 탓에 소비뇽 블랑의 감칠맛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역 레드와인은 과일이 충분히 익을 수 있는 시간이 모자라 풍성함과 조밀함이 덜 했다.

카베르네 품종을 주로 사용하는 메독 지역은 중간 내지는 중상 정도의 품질을 보였지만 개중 아주 훌륭한 품질의 샤토가 더러 있었다.

여성적인 맛을 대표하는 마고 지역은 뛰어난 품질의 샤토를 찾기 어려웠다. 이것은 샤토 마고의 천재 양조가인 폴 퐁탈리에의 말처럼 수확기에 날씨가 좋지 못했고 이로 인해 수확도 10여일 늦춰졌기 때문이다. 명성에 손상을 입는 것을 걱정해서였을까.

샤토 마고에선 2007년 및 2006년산까지 덤으로 선보였다. 이 덕분에 시음하는 이들은 뜻밖의 횡재를 만나게 됐다. 대부분 07년산은 시음만 하고 뱉었으나 06년산은 맛이 좋아서 마시면서 음미했다.

2008년도에는 부드럽고 과일 향이 강한 메를로보다는 만생종인 카베르네의 성과가 좋았다. 때문에 생 줄리앙과 포이악 지역의 와인 품질은 올해 중상급이었다. 아마도 이곳의 자갈 토양이 2008년도의 어려웠던 날씨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준 듯하다. 이 지역 와인은 개성과 균형이 잘 갖춰져 있었고, 농밀함이 입안 곳곳을 고루 자극했다. 특히 베슈벨, 레오빌 푸와페레, 샤도 바타이, 린쉬 바주, 퐁테 카네, 피숑 와인의 풍미가 뛰어났다.

물론 무통이나 라피트는 이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와인을 만들었다. 메독 상북부 지역인 생 테스테프는 전체적인 품질이 중급 이상으로 판단됐고, 그 중 라퐁 로쉐의 품질이 돋보였다.

한편 생 테밀리옹과 포므롤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카베르네 프랑을 많이 사용하는 생 테밀리옹 지역이 좋은 품질을 나타냈다. 메를로를 사용하는 샤토 중에선 토양이 좋은 지역에서 날씨에 상관없이 최고의 품질을 보여 놀라웠다.

▶보르도 와인의 위대함

여러 이상 기후가 나타난 2008년 빈티지는 연구대상이기도 했다. 보통 최고의 빈티지가 되기 위해선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즉 이른 개화 시기와 시기별로 적절한 물 부족 현상, 최고의 완숙을 위한 수확기의 좋은 날씨가 바로 그것이다.

2005년도는 이런 삼박자가 갖춰진 해이고, 06년과 07년의 경우는 이 중 일부만 있었다.

2008년의 경우 개화시기와 초기에 물 부족 현상이 없어 일찌감치 결과를 예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포도알의 착색기에 가뭄으로 좋은 징조를 보이다가 수확기엔 좀 늦은 때 날씨가 좋아 안도의 숨을 쉰 해다. 보르도 지역은 인위적으로 포도밭에 물을 주지 않는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와인에 담기 위해서다.

그래서 모든 빈티지는 조금씩 차이가 있어 그 해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자연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셈이다. 이런 점과 지역별 토양의 특성을 감안하면 눈을 감고 와인을 마셔도 생산지역과 빈티지를 알아맞힐 수 있다. 20~30년 전 와인을 마시며 당시의 자연환경을 유추해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보르도 포도나무는 물이 부족하면 좀 더 깊숙이 뿌리를 내린다. 나이 든 나무일수록 물을 빨아들일 수 있도록 뿌리가 깊고, 다양한 층의 미네랄을 섭취, 맛이 깊어진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깊이가 있어지는 것과 같다. 물론 자라는 환경(인간이라면 사회)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한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와인이 생산되지만 필자가 보르도 와인에 각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보르도의 고민

요즘 보르도 와인은 10년 전보다 평균적으로 품질이 좋아졌으나 가격 또한 치솟았다.이것이 최고의 빈티지를 생산한 2005년엔 그나마 통했지만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문제는 이보다 못한 해에도 계속 높은 가격대를 유지, 많은 애호가와 전문 상인을 당혹케 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2008년 빈티지는 품질이 우수하지 못해 더 큰 우려를 낳았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과 유로화 강세로 선물시장이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2005년과 06년, 07년도산은 재고가 늘어가고 있다. 벌써 작은 중개상들은 문닫을 채비를 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2008년산 가격은 어떻게 매겨질까. 어느 정도 낮게 책정이 된다고 해도 유로화 상승속도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세계 최대의 미국시장에서 질 좋은 와인을 구입해 매일 마시는 시대는 끝났다는 게 중론이다. 진퇴양난의 보르도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한 번쯤 가격파괴가 있을지, 또 만약 그렇다면 그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영국시장에선 가격이 30~40% 이상 내려가야 한다고 보지만, 보르도는 고개를 젓는다. 보르도인들은 어려운 때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와인은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들은 보르도의 위대함을 호소하지만, 중간 상인들은 안 팔리는 와인을 10년 이상 보관할 만한 여유가 없고, 이미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다.

요즘 국내에선 때 아닌 와인 세일이 한창이다. 경기 불황으로 와인 소비인구가 많이 줄었고 구매층도 좀 더 저렴한 와인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질 좋다는 2005년 빈티지도 30~40%씩 할인한다. 대기업이 와인을 직수입, 물량으로 승부하는 가운데 소규모 와인 수입상들은 폐업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와인 바도 줄줄이 문을 닫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와인 바도 마지막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는 듯해 아쉽다. 보르도 와인의 경우 99년도산이 마시기에 좋다. 2003년산도 괜찮은 편이다. 적어도 6~10년 정도는 기다려야 참맛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일본과는 달리 10년 이상 된 빈티지를 와인시장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설령 찾는다 해도 대단히 비싼 와인 뿐이다. 와인의 매력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준비하고 보관해뒀다가 맛봐야 하는 것이 와인이다. 이런 어려운 때일수록 보르도 와인으로부터 기다림의 미학을 배워보는 게 어떨까.

글=김혁 포도플라자 관장/hkim@podoplaza.com 헤럴드경제 추천와인 덕판드 피노누아짙고 풍부한 과일향의 유혹

봄이 성큼 다가오면서 옷차림뿐 아니라 평소 즐겨 마시던 와인도 바꿔보고 싶어지는 때다. '레드와인의 여왕' 피노누아의 세계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입 안을 부드럽게 감싸는 섬세하고 우아한 맛이 따사로운 봄날의 느낌을 닮았다.피노누아는 본 고향 부르고뉴에서는 구입하기에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하지만 남미, 호주,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 등에서 생산되는 신세계 와인은 가격을 내려 문턱을 낮췄다.

다만 신세계 피노누아는 질 면에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만큼 까다롭게 골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질과 가격,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원한다면 덕판드 피노누아를 추천한다. 9만5000원의 가격에 세계적 와인잡지 '와인 스펙터'에서 매년 80점대 후반의 평점을 받을 만큼 품질도 뛰어나다. 지난 1986년 창설된 덕판드는 20여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 워싱턴 주와 오리건 주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성장했다. 미국에서는 행운을 상징하는 오리 문양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2006년산이 일품이다. 미국 최고의 피노누아 산지인 오리건 월라멧 밸리에서 기후가 가장 좋았다. 다른 해보다 고온 건조한 날씨 덕분에 좀 더 짙은 색채와 풍부한 과일 향, 그리고 강한 보디감(질량감)이 더해졌다. 잘 익은 자두 향과 진한 흙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타닌감도 튀지 않고 적당해 목 넘김이 매끄럽다.

김영화 기자/bettykim@heraldm.com- '대중종합경제지'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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